메인화면으로
1944년과 17세 소녀의 일기…"일제 강점기 학교는 강제노동 수용소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1944년과 17세 소녀의 일기…"일제 강점기 학교는 강제노동 수용소였다"

정읍공립고 2년생 '서국정의 일기' 광복 80주년 '관심'

일제강점기의 국내 학교교육은 억압과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었음을 보여주는 당시 17세 소녀의 일기가 '광복 80주년(15일)'을 앞두고 세간의 관심을 끈다.

'서국정의 일기'는 전북자치도 익산시 인화동에 사는 17세의 소녀이자 정읍공립고등학교 2학년생인 서국정이 1944년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쓴 국권침탈 말기의 기록이다.

이 일기는 고(故) 서국정의 아들인 이만천씨(63·익산시 남중동)가 어머니의 10대 기록 원본을 한글로 번역해 익산시의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 제출함으로써 최근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17세의 소녀이자 정읍공립고등학교 2학년생인 서국정(사진의 왼쪽에서 두번째)은 1944년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 국권침탈 말기의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1945년경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아들인 이만천 씨가 전했다. ⓒ이만천 씨

익산에서 매일 기차로 정읍에 있는 학교로 통학한 서국정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 귀가하는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의무적으로 일기를 써 학교에 제출했다.

일제강점 말기인 1944년은 일제가 미드웨이해전에서 패하는 등 패색이 짙었던 때로 일본 선생은 학생들의 일기검열을 통해 일상을 감시하고 사상을 통제하려 했음이 '서국정의 일기'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총 141쪽 분량에 일본어로 쓴 이 일기는 당시 학과 수업 외에 농사일과 신사 참배, 군인 환송, 방공호 만들기 등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음을 확인해준다.

'6월 3일 토요일 구름'

날짜와 요일, 날씨까지 일본어로 정갈하게 쓴 일기는 학생들의 강제노동 단면을 담고 있다.

'오늘은 지난 이틀간 산 정상에서 산기슭으로 내렸던 장작을 손수레로 전부 학교까지 옮기는 작업을 했다. 손수레를 끄는 역할은 뒤에 앉는 키 큰 사람이 맡기로 했다. 손수레 1대에 7명씩 붙었다.'

이렇게 시작한 일기는 다시 이어진다.

▲'서국정의 일기' 원본 모습 ⓒ

'7명이 힘을 합해 장작을 옮겼다. 산에서 학교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처음 2~3회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10회 정도 왔다 갔다 했을 때는 이제 견딜 수 없어 머리가 아팠고 발에는 물집이 여러 개 생겨 쓰라렸다. 이때 황군(皇軍) 아저씨들의 노고가 마음속 깊이 생각났다.'

'손수레 7인 1조 장작 운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놓은 이날 일기에서는 일제 군인을 '황군'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10대 소녀에 대한 일제의 세뇌교육이 얼마나 심하게 진행됐는지 알게 해준다.

같은 해 11월9일 일기에는 '벽돌 운반 짐수레 4대'와 관련한 기록이 나와 17세 여학생까지 일제의 강제노동에 동원됐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고구마 캐기와 넝쿨 올리기는 일요일도 없이 13일 연속 진행되기도 했다.

'6월 24일 토요일 구름.

5시 반 기상, 오늘은 여섯 번째 시간이 실업이었다. 오늘 실업시간에는 전에 우리가 심었던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시간이 되어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중략) 이파리가 시들어 적황색으로 된 것은 파보면 신기하게도 큰 열매가 맺혀 있다. 전부 파서 열매는 두 양동이가 나왔다.'

▲이리여고를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 고 서국정의 아들인 이만천 씨는 1945년경에 찍은 사전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만천 씨

공부를 하며 고달픈 강제노역은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다.

7월 28일자 일기에는 '황군을 생각하며 피부가 타서 늘어붙을 것 같은…'이라는 대목이, 10월 26일 일기에는 '몸 전체 괴로워. 장병들은 자지도 못하고…'라는 내용이 각각 실려 있다.

일기를 검열한 일본 선생은 아마 "피부가 타서 늘어붙을 것 같으면 황군의 노고를 생각하고 참아라. 천황 폐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더 참아라"라고 독려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일기를 쓴 19944년의 직전 해에는 일본이 '제4차 조선교육령'을 시행한 때이다. 교육령에는 '황국의 도에 입각한 국민의 연성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황국의 도'는 세계 만민을 한 가족으로 하는 천황 중심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일제의 무도함을 담고 있고 '연성'은 자신들의 제국 건설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마칠 수 있는 새로운 일본인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서국정의 일기'는 10대 중반 청춘의 문학적 감성을 담은 기록이 아니다. 국권을 찬탈당한 나라의 한 소녀가 일본 선생의 검열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가르쳐준 그대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옮겨놓은 글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일기를 영인본으로 설명하는 이만천 씨 ⓒ프레시안

일본 선생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일기인 만큼 소녀의 감성이나 낭만이 있을 수 없고 '내선일체'를 강요하는 학교생활에 순응하는 모습을 담은 자료로 평가된다.

일기 곳곳에는 일제 당시의 교육 방식과 교육시스템이 담겨 있고 일본 선생이 일기를 검열한 후 빨간 글씨로 쓴 사상통제의 증거도 확연히 남아 있다.

이만천 씨는 "일어로 쓴 어머니의 일기를 계속 번역하다 보니 모내기, 제조 작업, 보리 베기, 벼 베기, 벽돌 실어 나르기 등 필요 이상으로 너무 가혹하고 빈번하게 노동을 시켰음을 알게 됐다"며 "학교가 아니라 강제노동수용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간 개조를 위한 조련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변은진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HK교수는 "국권을 빼앗긴 울분에 찬 심정을 담은 한글로 쓴 당시의 다른 일기에 비해 '서국정의 일기'는 당시 학교 숙제의 일환인 제출용으로 기록한 정 반대의 일기"라며 "예민한 여고생의 일기까지 숙제 검사를 받았다는 당시의 교육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변은진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여고생이 일본어 정자로 반듯하게 쓴 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학생들까지 노동에 동원하는 등 당시 일제 교육정책의 전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록물"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