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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휘감은 욱일 문양 '아사히 깃발', 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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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휘감은 욱일 문양 '아사히 깃발', 그 불편한 진실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진보 성향 아사히의 기이한 침묵

지난 5일 개막한 일본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이하 여름철 고시엔)를 챙겨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작년에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한 재일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올해 대회에도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경기에서 패한 팀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경기가 끝난 뒤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선수는 물론 내년을 기약하며 고시엔 경기장의 흙을 담아가는 패전 팀의 특권이자 의식(儀式)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정작 이번 고시엔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대상은 따로 있다. 고시엔 구장 스코어보드 위에 나부끼고 있는 욱일기 느낌의 아사히(朝日) 신문사의 깃발이다. 올해 대회 사상 최초로 여자 야구 선수의 시구가 펼쳐지기 전 경기장 상공의 헬리콥터에서 떨어진 공도 아사히 신문 깃발에 쌓여 있었다.

▲ 고시엔 스코어보드에 펄럭이는 욱일 문양의 아사히 사기.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야구의 '야' 자도 몰랐던 아사히는 왜 고시엔 대회를 창설했나

아사히 신문은 1915년 대회를 창설했다. 오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사히 신문은 1879년에 창간해 1889년에는 도쿄에 지사를 설립했다. 이후 1908년 오사카 아사히와 도쿄 아사히 신문은 조직상 합병했지만 어디까지나 아사히 신문의 본사는 오사카였으며 신문도 두 지역에서 별도로 발행됐다.

도쿄 아사히 신문은 1911년 '야구 유해론'에 대한 연재 기사를 게재했다. 학교 측이 학생 야구 선수들의 수업 결손을 눈감아 주는 건 물론이고 음주와 폭행 등 선수들의 비행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상업주의로 흐르고 있던 학원 야구에 대한 비판도 추가됐다. '지식은 학습에서, 인격은 스포츠에서 만들어진다'는 굳건한 믿음 속에서 확산된 일본 학원 야구의 어두운 측면은 이 연재 기사를 통해 가감없이 노출됐다.

하지만 오사카 아사히 신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지역 내에서 치열한 신문 판촉 경쟁을 하고 있는 마이니치 신문을 압도하기 위해 뭔가 획기적인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오사카 아사히 신문은 일본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부상하고 있던 야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기삿거리가 없으면 기삿거리를 만든다'는 이들의 원칙에 야구대회 개최가 안성맞춤이었던 까닭이다. 야구의 '야' 자도 몰랐던 당시 무라야마 류헤이 사장이 제1회 대회에 일본식 복식을 하고 시구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이 주최한 여름철 고시엔 대회가 성공을 거두자 경쟁관계에 있었던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도 1924년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봄철 고시엔 대회)를 개최하면서 일본 야구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병사 출병 때마다 욱일기 역할을 했던 아사히 신문의 깃발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도쿄 아사히 신문은 1940년 완전히 합병했다. 하지만 신문사의 깃발은 여전히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의 깃발은 붉은 태양과 회사명을 나타내는 글자(朝)가 오른편 하단에 위치해 있고 반대로 도쿄 아사히 신문의 깃발에서는 이 것들이 왼편 하단에 위치한다. 두 깃발을 합쳐 놓고 보면 욱일기의 절반에 해당되는 윗부분과 일치한다.

▲아사히 신문 제호와 사기(왼쪽이 오사카 아사히, 오른쪽이 도쿄 아사히) ⓒX(옛 트위터) 캡쳐

아사히 신문의 회사명이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朝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도안의 신문사 깃발을 만든 것 자체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의 깃발은 1930~194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와 관련이 깊다. 중일 전쟁에 출정하는 병사들을 배웅하는 자리에서 아사히 신문 깃발은 빈번하게 사용됐다. 군대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아사히 신문 깃발은 사실상 욱일기 역할을 한 셈이다. 이후 일본 군대의 출병을 격려하는 환송회에는 아사히 신문 깃발이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다.

아사히 신문사의 깃발이 대회 스코어보드 위에 나부끼기 시작한 건 고시엔 구장이 개장했던 1924년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고려하면 스포츠 경기에서 욱일기 사용의 기원은 아사히 신문과 고시엔 대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욱일기 문양은 이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의 응원단이나 일본 축구 대표팀 서포터들이 사용하는 푸른색 깃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히 신문은 욱일기와 자사의 깃발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아사히 시문은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 대회에 일부 팬들이 욱일기를 소지하고 응원한 것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하지만 정작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자사의 깃발이 고시엔 대회에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한국어 교가와 아사히 신문 깃발의 부조화

지난 해 교토국제고가 여름철 고시엔 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극우성향의 산케이(産經) 신문은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와 고시엔에서 펄럭이는 아사히 신문 깃발의 부조화를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교토국제고 교가에 등장하는 '조상이 동해를 건너 왔다는' 가사 내용이 일본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욱일기에 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아사히 신문은 정작 욱일기와 다름 없는 자사 깃발에 대해 침묵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교토국제고는 학교 경영진이나 교장은 한국인이지만 야구부원이나 감독 그리고 160명가량의 전체 재학생 중 70%가 일본인이다. 그래서 지난 해 대회에서 교토국제고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 '한일 합작의 기적'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겐다이타카사키고를 제압하고 현재 대회 16강에 올라 있는 교토국제고는 지난 해보다 전력이 약해졌지만 팀 워크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그래서 대회 2연패는 다소 무리라고 해도 8강이나 4강 진출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평가다.

고시엔 구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와 스코어보드 위에서 펄럭이고 있는 아사히 신문사의 깃발은 광복 80주년과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한일 양국이 풀어야할 해묵은 숙제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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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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