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이 남긴 말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사람”
“조선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 헐버트다.”
이 말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 남긴 증언이다. 당시 일본 조사관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헐버트를 한국 독립운동의 배후 인물로 몰아붙일 단서를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나 안중근의 대답은 일본의 의도를 단호히 벗어났다. 그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선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될 분”이라고 답했다. 개인적 교류 여부를 부정하면서도, 헐버트가 한국인 전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도, 헐버트의 위상을 정확히 짚어낸 절묘한 답변이었다.
이 짧은 증언은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일본이 헐버트를 한국 독립운동과 긴밀히 연결된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인들에게 헐버트는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적 스승이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한마디는 일본의 두려움과 한국인의 존경심이 교차하는 역사적 장면이 되었고, 헐버트를 독립운동의 동반자로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글의 가치를 최초로 일깨운 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박사는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한글의 가치를 학문적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그는 고종에게 “백성들이 한글만 제대로 배워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고, 이에 따라 대한제국은 한글·한문 병용제를 도입했다.
또한 그는 “영어 알파벳 e 한 글자를 배우는 시간에 한글 자모 전체를 익힐 수 있다”고 말하며,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임을 논증했다. 실제로 그는 한글 띄어쓰기를 도입해 한국어 문장 체계를 새롭게 정립했고,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집필했으며,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 창간에도 참여하여 민중 계몽과 민족 정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한국 내 지식인조차 한글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했는데, 외국인 선교사였던 그가 이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조선을 세계적 문명국으로 본 시선
헐버트는 한글뿐 아니라 조선의 과학기술에도 주목했다. 1899년 그는 미국 <하퍼스 매거진>에 「코리안 인벤션스」를 기고하며 거북선, 금속활자, 현수교, 비격진천뢰, 그리고 한글을 조선의 ‘5대 발명품’으로 소개했다. '몇 대 발명품'이라는 개념은 세계사를 주도한 문명국에만 붙는 이름인데, 헐버트가 이를 조선에 적용한 것은 한국이 충분히 세계사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의 표현이었다.
이는 국내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고유의 과학 문명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분석한 시도였다. 그는 교육과 언론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조선이 결코 후진국이 아니며, 위대한 문명사적 전통을 지닌 민족임을 자각하게 했다. 당시 좌절과 체념에 빠져 있던 지식인들에게 이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였다.
헐버트는 한민족이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 믿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상실되던 시기에 그는 『The History of Korea』를 집필하며 “머지않아 한국은 세계에 우뚝 설 것이다(Before long, Korea will stand tall in the world.)”라고 기록했다. 또한 1919년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이를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3·1혁명'이라 명명하며, 한국 민중의 정신과 가능성이 세계를 향해 솟아오르는 시작이라 평가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동력과 국제적 명분
헐버트가 조선의 발명품과 위대한 역사를 세계에 알리지 않았다면, 독립운동가들이 한국을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더 굳건히 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위대성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써, 한국 독립이 단순한 민족의 바람을 넘어 인류 보편의 정의라는 인식으로 확산되도록 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노력은 독립운동의 정신적 동력이자 국제적 정당성을 지탱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8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
헐버트는 해방의 날까지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는 미주 한인 사회와 미국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호소했고, 협박과 견제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대한민국에서 내·외국인을 통틀어 문화훈장과 건국훈장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오늘의 한국은 세계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지만, 그 뒤에는 이름 없는 민중들과 더불어, 외국인임에도 민족의 벗으로 헌신한 헐버트가 있었다. 마침 내일(27일) 마포 양화진 묘역에서는 그의 서거 76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구한말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들이 잠든 그곳에서, 우리는 8월이 가기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 헐버트임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을 향한 사랑을 간직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은 그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진정한 벗이었음을 보여준다.
120년 전의 예언, 오늘의 현실
올해는 또 하나의 뜻깊은 해다. 헐버트가 고조선에서 조선까지를 아우르는 최초의 한국 통사 『The History of Korea』를 집필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적 서술보다 앞서, 한국 역사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기록한 업적이다. 120년 전 그가 꿈꾸었던 '세계에 우뚝 설 한국'은 오늘날 현실이 되었고, 그 길 위에 헐버트의 헌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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