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7일 총리직 퇴임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지난 7월 참의원(일본 상원) 선거 패배 이후 당내의 사임 압력을 결국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로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거론된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민당 총재직에서 사임하기로 했다"며 "새로운 총재를 뽑는 절차를 개시해달라"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 지금이 퇴진의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후진에게 길을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퇴임 소감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일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이 대통령과 결실 있는 회담을 했다"며 "(일본은) 아시아 나라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후임으로 작년 10월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월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한 데 대해 당내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이시바 총리는 국정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퇴진 요구를 거부해왔지만, 당 소속 의원과 광역지자체 지부 대표들 과반이 조기 선거를 요구하면 새 총재 선거가 열리게 되는 규정에 따라 퇴진파들이 표를 모으는 실력 행사에 나서자 결국 사임을 표명했다.
전날까지 자민당 의원 295명, 광역지자체 지부 대표 47명 등 총 342명 가운데 161명(의원 140명, 지부 대표 21명)이 조기 총재 선거 찬성 입장으로 집계돼 과반(172명)까지 11명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 입장 발표에 따라, 차기 일본 총리 자리를 놓고 집권 자민당 내 당권 다툼이 다시 가시화됐다. 일본 현지 언론은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40대 기수'로 꼽히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을 꼽고 있다. (이하 직함 생략)
고이즈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대신의 차남으로 자민당 의원 가운데 드문 40대라는 젊은 연령과 준수한 외모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2019년 일본 정부 환경상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참석했을 당시 했던 "기후변화 같은 큰 문제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해야 한다"는 연설로 일본은 물론 한국민들에게도 유명해졌다.
다카이치는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이시바를 오히려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던 인물이다(결선투표에서 패배). 다카이치는 일본 평화헌법 개헌을 주장하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등 행보로 '여자 아베'로 불리며 일본 우익으로부터는 지지를, 주변국으로부터는 우려를 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차기 총리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는 다카이치가 23%로 1위, 고이즈미가 22%로 2위로 나타났다. 다만 자민당 지지층에서는 고이즈미 32%, 다카이치 17%로 형세가 반대였다.
이들 외에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모테기 도시미쓰 전 자민당 간사장 등도 차기 총리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하야시 장관은 현 이시바 내각 각료여서 참의원 선거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편 현재 일본 의회의 의석 분포는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 여소야대로 바뀐 상태여서,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야권이 총단결한다면 정권 교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작년 중의원 선거 직후에도 이미 여소야대였지만 자민당(192석)-공명당(24석) 집권연정이 재적(465석) 과반(233석)에 못 미치는 의석(216석)으로도 총리직을 가져갔다.
이번에도 현실적으로 진보성향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148석)과 보수성향 일본유신회(38석)·국민민주당(28석), 극우성향 참정당, 극좌성향 공산당 등이 총단결하기는 어려운 만큼 자민당 연정이 총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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