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체제와 입시제도는 부유한 계층의 기회를 보장하고 가난한 계층의 기회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왔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짐은 썩 밝지 않아 보인다. 먼저 교육부장관과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임명을 둘러싸고 혼선이 있었다. 교육부장관에는 다행히도 교사단체들과 교육사회단체들의 지지를 받는 최교진 전 세종시 교육감이 임명됐지만, 교육비서관은 누가 임명될 것인지 미지수다. 얼마 전까지 교육비서관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나돈 인물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정시모집 확대를 강하게 주장해 온 분이다. 정시와 수시 배분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교진 교육부장관은 낙마한 이진숙 전 장관 후보처럼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지방대와 사립대의 반발을 사고 있으며, '고교학점제'의 전면 실시에 대해서도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현재 논란이 되는 '정시 확대' 여부, '서울대 10개 만들기', '고교학점제' 등 세 가지 정책들이 초래할 계층 간 교육 기회의 불평등 심화와 저소득층의 소외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독한 계층 간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고쳐지길 바랄 뿐이다. 이 정책들에 대한 찬반 입장 표명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교육은 국민의 세금을 엄청나게 투입하는 일이기에, 효율성이 높아야 하며 가장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교육정책 역시 투자의 효율성을 중요시해야 하지만, 사회적 평등(공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견해는 능력이 뛰어난 소수의 학생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효율적)이며, 교육받은 엘리트가 경제사회 발전을 견인한다는 전통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역량이 높은 학생을 모아 교육하는 일류대학 육성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후자는 교육의 혜택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이 다니는 대학이 도태되지 않도록 하고, 이들이 대학 졸업 후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교육정책에 관해서도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크게 다를뿐더러 진보 진영 내에서도 학자에 따라 상당한 시각차가 있다.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준 높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국가 경쟁력의 기반으로서 고등교육이 가진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각들과 고등교육체제를 통한 심각한 계층 간 불평등해소가 인간적인 삶의 조건 확보에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들이 대립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세 가지 정책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성격을 갖는가, 아니면 평등성을 확대하는 성격을 갖는가?
정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가장 오래된 학생 선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의 성적이 그의 잠재력이라고 보고,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다. 대체로 단순한 방식이 가장 공정한 방식이지만, 사교육의 힘이 성적을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수능점수가 곧 잠재력이라고 할 수 없다.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액이 학생의 성적 순위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2024년 초중고교육비조사결과'를 보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인 가구는 월 67.6만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고, 700~800만 원 가구는 55.6만 원을 지출하고 있어 소득이 낮을수록 액수는 감소했다. 하지만 월 300만 원 미만 가구도 20.5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 심지어 부모가 직업이 없는 가계조차도 43.6%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왜 소득수준이 높은 가구가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겠는가? 답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알고 있다. 비싼 사교육일수록 사실상 높은 성적(점수)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왜 생활이 어려운 가계도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가? 그 이유도 다 안다. 자녀가 대입 경쟁에서 약간이라도 유리해지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국민 전체가 사교육 경쟁을 하는 나라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에서는 소득수준별 사교육비 격차가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를 가져오는데,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최상위권 대학에 5.4배 많이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당연히 부모의 경제력이 입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상위권대 입학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학생의 잠재력이나 다른 요인은 25%에 불과하고, 75%가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분석 결과는 많다.
수도권 주요 사립대학들은 집안 배경이 좋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원하고 있다. 전국 대학의 정시모집 전형을 통한 신입생 충원 비율이 대체로 20% 정도인 데 비해, 입시에서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수도권 사립대학들에서는 그 비율이 40%를 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시모집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부유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그만큼 중저소득층의 교육 기회는 줄어든다. 정시모집 확대는 이미 30조 원에 육박하는 사교육비를 더욱 팽창시킬 것이 확실하다. 어쨌든 사교육비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서는 곤란하다. 그만큼 교육의 공정성은 사라지고, 불평등의 덫만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 '각종 편법과 비리가 있는' 수시전형보다 '시험 성적으로 승부를 보는' 정시전형이 더 공정하다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입시제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며, 능력주의의 함정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학생부 전형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교과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교과 전형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하고, 학내외 여러 가지 활동을 반영하는 종합전형은 고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그래서 수도권 주요 사립대들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중이 40% 정도나 되고, 학생부교과전형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과는 완전히 다른 구성이다. 다만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시의 공정성도 크게 개선됐다고 하니, '정시 확대' 주장의 배경을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경쟁이 문제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경쟁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야 말로 이러한 목적을 갖고 모색된 정책안이다. 이 정책의 주장자들은 9개의 지역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재정을 지원하여 '이들의 서열을 높임으로써' 수도권대학에 집중되는 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지역별 명문대 육성을 통한 지역발전도 이룰 수 있으므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대로 된다면 멋진 계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들이 과소평가했거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 이들은 지역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증가해 교육여건이 호전되면 상위권 학생들 일부가 수도권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지역의 국립대학에 많이 진학할 것이라 전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착각이다. 요즘 청년들은 지방을 철저히 회피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내 고교 출신 학생 중 지역거점국립대학에 입학하여 지방으로 진학한 학생은 아주 적다. 부산, 광주, 대구, 진주, 전주 등에 소재한 대학들은 서울 출신 신입생들의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들 중 상당수가 의약계열(의대·치대·한의대·수의대·약대) 신입생이라고 한다. 대전·청주 등 서울에 가까울수록 비중은 조금씩 증가하나, 그래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춘천에 소재한 강원대는 당일 통학이 가능하므로 그 비중이 20%를 넘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사실, 이미 지역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 중위권 대학들보다 훨씬 높지만, 선호도에서는 크게 뒤진다. 그래서 이 정책은 대학서열의 형성 과정이나 청년들의 가치관 및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이래서는 정책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주제와 관련해 가장 큰 우려가 되는 것은 "한국이 교육지옥인 이유는 SKY 중심의 병목현상 때문에 생긴다. 곧 지방대나 직업전문대학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1년에 30~40조 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는 직업전문대학이나 지방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 2021)라는 인식에 있다. 앞서 설명할 때도 언급했지만, 상위권 학생들만 입시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하위권 학생들도 목숨을 건 경쟁을 하고 있다. 대학입학 지원자들 전체가 하나라도 서열이 높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오히려 중하위권 수험생들이야말로 입시 관련 스트레스가 더욱 심할 것이다. 지방대나 전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무슨 사교육을 받고, 무슨 경쟁을 하겠냐는 생각은 엘리트들의 편견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중상위권 지원자들을 위한 정책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상위 10~20% 정도의 학생들에게 선택지를 넓혀주고 이들이 입학하는 지역거점국립대학에 재정지원을 집중함으로써, 중상위권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으로 변질된다. 한국은행 등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부모의 소득수준과 학생의 성적이 상관관계가 크다는 사실은 성적 중상위권 학생이 곧 소득 중상위권 학생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만약 지역거점대학에만 재원을 집중하고 중저소득층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는 지방대와 전문대는 방치한다면, 지방대와 전문대는 생존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소위 '지잡대'라고 비하해서 불리는 이 대학들이 도태된다면, 중저소득층 학생들의 고등교육 기회가 위협받게 된다. 지방대가 도태되면, 지방대와 전문대가 소재한 중소도시들이 빠른 속도로 소멸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인데, 이것을 예상했는지 묻고 싶다.
이렇게 '서울대 10개 만들기' 역시 부유한 계층에게 더욱 혜택을 더하고 가난한 계층을 소외시키는 불공정한 정책이다. 바로 이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계층 중립적인 정책인가? 그렇다고 할 수가 없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학습 동기를 유발하게 하고자 목적에서 도입됐다. 또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가 일정한 수준을 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목적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목표를 가졌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도입되어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찬반 입장에서 벗어나 평등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저소득계층에게 불리한 정책이다.
우선 자사고나 특목고 등에서 개설되는 과목과 일반고에서 개설되는 과목 수가 다르다. 한 유명 사교육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자사고와 일반고의 개설과목 차이가 드러난다. "전국 고교 41개교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과목이 개설된 학교는 전국 자율형 사립고 A고로 127개 과목을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지방 일반고 B고는 63개로, 과목 수에서 두 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자사고와 학생 수가 많은 학교일수록 개설 과목 수가 많았다. 전국 자사고 6개교는 평균 105.3개, 서울 자사고 10개교는 평균 100.2개, 서울 일반고 10개교는 평균 97.7개, 지방 소규모 일반고 5개교는 평균 75.6개로 나타났다." (영남일보, 2025. 5. 11. 보도)
이처럼 고소득층 자녀가 주로 다니고 재정이 넉넉한 자사고는 상대적으로 많은 과목을 개설할 수 있지만, 일반고는 그렇게 많은 과목을 개설할 여력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고교학점제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불리한 제도이다.
지역적으로 볼 때, 지방 소규모 학교는 개설가능한 과목 자체가 제한적이며 수강 인원이 부족해 폐강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비정규 교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자사고나 특목고가 많은 과목을 개설하는 것이 불법이나 일탈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일반고 특히 우리나라 전체 고교생의 절반이 넘는 학생이 재학하는 지방 중소도시의 일반고 학생들은 더욱 불리한 입장이 된다. 그래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등 대도시 교육청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방교육청은 이를 흉내조차 낼 수 없고 결국 중저소득계층의 대학 진학 기회가 축소되고 만다. 그래서 이 역시 교육불평등의 기제가 된다.

현재 교육분야의 쟁점인 '정시 확대' 여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고교학점제' 실시 등 세 가지 정책은 모두 효율성을 추구하는 정책이어서 교육의 평등성(공정성)을 악화시킨다. 현실을 보라! 고소득계층의 자녀가 고액의 사교육을 받아 높은 성적으로 의약계열이나 SKY 등 최상위서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 고소득 전문직이나 권력직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 중저소득계층 자녀는 적은 사교육비로 낮은 성적을 얻어 지방대나 전문대에 진학하고 졸업 후 비정규직이나 저소득계층으로 다시 편입되고 있다. 이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제라면, 효율성 강화할 목적의 정책들은 폐기되거나 크게 보완돼야 한다.
'정시 확대'와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는 고소득계층에 유리한 제도이다. 또 공교육 대신 사교육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왜 교육부가 이런 일에 소극적인지 이해가 안 된다. '정시 확대'는 중저소득층에게 재앙과도 같은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불평등을 심화하는 정책이다. 정책의 원래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중저소득층이 주로 다니는 지방대·전문대와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들이 다니는 대학들을 우선 지원한 바 있다. 유럽처럼 고등교육 전체를 국립대 중심으로 운영한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사립대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고교학점제' 역시 자사고나 특목고에 재학하는 고소득계층 자녀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중저소득계층 자녀들이 주로 재학하는 일반고나 지방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역대 정부가 시행한 각종 교육정책과 입시제도는 모두 상류층에게 유리한 것이었다. 입시경쟁 역시 그들의 자리 확보를 위한 것이었고, 교육체제도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지원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정부는 이러한 교육 독점구조를 해체하고 평등교육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범사업으로 지역거점국립대학의 신입생 일부를 5~6년간 네덜란드 의과대학처럼 추첨제로 뽑아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육시장과 노동시장의 연결을 잘 관찰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입시경쟁의 원인인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선언하고, 대학교육비 국가부담 정책을 조속히 실시하길 바란다. 국민주권정부에서 '가진 자는 더욱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자는 그 가진 것까지 다 빼앗기리라'라는 저주를 없애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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