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3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해서 널리 쓰이고 있을 때였다. 조선일보는 <아무일도 안 하며 '헬조선' 불만 댓글…'잉여'인간 160만명으로 급증>(2015.10.13.)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두 명의 인물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게 전부"인 31세 김씨(가명)와 "취업 준비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먹고 책을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38세 박씨. 이어 <조선일보>는 "잉여들은 사회 불만 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박씨의 경우 인터넷 기사를 접할 때마다 다양한 악성댓글을 쏟아 낸다"고 전했다. 이들이 '헬조선' 같은 말을 쓰면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는 쉬고 있는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쓰던 '잉여'라는 표현을 가져와서 조심성 없이 사용했다. 또 마치 한국의 현실은 불평등하지 않은데 게임만 하는 30대들이 '헬조선' 댓글을 달아서 문제인 것처럼 몰고 갔다.
며칠 후, 당시 동국대에 있었던 이동걸 교수(나중에 산업은행 회장)가 이 기사를 전면 비판하는 내용으로 "'헬조선' 일보"(2015.10.18. 한겨레)라는 칼럼을 썼다. 칼럼은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을 모두 잉여라고 치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조선일보가 인용한 바로 그 표의 아랫부분을 보면 조선일보가 잉여라고 한 160만명 가운데 20대는 30만명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일보가 불만 댓글이나 쏟아내는 잉여라고 매도한 사람들의 약 3분의 2는 조선일보의 주독자층인 50대·60살 이상"이라고 쏘아붙였다. <조선일보>가 "입맛에 맞는 극단적 사례 한두 가지"를 찾아서 "그것이 마치 전체인 양 현실을 왜곡"했다고도 비판했다.
그래도 10년 전에는 청년들의 입장을 알아주고 한 마디라도 해주는 지식인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 매체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 그럼 10년 동안 <조선일보>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힘든 일을 기피하는 청년 세대의 직업관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사설] 일자리 찾지 않고 그냥 쉰 20대 35만7000명, 전 연령층 最多(조선일보 23.06.19)
'쉬었음' 청년이 30만 명대였던 2023년, <조선일보>는 '쉬었음' 청년을 다룬 사설에서 고용시장의 이중구조를 지적했다. 그런데 그 앞에 굳이 "힘든 일을 기피하는 청년 세대의 직업관에도 문제가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쉬었음'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선 최근에는 <조선일보>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서 또 찾아봤다. '쉬었음'이라는 검색어를 넣었더니 어느 서울대 명예교수의 칼럼이 나왔다. '놀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제목부터 불안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동 자체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혐로(嫌勞)사회'로 급변하고 있다. (…) 노력을 '노오력'이라 빈정대는 가운데, 일도 안 하고 일자리도 찾지 않는 '그냥 쉬는' 청년 인구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된 지도 오래다.
[朝鮮칼럼] 놀기 좋아하는 대한민국이 만든 '嫌勞 사회'(25.04.08 조선일보)
이 명예교수는 한국처럼 '워라밸' 담론을 숭배하는 나라도 드물다고 주장하면서 "자립정신이나 자기책임 대신, 국가를 상대로 '응석받이'나 '떼쟁이'로 살아가는 법에 너무나 익숙해진 작금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리고 "지도자 스스로 근면과 성실, 그리고 정직의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훈계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단순하고 선명하다. 1960년대로 돌아가서, 사람이 갈려나가든 말든 그냥 열심히 일하자는 거다. 이러면 청년들과 대화는… 시작조차 불가능하다.
이건 외부 칼럼이니까 <조선일보>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다. 며칠 전에는 <조선일보>도 20대 청년의 삶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정씨는 하루에 보통 600~700개, 한 달 기준으로 1만6000개 이상의 물건을 배송한다고 했다. 통상 택배 기사들이 한 달에 배송하는 물량은 6000~7000건이라고 한다. 한 현직 택배 기사는 "한 달에 1만5000개를 배송하려면 토할 정도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한달 1200만원 벌어요" 26살에 택배로 3억 모은 청년의 하루(25.09.16 조선일보)
택배기사로 일하는 26살 청년. KBS 교양 프로그램에 등장한 청년인데, 6년 동안 악착같이 뛰며 무려 3억 원을 모았다고 한다. 방송과 기사에 따르면 이 청년이 받는 수수료는 택배 1건당 700원. 매일 30km, 걸음 수로는 5만 보를 걷는다.
어떤 분야든 일을 빼어나게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로 말하자면 상위 1%일 것이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예술의 경지가 따로 없다. 그러나 모두가 상위 1%일 수는 없다. 하루 5만 보씩 뛰어다니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조선일보>가 부각한 의도는 뭘까. 이렇게 성공한 청년도 있으니 불평하지 말라? 남들의 2배 이상 뛰어다니며 돈을 벌면 된다?
그러나 개인을 넘어서는 문제도 있다. 이 청년이 등장한 KBS 영상을 보니 국내 택배업계 1위인 그곳인 듯했다. 그런데 택배 수수료가 건당 700원이라고? 인터넷에 공개된 몇 년 전 수수료보다도 낮잖아! 물가는 상승했는데 임금은 하락한 것이다. 만약 적정한 수수료가 지급되었다면 이 청년은 3억보다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고, 수만 명의 다른 택배 노동자들도 돈을 더 벌거나 과도한 장시간 근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정슬기님은 쉬는 날이 따로 없이 주 6~7일 일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본심은 다른 데 있다. 한국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져야 하고, 노란봉투법으로 기업에 부담 주면 안 되고, 실업급여 확충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 경제신문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사람을 더 뽑고 싶지만 경기가 나빠져도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사설] '청년·고령층 고용률 역전'엔 노동 개혁 거부 정치도 책임(25.09.19 조선일보)
월급 200만원 일자리 구하기도 녹록지 않은데, 실업급여 하한액이 월 192만원이다. '그 돈 받고 일하느니 노는 게 낫다'고 하는 일부 청년의 근로 윤리만 탓할 일이 아니다.
[토요칼럼] 청년만 탓할 수 없는 '쉬었음' 문제(25.09.05 한국경제)
급변하는 취업 여건과 경직된 노동 구조에 가로막힌 청년 구직난을 해소하려면 구조 개혁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설] 30대 '쉬었음' 또 최악…노동시장 경직성 해소해야(25.09.11 서울경제)
각종 노동 규제를 대대적으로 철폐하는 특별법 제정 수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시론] 노동권 보호에 가려진 '쉬었음' 청년들(25.09.18 한국경제)
이런 것은 청년을 대변하는 주장이 아니다. 청년을 간판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기업에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는 정책은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최소한의 노동권 보호를 '노동 규제'라 부른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해고가 자유로운(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세상이다. 경제신문들의 주장대로 다 따라가다가는 한국에 안정적인 일자리가 남아나지 않겠다.
그럼 진짜 청년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그 이야기는 청년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도 화두를 꺼냈으니 나름의 대답은 제시하면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그간 여러 노동조합과 접촉하면서 또는 온라인 공간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다.
-청년들은 '쉬었음'이라는 용어 자체를 싫어한다. 그동안 '쉬었음'과 관련된 논의가 일방적으로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쉬었음 이야기만 나오면 일부 기성세대는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느니 '책임감'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런 말들은 다른 시대에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자기 확신일 뿐, 현재를 살아내야 하는 청년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준다. (아직은 통계상 '쉬었음'이 공식 용어기도 하고,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쉬었음'이라는 용어를 그냥 사용했다. 양해를 구한다.)
-청년들은 '쉼 당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대학만 잘 가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살았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잡은 일자리가 월 200만원 남짓 받으면서 야근과 회식까지 따라다녀야 하는 자리였다니. 청년들의 시각에서는 '어른들에게 속은 것'이다. 나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직장내 괴롭힘까지 더해지면 퇴사 말고 답이 없다. 과감하게 생산직을 선택한 청년들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소한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일 속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뛰어넘는 미래가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모두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속에서 청년이 겪는 일들이다.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보상을 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힘든 일'로 여겨지는 직종일수록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 기본급이 적어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통해 소득 수준을 맞춰야 한다. 체력이 유달리 강한 사람이 아니면 오래 버틸 수가 없고, 자칫하면 자기 돈으로 병원비까지 내게 된다. 어느 세대보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오늘날 청년들의 눈에는 이런 현실이 다 보인다. 힘든 자리로 가라고 이야기하려면 '킹산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든가.
-'눈높이' 이야기는 지겹다. 최근 발표된 고용노동부와 <대학내일>의 19~34세 청년 200명 설문조사는 청년이 바라는 일자리를 더 구체적으로 수치화했다. 월 급여 235만원 이상, 통근시간 63분 이내, 추가근무 주 3.14회 이내. '깨끗한 화장실'과 '휴게공간'도 청년의 우선순위였다. 이 조사 외에 최근 몇 년간의 어느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청년의 눈높이는 과도하게 높지 않다. 청년이 보기에는 오히려 기업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 대학 졸업 시점의 청년에게 경력자와 경쟁하라고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인가?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청년 탓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 '2024년 상반기 청년층 대상 채용동향조사'에서 청년 10명 중 9명은 '임금·복지가 좋다면 중소기업 취업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 대기업 임금이 100이면 중소기업 임금은 57.7 수준이니, 청년의 선택지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경험 있는 청년의 53.5%가 첫 직장에서 200만원 미만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일하던 청년이 임금 체불이나 미지급 같은 부정적인 경험까지 하게 되면? 당연히 '쉬었음'으로 빠진다.
-'쉬었음' 논의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쉼'의 동기나 양상이 다양한데 다 같은 '쉬었음 청년'으로 뭉뚱그려지는 것도 청년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다. 청년이 일자리에 관한 생각이나 쉼의 이유를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취업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잖아.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생애단계별 행정통계'는 청년층의 생활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청년층(이 조사에서는 만 15~39세) 유주택자 비율은 11.5%. 청년층 10명 중 1명만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청년층의 평균소득은 3000만원에 못 미치지만 대출잔액은 3700만원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원을 넘어가는 가운데 청년이 취업에 성공해도 내 집 마련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집값을 계속 부양하거나 적당히 관리만 한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오늘도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든 청년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쉬어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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