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배임죄 폐지에 대해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하며 입법 중단·철회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24일 "정부·여당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임을 기억하고 배임죄 폐지 입장을 철회해야 한다"며 "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회사를 마음대로 좌우하고자 하는 재벌총수 일가의 숙원일 뿐, 국민과의 약속이 아니다"라고 했다.
참여연대는 "(배임죄는) 실무상으로 계속 적용되면서 총수 일가와 지배주주 전횡을 억지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를 폐지하면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처벌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지금까지 경제권력을 가진 총수 일가가 법의 감시망을 피해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계속돼 왔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여당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와 독단적 의사결정을 용인하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3%룰 강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연이은 상법 개정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지만,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것은 이러한 취지와 반대되며 제도 개선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같은날 낸 성명에서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배임죄 폐지 논의는 한국 자본시장의 기본 질서를 뒤흔들고, 기업 오너와 경영진의 전횡을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선언"이라며 "이러한 시도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주가지수 5000에 도달하고 자본시장 선진화를 만들어내겠다'는 지향에 오히려 반대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추진되고 있는 배임죄 폐지 논의는 정말 어렵게 진행된 상법상 이사충실의무 강화의 취지도 몰각시키고 자본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한국 재벌과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현실을 고려할 때, 배임죄는 기업 경영자들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는 핵심 장치이며 이를 폐지하는 것은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실련은 "총수 일가의 편법 승계, 일감 몰아주기, 부당합병 등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시킨 중대한 사건들에서 배임죄가 공정한 책임추궁의 최소한의 수단이 돼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배임죄 폐지는 곧 재벌총수와 대기업 경영진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이는 소액주주와 국민 경제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실련은 "배임죄 폐지 논의는 즉각 중단하고, 더 시급하고 중요한 △민사상 징벌배상 및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과 △추가적인 재벌·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입법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도 "배임죄는 횡령죄를 보완하는 핵심 범죄"라며 "(폐지 주장은) 법률에 대한 기본적 이해 부족과 경제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회사 자금을 직접 가져가면 횡령죄이지만, 회사 자산을 사적 이익에 이용하는 경우는 횡령으로 포섭되지 않아 배임죄로 의율해야 한다"며 "독일과 일본도 명문으로 배임죄를 두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들 국가는 기업하기 나쁜 나라인가? 민주당의 주장은 배임죄의 본질과 해외 입법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변은 또 "배임죄는 경제적 신뢰를 지키는 장치"라며 "배임죄는 재산을 보호하고, 위임관계 속 신뢰를 지탱하며, 재산소유자가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폐지한다는 것은 경제적 신뢰관계 위반에 대한 제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경영자가 회사의 이익을 외면하고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회사와 이해관계자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되는데, 배임죄를 없애면 이러한 행위가 처벌받지 않게 된다"며 "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회사를 배신해도 괜찮은 나라”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은 경제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배임죄 폐지 주장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보당 정책위원회도 이날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특혜 입법"이라며 배임죄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진보당은 "배임죄가 존재해도 재벌 총수들은 법망을 피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형적 기업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재벌총수의 전횡을 억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시장 활성화'이다. 민주당은 배임죄 폐지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19일 경제인 간담회 당시까지만 해도 "배임죄 부분 완화"라는 표현을 썼으나, 이달 15일 규제 간담회에서는 "한국에서는 잘못된 판단 하나로 배임죄로 기소되는 등 위험이 크다"며 "배임죄라는 게 '너 이렇게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해서 기업에 손해를 끼쳤어'(라고) 기소하는 것인데 유죄 나면 감옥에 간다",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하는 게 기업의 속성인데 이런 걸 대대적으로 고쳐보자"고 했다.
지난 2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대통령은 완화 내지는 폐지, 이 두 개에 있어서 크게 구분 없이 지금 생각하고 계신다"고 한 것이 분수령이었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 이후, 민주당은 "배임죄는 폐지할 것"(김병기 원내대표, 지난 21일 취임 100일 간담회), "배임죄 폐지는 재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숙원과제"(김 원내대표, 23일 원내대책회의)라며 '정기국회 내 폐지'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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