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학규는 24년동안 김해에서 귀양살이를 했을까?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전 김해시장·숭선전 참봉)은 26일 롯데호텔앤리조트 김해 수로홀에서 제2회 김해역사문화학술대회 '낙하생 이학규의 삶과 김해'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김 연구소장은 "이학규는 서울에서 김해로 떨어졌다"며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죄인이 되어 벼랑길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학규는 낙하생이 되어 김해의 풍토·지리·산수·의약·도리·천문 심지어 금수(짐승)까지 시문(詩文)으로 남겼다"고 밝혔다.
김 연구소장은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석학들께서 논하고 말하고 있다"면서 "김해가 결코 조선 8도의 어느 땅보다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낙하생의 작품에서는 별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학규의 유배 생활과 귀양살이 24년의 김해 생활은 1985년 9월 한국학 문학연구회에서 펴낸 낙하생전집(洛下生全集)에서 느낄 수 있다. 이에 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에 의해 많이 발표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연구소장은 "이학규의 많은 작품이 김해의 제반 삶을 담고 있지만 비관과 비판이 많다"며 "가감 없이 당시 김해의 희로애락 삶과 부끄럽고 묻고 싶은 삶을 소롯이 담아낸 낙하생이다"고 밝혔다.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장은 "이학규의 시문은 보석이다"고 하면서 "김해의 1800년대 초기 사회를 만나고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보다 깊은 작품들은 학자들이 노력해 주실 것이기에 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낙하생 이학규의 <한식날 연자루에 올라>의 시(詩)는 이렇다.
고을의 성 남쪽 물과 구름의 끝자락을 바라보고자
천고의 연자루에 오르고 보니 혼자임이 한스러워 탄식한다
눈에 가득한 산천에서 두견새 울음소리만 들리고
반신은 비바람 맞으며 난간에 기댄다.
날으는 꽃잎 아득함으로 서로를 아끼고
꽃 같은 아름다운 풀 무성하여 다 보지 못하네
유자(낙하)에게 무슨 일이 가장 관심거리겠냐만
오늘 고향 식구들은 식은 밥이나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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