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의 문화도시 사업이 올해로 종료를 맞이한다. 2021년부터 5년 동안 이어져온 ‘공동체문화도시 완주’ 사업은 이제 마지막 해를 보내며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단순한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완주에서 쌓아온 성과와 경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역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주체가 행정이 아니라 주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청년예술인 공동체는 마을회관을 음악회장으로 바꾸고 문화사랑방 ‘다락(多樂)’을 열어냈다.
이 작은 실험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창업과 지역 정착으로 이어지며 문화가 청년의 삶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 두억행복드림마을의 어르신들은 풍물과 지게장단을 되살려 마을을 문화 브랜드로 만들었고, 동상면 주민들은 농한기 사업과 ‘밤티널 TV’ 제작으로 공동체의 자부심을 키워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가 매드 프라이드(Mad Pride) 축제다. 완주에서는 지역 문화공동체 ‘아리아리’가 2022년부터 이 행사를 개최해 왔다. 이는 지역 맥락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화의 주체로 나서려는 시도이자, 문화적 동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축제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정신장애는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삶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주민과 당사자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었고 주민들은 문화가 서로 다른 존재를 이어주는 힘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도시 선정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문화도시의 경험은 산업과 도시재생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완주는 경북 구미·경남 창원과 함께 정부의 ‘문화선도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471억 원을 확보했고, 여기에 322억 원의 랜드마크 조성사업 등이 더해져 총 885억 원의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현재 국가산단이 운영되는 수많은 곳을 제치고, 국가산단을 운영하지 않은 지역에서 선정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문화가 단지 예술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경제를 살리고 지역의 미래를 여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정부 지원은 곧 끝나지만, 완주의 문화도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주민들이 함께 만든 축제와 모임은 기록 속에 머물지 않고 일상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문화도시의 성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무형의 자산이다. 주민들의 마음속에 쌓인 자부심, 이웃과 함께 만든 기억, 그리고 문화로 연결된 관계망이야말로 완주가 앞으로 지켜내야 할 가장 큰 성과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에서 오랫동안 주민으로 살아가며 임실치즈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뿌리내리게 한 지정환 신부님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치즈 신부님’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삶의 가장 큰 열정은 완주 소양에서 진행한 장애인 재활과 공동체 사업에 쏟아졌다. 신부님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자립을 강조했다. '누운 장애인은 앉게, 앉은 장애인은 움직이게'라는 원칙은 자립과 존엄을 향한 실천이었다.
그는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 보았다. 무지개가족 공동체에서는 서로 돌보고 함께 생활하며,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믿음을 존중했다.
그 안에서 장애인은 시민으로, 삶의 주체로 설 수 있었다. 신부님은 '무지개장학재단'을 세워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학업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고, 치즈 사업의 일부 수익을 장학재단에 보탤 만큼 끝까지 그들의 미래를 위한 길을 열었다.
그 철학은 간명하다. “그들에게도 가라. 그들이 가진 것으로 하라. 그들이 한 것으로 하라. 그리고 떠나라.”
이는 스스로 살아가도록 돕고, 그 힘을 인정하며, 언젠가는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곁에서 물러나라는 가르침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문화도시 완주의 정신은 바로 이 철학과 닮아 있다.
주민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되고, 각자가 가진 힘으로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완주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지켜야 할 길이다.
중앙정부의 여러 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다 보면 완주를 자랑할 기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완주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 된다.
주민이 쌓아 올린 성과와 기억은 곧 완주의 자산이며 이 자산이 새로운 시작을 열어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완주가 가진 진짜 힘이고, 우리가 함께 이어가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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