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5인 이상 사업장에서 30~34세 고졸 노동자는 월 평균 185.1시간 일하고 330만 원 벌었고, 대졸 이상 노동자는 월 평균 171시간 일하고 424만 9천 원 벌었다. 40~44세 고졸 노동자는 월 평균 179.9시간 일하고 377만 9천 원의 임금을 받았고, 대졸 이상 노동자는 월 평균 169.2시간 일하고 587만 7천 원의 임금을 받았다. 월급만 놓고 보면 대졸 이상이 고졸 노동자보다 약 28~55% 정도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것, 더 오래 일할수록 이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통계다.
2018년쯤에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을 비롯해 은행들에서 지원자들의 출신 대학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고 면접 점수 등을 조작한 일이 알려져 파문이 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지나치게 편법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이라 문제가 됐을 뿐, 많은 기업에서 채용 시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2024년 인식조사 결과 74%는 우리 사회에서 출신학교 및 학력 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85.2%는 채용 과정에서 출신학교 및 학력이 영향을 준다고 응답했다.(교육의봄·강득구 국회의원실 의뢰, 리얼미터 조사)
경쟁으로 몰아넣는 불안,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경쟁
우리 사회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따져 보면 이상한 일이다. 대학교에서 무슨 학문을 전공하고 싶다거나,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뚜렷한 뜻이 없어도 대학에는 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대학은 일단 가야 하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이른바 '서열이 더 높은' 곳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통계와 인식조사가 보여 주듯, 대학을 가지 않으면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고 각종 차별을 당하게 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대학에 진학한다. 이에 더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사회적 기회와 대우가 달라지므로 대입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
사실 다수의 학생이 대학 입시 공부에 열심인 것은 '경쟁에서 승리하여 잘살기 위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런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의대 진학 등을 꿈꾸는 성적 최상위권의 학생들뿐이다. 게다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자산소득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도 만연해 있다. 많은 학생이 입시 경쟁에 참가하는 이유는, 그나마 사람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그것밖엔 길이 없어서다. '학벌의 힘이 약해졌고 학령인구가 줄어서 입시 경쟁이 약화될 것이다'라는 예측들은 단견이었다. 일정 이상 인정받는 대학 졸업장은 성공의 보증이 아니라, 인생이 망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증 내지 출발선이 되었다.
통계와 사례로 뒷받침되는 현실적인 차별과 불평등이든, 입시에 매몰된 좁은 교육환경 속에서 과장된 인식이든, 입시 경쟁이 유지되고 격화되는 배경에는 결국 생존에 대한 불안이 있다. 학력·학벌로 노동과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는 사회가 교육의 경쟁과 서열화를 유지·강화시키고 있다.
물론 사회적 원인이 일방적으로 교육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불평등한 교육환경, 수십 년간 유지된 서열화된 입시-학력·학벌 체제가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 확대시켜 온 측면도 있다. 능력주의 경쟁 교육 체제의 한층 더 고약한 점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여기에 저항할 수 없게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노동자 간 소득의 차이도 모두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똑똑하지 못한' 개인의 탓이 된다. 입시 체제 아래 더 고통받고 더 열심히 공부했을수록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에 순응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불평등이 크고 하층에 있는 이들의 비참함이 클수록 경쟁을 재촉하는 불안도 커진다. 이러한 불안과 불행의 되먹임에 의해 교육과 노동이, 사회 전반이 망가져 왔다.
차별금지법이 교육혁명에 필요하다
그동안 입시 제도나 교육 정책을 개혁하여 경쟁 교육의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그 모든 정책이 아무런 효과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 낸 성공한 정책도 없다. 수업과 시험의 방식을 바꾸고, 내신과 수능과 그 외 요소들의 비율을 조정하는 등 입시와 교육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비롯해 학교 교육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재정립하며, 사회적 불평등, 노동에서의 차별을 모두 개혁하는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혁명은 임금 격차를 비롯해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 개혁과 함께 이루어져야만 추구 가능한 목표다.
교육을 바꾸기 위해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 나가기 위한 첫째 정책이자 기초적 입법으로 차별금지법을 꼽겠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등 노동 영역, 교육기관 등에서의 각종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차별이 일어났을 시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 법률이다. 차별금지법은 기업이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이유 없이 특정 학교 출신을 우대하거나 대졸자만 채용하겠다는 것에도 제동을 건다. 또한 교육기관에서의 차별도 금지해, 여러 학교에서 자주 벌어지는 성적에 따른 차별 대우를 막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만으로 학력·학벌 차별이나 불평등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차별금지법조차 없이는 차별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
2006년 차별금지법이 처음 추진됐을 당시 재계는 고용형태와 학력 등에 따른 차별 금지에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노동자 채용을 기업 마음대로 하고, 노동자들을 정규직/비정규직 따위로 갈라놓고, 저학력이라며 임금을 조금 주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고 싶다는 이유일 것이다. 기업들의 이런 주장에 휘둘리며 교육 정책도 왜곡되기 일쑤였고, 차별금지법도 여태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입시 경쟁과 학력·학벌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횡포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그럼으로써 불안과 불행에 내몰리지 않는 삶을 살려는 것이다. 교육혁명은 사람을 등급 매겨 몇 등급 이하는 사람답게 살지 못해도 된다는 사회를 바꾸자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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