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복원을 당당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민주화 이후 헌정사에서 박근혜·윤석열 두 대통령을 주권자의 '일반의지'와 헌법 절차에 따라 파면했다. 한국정치의 굴곡진 헌정사를 마감하고 민주화를 성취했으나 두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헌법 위반 등은 민주주의가 언제든지 벼랑 끝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복원시켰고 절차적 정의의 차원에서 새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과연 현 단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언제부터 정치가 이 상태로 내몰렸는지 시기를 특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현실에서 그리고 미래에서도 정치가 정상의 궤도로 들어설 희망과 전망은 전무하다시피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여야는 상호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대립과 대결은 그 자체로 정치문법이 되었고 상대의 존재를 부인하는 수준에 와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를 '위헌정당'이라고 비난한다.
여야 모두 상대를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는 오갈 수 없는 단어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비아냥은 기본이고 상대를 비판하는 언어들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러고도 'K 민주주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영 정치가 정치를 규정하고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지 않고 여야 정당이 각각 자신들의 지지층만을 대변한다.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당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설득과 인내의 부재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지고 정치는 보편과 이성을 잃었다. 국회 운영을 지탱했던 관행도 부정되기 일쑤다. 국회 선진화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합의의 정치는 다수결 정치에 의해 밀려났다.
내란 종식을 위한 정치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다. 이 두 영역이 무분별하게 혼용되어 정치는 갈 길을 잃었다. 선거가 다가와도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진영정치는 51대 49의 승부를 결과할 것이라는 편리한 도식에 취해있기 때문이다. 참패를 연거푸 당해도 정당은 바뀌지 않는다. 강성 지지층을 향한 정치의 안이함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갈등하는 사회의 지향을 찾아내고 합의를 모색하기는커녕 대결을 강화하는 숙주가 된 현실에 대한 정치인들의 문제인식조차 찾기 어려운 게 작금의 정치다. 상대에 대한 표독한 공격, 상대에 대한 적대와 악마화의 수위를 높일수록 진영 내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하는 모순적 정치가 사라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러한 패러다임은 화석처럼 굳어질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실질적인 다당제가 확립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거대 정당들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도입하여 제도를 형해화시켰고 나아가 선거제도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선거제도나 정치제도만을 가지고는 한계가 뚜렷하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었지만 이후 국회는 개혁되지 않았다. 사법개혁과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이 여야 쟁투의 장이 되었지만 국회개혁은 왜 의제로 들고 나오지 않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무한토론을 통해서라도 안건에 대한 위원들의 동의에 의한 합의가 상임위의 관례다. 그럼에도 상임위 의결에서 정당 간 합의가 점차 사라지면서 표결이 늘어난다. 여야의 어느 정당이 상임위원장을 맡느냐에 따라 안건의 향배가 결정되는 후진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각자가 헌법에 의한 헌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당론에 기속되는 기이한 문화도 지양되어야 한다. 편향성에 기초한 진영 논리 속에서 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고, 각 정당의 강성 지지층에 소구하는 전근대성과 퇴행에 편승하려 한다. 상업적 이익에 혈안이 되어있는 극단 유튜버들이 정치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은 현실 또한 개탄스럽다. 건강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극한의 대립을 심화시키는 악성 기제가 등장한 셈이다.
최소한 이러한 종합적 문제의식을 이슈화시키는 여야의 양식 있는 소장파들도 사라졌다. 소신있는 주장이나 반론이 강성 주장에 묻히면서 소수파로 전락하는 게 두려워서인가. 이 대통령이 세계에 알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복원'이 절차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화로 연결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복원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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