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지난 4일 치러진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을 제29대 총재로 선출했다. 이로써 자민당 사상 최초 여성 총재가 된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일본의 첫 여성 총리 탄생이 유력시된다.

극우 성향의 강경 보수파로 알려진 다카이치 신임 총재의 당선으로, 일각에서는 한일 관계가 과거 아베 시대처럼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롤모델로 언급하고,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 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어온 과거 이력 때문에 이웃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강창일 전 주일 대사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경제 따로, 과거사 따로"의 실용 외교 기조를 밝힌 바 있다'"며 "일본이 국익과 국제 관계를 고려할 때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강창일 전 주일대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프레시안 : 지난 4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가 제29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오는 10월 15일 임시국회에서 열리는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될 전망이다. 그의 정치 성향은 어떤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1990년대 초반 처음 중의원에 입성해 총 10회 당선됐고, 자민당 유력 인사 중 드문 '비세습 정치인'이다. 존경하는 인물은 대처 전 영국 총리와 파나소닉 창업자이자 마쓰시다 정경숙 설립자인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라고 전해진다.
1987년 전후해 미국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다. 1985년 미국 주도하에 유럽국들과 합작해 경제 대국 일본 때리기가 한창일 때인데, 미국의 행태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이 "나라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일본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얕은 미국 여론에 일본이 좌우되고 만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해 '강한 일본'을 주장하면서 강경 보수 혹은 극우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다카이치 총재는 그동안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또한 반한 정치가이자 우익의 아이콘인 아베 총리로부터 정치 교육을 받은 '여자 아베'라고도 불린다.
일본 우선주의와 흡사한 '강한 일본'을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운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경제안보상이던 그는 야스쿠니 신사에 2023년에 봄과 가을 예대제(例大祭·제사)와 패전일 무렵에 모두 참배했다. 또 지난해 9월 총재 선거 당시 "국책에 따라 숨진 이들에게 계속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각료와 총리의 참배는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참배할 경우 한국과 중국 등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자신을 '온건 보수'라고 주장하면서 강경 보수 색채를 희석하는 데 노력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서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며 다소 유보하는 태도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마네현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정부 대표에 관해선 차관급에서 장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우익 성향을 여전히 드러내기도 했다.
프레시안 :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백여 명의 의원을 거느린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 정책연구회) 소속이다. 그래서 구 아베파의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과 유럽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보수화의 물결이 일본에도 작동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 재건 회복과 강한 일본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주효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이시바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셔틀외교를 통해 만남을 갖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강 대사님 하고도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평가하나?
강창일 전 주일대사 : 대사 할 때에 관저로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로 얘기하는데, 역사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로 이웃을 화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는 모태신앙이고 리더십이 있고, 터프하다. 그가 총리가 되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는 와중에 그만두었다. 안타깝다.
프레시안 : 향후 한·일과 일·중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거라고 보시는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다카이치가 강경한 정책을 취하면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삐걱거릴 위험이 존재한다. 자중자애하면서 총리직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결코 일본에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과는 우호 증진,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었다. 옛날처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처지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관적 지표가 그렇다.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GDP)은 2022년부터 한국이 앞서서, 2024년에는 한국이 3만 6746달러, 일본은 3만 3600달러이다. 여기에는 한국이 꾸준히 경제성장하고, 특히 IT 문명 시대에 더욱 성장했는데, 일본은 장기 저성장, 엔화 하락, 고령화 등에 의한 노동시장의 경직화 문제 등에 의한 현상이라 할 수가 있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한국은 세계 GDP 순위 13위, 수출 5위 수준의 10대 경제 대국이자, 선진국이며 이 밖에도 국부 세계 10위, 외화 보유액 세계 9위, 무역 규모 6위, 군사력 5위 등 각종 지표에서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대국으로 성장했다. G20·OECD·IMF의 주요 회원국이었다. 즉 정치·경제·외교적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보유한 국가이면서, 세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기술력·문화력을 가진 국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국가적 위상이 높아져서 한·일 관계도 대등한 위치에서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종래 비대칭적 수직적 관계였으나 이제는 대등한 수평적 관계이다.
한국도 역지사지하면서 의연하게 대처하기를 바란다. 독도 문제는 일본이 연례행사처럼 늘 물고 늘어진다. 국제분쟁화하려는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교육시키는 심정으로 인내하면서 젊잖게 꾸짖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은 삼가야 한다. 이제 총리가 되면 일본 국익을 위해서도 조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향후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영토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 한·일관계에 대해 우려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일국을 이끌어나가는 총리이다. 이웃과의 외교관계를 보면서 자중자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때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이 손을 맞잡아서 북·중·러의 유대, 연대를 과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에 대응해 한·미·일도 안보와 경제 관계에서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다카이치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그는 과거 "한국에 잘해 주었더니 기어오른다"라는 발언을 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래서 극우라는 평가가 설득력이 있었다.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프레시안 : 향후 한·미·일 관계 전망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최근 다카이치 총재는 "5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가 일본 국익을 해치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맞섰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노선 계승과 방위비 증액을 외친 그는 아베 전 총리와 친교가 깊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재는 "관세 부분을 포함해 양국 간 약속은 지켜야 하지만, 대미 투자 운용 과정에서 일본 국익을 심대하게 해치는 불평등한 부분이 나오면 확실히 이야기해야 하며, 재협상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고 운을 띄운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각에서 관세와 투자 합의를 두고 미·일 갈등이 점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그는 자민당 총재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무역 협상에서) 일본 국익을 심대하게 해치는 부분이 생기면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선거 과정에서 동북아시아 안보 정세 등을 감안해 "한국과 협력하며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언행을 자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과거를 묻지 말자는 아베식의 언설은 안된다. 과거를 제대로 알고 현재를 정확히 보면서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주의 체제의 국가로서 사회주의 체제와는 다른 가치와 이념을 갖는 나라이다. 싫든 좋든 서로가 공생·공영을 위해 서로 손잡고 우호증진과 안보협력을 해야 할 운명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