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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심에 불타는 강자들, 누가 진짜 희생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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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심에 불타는 강자들, 누가 진짜 희생자인가?

[손호철의 벽화 기행] 10. IRA '대항 폭력'에 분노하는 극우 충성파의 모순

'우리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다'(동벨파스트 의용군 대대).

'샨킬(Shankill), 원조 벨파스트, AD 455'. '벽화의 벽'에서 북동쪽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샨킬이 455년부터 사람이 살았던 원조 벨파스트'라는 벽화가 나타났다. 샨킬로드는 영국을 지지하는 신교도 지역의 중심으로 전혀 다른 벽화들이 우리를 맞는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제1, 2차 세계대전 등 영국이 참가한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병사들에 대한 헌정 벽화들이다. 영국이 '조국'이 아니라고 생각해 참전을 거부했던 공화국파와 달리, 영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을 바친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조한 것이다.

▲ 신교도의 중심이 샨킬에는 '샨킬이 원조 벨파스트'라는 벽화와 영국이 개입된 전쟁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손호철

충성파, 특히 '극우충성파'의 본거지는 샨킬이 아니라 동벨파스트다. 벨파스트 중심가의 동쪽을 흐르는 라간강을 건너 동쪽으로 넘어가면 대형 조선소에서 볼 수 있는 대형크레인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전설적인 타이타닉을 건설했던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다. 이제는 그 자리에 타이타닉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타이타닉을 지은 벨파스트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동벨파스트가 나온다.

동네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타이타닉호 벽화다. 타이타닉호가 항해를 시작하는 풍경과 함께 '타이타닉은 벨파스트에서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지역노동자들이 타이타닉 건조 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타이타닉 야드맨'이란 조각도 있다. 자신들이 타이타닉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높은 실업률 등 현재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지나간 '황금시절'에 대한 향수다.

▲ 신교도 지역인 동벨파스트에 그려져 있는 타이타닉호 벽화. 자기들이 이를 건조했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손호철

'러스트 벨트'. 미시건, 오하이오 등 자동차, 철강 산업이 몰려 있던 미국 중북부가 경쟁력을 잃으면서 공장이 폐쇄되어 녹만 남은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이 지역은 민주당과 공화당 주류가 추진해온 세계화의 심각한 피해 지역으로, 트럼프가 '미국제일주의'를 들고 나오자 그를 지지하는 트럼프벨트가 됐다. 특히 대학을 나오지 않아 육체노동을 하는 '저학력 백인노동자'들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미국의 백인'같은 '지배세력'이 충성파 신교도이지만, 일자리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벨파스트의 '저학력 육체노동자'들은 극우 의용군(Volunteers)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울 것이다.

이 지역의 벽화는 공화국파의 벽화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우선 주제가 너무 좁고 편협하다. 공화주의자들 같은 국제연대, 기후위기 고발 같은 주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충성파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 충돌 중에 사망한 의용군에 대한 추모, 의용군 모집 광고, IRA에 대한 고발과 분노뿐이다.

색조도 대조적이다. 가톨릭 지역은 한과 슬픔이 맺힌, 일종의 '피억압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벽화들이 화려하고 밝은 색조가 대부분이다. 바비 샌즈의 초상화도 단식으로 죽은 열사의 초상화가 아니라 록스타의 초상화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벽화다. 하지만 충성파의 벽화는,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무채색이며 어둡고 침울하다. 하여 동네 전체가 침울해 보인다.

'쓰러진 의용군을 위하여'. 1972년 공화주의자들과의 전투 중 사망한 전사들을 위한 추모 벽화를 보니 희생자들이 15살, 18살, 19살이었다. 공화국파도, 충성파도 한참 뛰어놀아야 할 10대 청년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다가 꽃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연합 행위로 단결한다. 우리는 배신 행위로 분열되지 않는다'는 벽화도 눈에 띈다. 평화협정 후 두 진영 간 대립이 약화되면서 내적 단결이 약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젊은 신교도들에게 의용군에 들어오라고 선전하는 벽화(위)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벽화 ⓒ손호철

놀라운 것은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민병대인 의용군을 모집하는 벽화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민 의용대(Young Citizen Volunteers)'라는 벽화는 마스크를 쓰고 무장한 의용군을 그려놓았다. '동벨파스트대대' 벽화는 '우리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다'라는 문구와 함께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장총을 든 의용군들이 등장한다. 평화협정 후에도 일부 의용군들은 해체되지 않고 건재하며 지역을 통제하고 있고, 간헐적으로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고 한다.

'지미 멕커리와 바비 네일 -1970년 6월 27일과 28일 살해됨', '아직 진실도, 정의도 없다', '이날 밤, 아무런 도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IRA는 계획적인 공격을 통해 신성한 세인트메튜성당에서 동벨페스트 거리에 총격을 가했다. 그들은 제임스 지미 멕커리와 바비 네일을 살해했고 18명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커다란 한 묘지에 새겨진 글이다.

'희생자들은 과거를 결코 잊지 않는다, 평화의 대가는 영원한 각성이다', '충돌 시기에 그들이 희생자인 것처럼 세상에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순한 사실은 IRA가 살인자들이고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으로 남아있다. 북아일랜드의 민주적 희망은 평화다. 하지만 IRA에 의한 희생자들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Lest We Forget)'. 이어지는 희생자 추모 벽화다.

▲ IRA의 대항 폭력에 의해 희생된 신교도에 대한 기사들과 함께 '잊지 말자'고 촉구하는 벽화 ⓒ손호철
▲ 극우단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동벨파스트의 얼스터 의용군 50주년을 자축하는 벽화 ⓒ손호철

침울한 벽화들 사이에 청순한 한 소녀가 꽃밭에서 웃고 있는 화사한 벽화가 보였다. 반가워서 가까이 가봤다. 실망스럽게도, 문구는 사진 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죽은 자들은 정의를 요구할 수 없다. 그들을 위해 소리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의무다', '이것이 신페인(Sinn Fein)과 IRA가 요구하는 평등인가?', '피 묻은 신페인의 손에 의한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옆에는 주요한 IRA의 무장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던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시기 순으로 전시해 놓았다.

▲ IRA와 신페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벽화 ⓒ손호철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자료를 찾다가, 영국 정부와 극우 충성파의 폭력에 대항하는 IRA의 '대항 폭력'에 의해 신교도들이 무려 1300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100~200명도 아니고 1300명이라니! 이에 대해 피해자의 가족들이 정의를 외치고 IRA를 비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 충성파의 목숨도 공화국파의 목숨만큼 소중하다. 그러나 이는 반쪽 이야기일 따름이다.

문제는 가톨릭 커뮤니티는 그들보다 많은 1500명의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인구 비율이다. 충돌 기간 중 인구는 신교도가 60%, 가톨릭이 38%였다. 신교도가 20%정도 많았고 가톨릭계는 신교도의 3분의 2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다. 가톨릭계 인구가 신교도의 3분의 2미만이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신교도보다 200명 더 많았다.

신교도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분노하면서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가톨릭계의 이 같은 비극에 대해서 왜 침묵하는 것인가? 민간인 사망이 누구의 소행이었는가를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관련 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민간인 학살의 책임은 충성파 48%, 군·경찰 10% 등 친영국 세력이 60%로 가톨릭 세력(39%)의 1,5배다. 왜 이 같은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인가? 자신의 가족들의 죽음이 슬픈 것이라면, 가톨릭계의 죽음도 그 가족들에게 슬픈 것은 매한가지다.

중요한 것은 위의 숫자들이 단순히 가시적인 '직접적인 폭력'의 비율이라는 점이다. 갈등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요한 갈퉁은 직접적 폭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차별과 불평등 등 가톨릭계의 일상에 구조화되어 있는 '구조적 폭력'은 가시적 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충성파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답답하기만 하다.

▲ 동벨파스트에 예외적으로 평화와 상호 이해를 강조한 벽화 ⓒ손호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망감에 힘없이 동벨파스트를 빠져나오려는데, 한 낡은 건물 벽화에 '평화'라는 글씨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그동안 본 벽화와는 다른 벽화였다. 수많은 증오와 원망의 벽화 속에 한 줄기 빛 같은 벽화가 나타난 것이다. 벽화 아래쪽에 써놓은 낡은 글씨가 나의 가슴을 울렸다. '평화는 힘으로 지킬 수 없다. 그것은 이해(understanding)를 통해서만이 이룰 수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다.

총성은 멈췄지만, 벽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벽화 전쟁이 증오와 원망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확대해 평화에 이바지하기를 빌며, 나는 벨파스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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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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