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계기 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총재가 올해 가을 예대제에는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오는 21일로 예정된 신임 총리 선거에서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외교적 여파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17일 일본 <지지통신>은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17일부터 시작되는 야스쿠니 신사의 가을 예대제에 불참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1일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외교적 파장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 <교도통신> 역시 다카이치 총재가 "참배를 보류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아리무라 하루코(有村治子) 자민당 총무회장과 후루야 케이지(古屋圭司) 선거대책위원장은 17일 오전 각각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며 아리무라 총무위원이 기자들에게 "다카이치 총재의 마음을 담아 신사를 참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다카이치 총재는 경제안전보장상과 총무상 재임 중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최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어디서든 참배하고 싶다'라고만 밝혔을 뿐, 신사 참배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정치인이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했던 8월 15일 종전의 날에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신사에 참배한 다카이치 의원은 이같은 행위가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각각의 나라를 위해 순직하신 분의 영령은 그 나라 국민의 마음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외교관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지난 2022년 극우 단체 주관으로 열린 한 강연에서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간에 그만두는 등 어정쩡하게 하니까 상대가 기어오르는(つけ上がる)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등을 "일본에 기어오르는 국가"로 표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지난달 24일 일본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몰자를 어떻게 위령하고 평화를 기도할지 적절히 판단해야 한다"면서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총재로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극우적인 색채를 완화시켜야 했던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 직접 참배하지 않은 것 역시 총리 당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신임 총리는 이달 말 (26~28일)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정상회의) 정상회의를 포함한 여러 외교 일정을 앞두고 있다"며 "차기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총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경우 중국과 한국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 10일 26년 동안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했던 공명당이 결별을 선언하면서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당선이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총리는 중의원 의회에서 선출하는데 자민당이 19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24석으로 두 당을 합해도 과반인 233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공명당이 연립여당에서 탈퇴하면서, 자민당이 아닌 나머지 세력들 간 연합으로 새로운 총리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자민당이 보수 계열로 분류되는 일본유신회와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시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유신회의 경우 중의원에서 35석을 확보하고 있어 자민당이 이들과 연대해 총리 선거에 나선다고 해도 과반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231석 확보에 그친다. 다만 일본 총리 선거의 경우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2차 투표를 실시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총리가 되기 때문에 양당이 연대할 경우 다카이치 총재의 총리 당선이 상당히 유력해진다.
실제 양당은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정책 논의에 들어갔다. 16일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 총재와 일본유신회 후지타 후미타케(藤田文武) 공동대표 및 양당 간사장과 정책국장이 이날 국회에서 약 1시간 15분 동안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정책 논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유신회에 따르면 12개 정책 과제 중 두 가지 쟁점, 즉 식료품에 대한 2년간의 소비세 면제와 기업 및 단체 기부금 폐지에서 양당의 입장이 달랐다"며 유신회는 소비세 면제 및 기부금 폐지를 주장했으나 자민당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후지타 공동대표는 "(자민당이) 모든 것을 통째로 삼킨다면 처음부터 같은 당이 되는 것"이라며 연립정부 구성의 조건으로 모든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17일 후지TV 방송에 출연한 일본유신회 요시무라 히로후미(吉村洋文) 대표는 자민당과의 연립 정부 구성을 위한 정책 논의와 관련해 연말까지 의석수를 구체적으로 감축하는 데 합의하지 못할 경우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석 수 감축은 연립 정부의 절대적 조건"이라며, 비례대표 의석 수 감축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양당은 17일에도 정책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런데 양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소수당이라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자민당에 이어 가장 많은 의석인 148석을 보유하고 있는 입헌민주당과 27석을 보유한 국민민주당 등도 정부 구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여기에 일본유신회도 함께 논의를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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