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의 논란은 5년 전 불공정하고 불법적으로 맺어진 '실시협약서'에서 비롯됐다.
이 실시협약서는 공공기관의 '눈먼 돈'을 노리고 전문적인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업체(기획자)와 그들의 현란한 사업계획에 놀아난 공무원, 이 과정을 제대로 감시해야 할 시의회의 무능이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지금 전북 남원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개발사업 시행자와 대주단이 원고가 되어 남원시를 상대로 한 소송의 전말을 되짚어 본다.
민간개발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한 ㈜남원테마파크
2019년 5월9일 남원시청에는 민간사업 개발업자로부터 '남원광광지 민간개발 사업' 제안서가 접수된다.

시행자의 출자금 66억원에 264억원의 대출을 받아 총 330억원을 들여 남원관광단지에 관광편의시설을 구축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같은 해 6월5일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 투자협약'이 체결된다.
제안서가 접수된 지 꼭 1년만인 2020년 5월8일 남원시는 이 사업의 '실시협약서(안)'을 의회에 보고했고 이 안은 원안대로 가결된다.
이에 따라 2020년 6월4일 문제의 실시협약서가 체결된다. 실시협약서의 체결 당사자는 남원시와 남원테마파크㈜로 공식 문서명은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모노레일 및 어드벤처시설 설치사업)실시협약서'다.
남원시 산하기관 아닌 남원테마파크㈜
남원테마파크㈜는 이 사업의 시행을 위해 2020년 1월 9일에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이다.
남원관광단지인 '남원테마파크'는 남원테마파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회사의 이름이 똑같아 남원시 산하기관으로 오해를 사고 있다. 시민들이 '왜 남원시가 남원테마파크와 소송을 벌이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원테마파크㈜는 이 사업의 시행사가 되어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을 하다 적자가 발생하자 나중에는 남원시의 방해로 인해 영업상의 손해를 입었다며 남원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된다.
문제가 된 실시협약서에는 어떤 내용이?
2020년 6월4일 체결된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모노레일 및 어드벤처시설 설치사업)실시협약서'에는 남원시와 시행사인 남원테마파크㈜의 지위와 각자의 의무, 역할, 협약의 이행과 해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실시협약서는 이후에 벌어진 모든 소송에서 판단 근거가 됐다.
문제는 양측이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실시협약서의 내용이 남원시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성됐다는데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조항은 ‘협약의 해지’ 사유를 담은 제17조와 해지 후의 ‘대체시행자 선정과 잔존재산의 처리’를 담은 제19조 등이다.
특히 '협약 해지 후 1년 안에 대체 시행자를 선정해야 하고, 대체 시행자가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잔존 재산 처분 등을 통해 대출 원리금을 대주단에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19조가 일방적이고 남원시에 현저하게 불리한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목포시가 해상케이블카 사업을 시행하면서 위와 같은 내용의 실시협약을 맺었다가 준공을 앞두고 문제가 제기돼 시와 시행사가 다시 협의해 이 협약을 파기하고 운영협약을 다시 체결한 바 있다. 목포시는 이처럼 사전에 위협요소를 제거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남원시의 경우 여러 이유로 민간사업 시행자가 테마파크를 운영하지 못하면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모두 떠안아야 된다는 조항을 그대로 둔 채 협약을 맺었고 결국 이 조항에 근거해 대주단이 남원시를 상대로 제기한 408억원과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의 불씨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독소조항을 담은 실시협약서가 어떻게 2020년 당시 남원시의회를 통과했으며 담당 공무원들은 이에 대한 검토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일까.
실시협약서에 대한 남원시와 시의회의 엉터리 사전 검토
사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었다. 실시협약을 앞두고 협약안에 대해 남원시가 시의회에 보고했을 때 한 시의원은 콕 짚어 제19조의 불공정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지역의 관광자원을 유치하자는 다른 다수의 의원들의 의견에 묻히고 말았다. 결과는 '원안가결'이었다. 문제를 제기했던 시의원은 현직이 아니다.
시의회의 원안가결이 있은 뒤 같은 해 9월25일 자금조달계획에 대한 대출약정서가 남원시에 의해 승인이 됐다.
무려 405억원의 대출을 받는 자금조달계획에 승인을 내리는데 담당과장은 사무실에 부재한 상황에서 전화를 통해 담당 팀장으로 하여금 전결처리하도록 했다.
이는 남원시의 회계관리에 관한 규칙에 ‘4억원을 초과하는 공사 등에 대해서는 시장이 직접 예산집행을 품의해야 한다’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나중에 이 담당자는 '실시협약 과정과 대출약정서를 포함한 자금조달계획에 대하여 승낙하는 내용의 공문을 회신하는 과정에서 검토나 변경 요구를 하지 않고 협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다'는 감사결과의 지적과 함께 경징계 처분을 받고 유야무야 된다.
민선시장 교체기 인수위 과정에서 벌어진 일
2022년 6.3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최경식 시장은 선거운동과정에서 남원관광지에 설치되는 민간사업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시민들의 민원을 듣게 된다.
이어 인수위가 설치되자 당시 최경식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에서는 이 사업의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섣불리 준공 승인 후 기부채납을 받을 경우 시 재정상 상당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교롭게 남원시는 이환주 시장의 임기가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남원관광지 민간사업시설에 대한 준공승인을 내줬다.
협약서에 따르면 준공과 동시에 해당 시설은 남원시에 기부채납이 되어야 하는데 최경식 당선인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실시협약서에 따라 기부채납을 받을 경우 자칫 남원시가 거액의 빚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시행사는 준공 승인이 됐으므로 실시협약에 따라 기부채납을 받고 사용수익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최경식 시장 인수위측은 강경하게 맞서며 이 사업에 대한 특정감사를 지시했다. 기나긴 소송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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