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일 날씨입니다. 맑은 하늘을 본 게 언제였나 상막할 정도로 한동안 잠포록한 날씨가 이어졌는데요, 내일은 새맑은 가을 하늘을 볼 수 있겠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색바람이 불어 상크름하겠습니다.
#2. 국정감사 닷새째를 맞아 국회 상임위 곳곳에서 시설궂은 풍경이 빚어졌다. 감사위원석은 팻말과 감사 자료가 뒤엉켜 에넘느레해졌고, 의원들은 트레바리를 자처하며 반말로 너나들이까지 벌였다. 여당은 '내란 척결'이라는 단골말을 시종 내세웠고, 야당은 정부의 흠집을 초들며 뒤대기에 나섰다. 여당은 야당이 의혹을 침소봉대해 덧거리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야당은 정부가 잘못을 덮으려 떠대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오늘 저녁 TV 뉴스나 내일 아침 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온다면? 모든 부분을 막힘 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시청자는 드물 것이다.
가상의 날씨 뉴스는 이런 뜻이다. 최근 기상은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는(잠포록한) 상태였으나, 내일은 아주 맑은(새맑은) 날이 되리라는 것이다. '색바람'은 '이른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을, '상크름하다'는 '서늘한 바람기가 있어 좀 선선하다'는 뜻이다. '상막하다'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고 아리송하다'는 말이다.
국정감사 기사처럼 쓴 예문에서, '시설궂다'는 '성질이 차분하지 못해 말이나 행동이 매우 부산하다'는 뜻이다. '애넘느레하다'는 '종이나 헝겊 따위가 여기저기 함부로 늘어져 있어 어수선하다'는 뜻이다. '트레바리'는 마치 라틴어나 이탈리아어 낱말 같지만 이유 없이 남의 일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너나들이'란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서로 허물없이 말을 건넴'이란 뜻이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벌어졌던, '쟤가 나 욕했어', '쟤가 내 멱살 잡았어' 수준의, 초등학생이 낯을 붉힐 수준의 다툼은 결국 너나들이로 끝났다.
'단골말'이란 '늘 정해놓고 하는 말'을 뜻하고, '초들다'는 '어떤 사실을 입에 올려 말하다'라는 의미다. '뒤대다'는 '바로 말하지 않고 빈정거리는 태도로 비뚜로 말하다'라는 뜻이다. '덧거리하다'는 '없는 사실을 어떤 사실에 덧붙여서 말하다'는 뜻, '떠대다'는 '어떤 사실의 물음에 대해 거짓으로 꾸며서 대답하다'는 뜻이다.

국어학자로 국어·아동교육 관련 책을 펴낸 바 있는 전업 작가 신효원 씨가 지난 9일(한글날이다!) 낸 신간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은 이처럼 다소 낯설지만 '감치는' 맛 가득한 우리말 낱말을 소개한다.
'감친다'는 '어떤 사람이나 일, 느낌 따위가 눈앞이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돈다'는 뜻이다. 감치는 맛은 곧 '감칠맛'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지 '단어집'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가 직접 쓴, 일독의 가치가 있는 28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 적절한 용례까지 제시한다. 특히 한글날을 맞아 한 번쯤은 해봄직한 독서다.
예컨대 '도린곁'이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이라는 뜻의 낱말이라는 '지식'은, "도린곁에 외떨어진 깃털처럼 사소한 바람에도 온몸을 내어주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는 문장을 읽는 '경험'을 통해 보다 쉽게 체화된다.
다소 과장스러운 비유이겠지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는 일에도 감히 비길 수 있겠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흐드러지는 말맛을 정신없이 좇게 하는 그 역사소설에 비해, 에세이집 형식인 이 책은 더 간동하고(흐트러짐이 없이 잘 정돈돼 단출하고), 시인 백석의 눈물처럼 '정가롭다'(매우 정갈하다).
우리말 사용과 관련,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사실 고민이 있다. 우리말을 공부하고 의식적으로 적극 사용함으로써 용례를 확장하는 일은, 그리고 그 말을 한민족이 가졌던 가장 위대한 왕의 발명품으로 보기좋게 담아내는 일은 한국어 언중으로서의 기쁜 의무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매일 써야 하는 기사를 글머리의 예문들처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자에게 사전을 펴보게 만드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사실을 건조하게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 때로 지나치게 수사에 신경을 쓴 문장은 오히려 미쁘지(믿음성이 있지) 않은 인상을 줄 염려도 있다.
다만 산문성 칼럼이나, 방송 뉴스에서 종종 하는 봄·가을 나들이 풍경 등 스케치성 보도, 날씨·문화·인물 등 일부 보도 영역에서는 에멜무지로(결과를 바라지 않고 헛일하는 셈치고 시험삼아 하는 모양으로) 시도해봄직하다고 마음을 도슬러(무슨 일을 하려고 벌려서 마음을 다잡아 가져) 본다.
어떤 노력이든 그것이 지속되게 하는 내밀힘(밖이나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힘)은 눈길게(시선이 좌우로 꽉 차게) 보는 시선에 못지않게 작은 실천이라도 지며리(차분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성실함에서 나올 것이다. 꼭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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