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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산업문명의 원형을 보려거든, 강화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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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산업문명의 원형을 보려거든, 강화로 가라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학장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앞서갔는가를 묻는 이들에게 나는 한 문장으로 답하고 싶다.

“강화로 가라.”

강화는 몽골 침입기에 1232~1270년 고려의 수도를 옮겨 버텼던 곳이며, 국가 정체성과 산업기술의 응집력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그 역량을 품었던 도시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상처를 안고 있으나, 그 아픈 기억을 넘어 회복과 재창조의 무대로 새 서사를 써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강화는 말 그대로 숨어 있는 산업유산의 보고다.

고려, 한국 산업문명의 원형

고려가 남긴 산업문명의 정수는 금속활자·상감청자·고려인삼으로 요약된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IT·CT·BT다.

IT(Information Technology)는 지식을 빠르고 많이, 똑같이 퍼뜨리게 한 기술로서 금속활자가 상징한다. 표준 규격의 활자를 주조하고, 조판 규칙을 세우며, 종이·잉크·압력을 맞추던 공정은 지식의 대량복제 인프라였다. 강화는 이 혁신이 실제로 작동한 수도의 현장이었다.

CT(Culture Technology)는 아름다움을 공학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상감청자의 비색은 흙의 입도, 유약 조성, 가마의 온도·시간·불길을 정밀 제어해야만 얻어진다. 장인의 손끝 위에 재료공학과 열역학이 얹힐 때 예술은 취향을 넘어 지속 가능한 품질이 된다.

BT(Bio Technology)는 자연의 효능을 과학으로 표준화하는 기술로서 고려인삼, 특히 홍삼이 대표한다. 세계의 슈퍼푸드가 대개 원물·건조·분말 단계에 머무는 데 비해, 홍삼은 증숙→건조→추출→농축→제제의 고도 가공을 통해 유효성분을 안정화·표준화했고, 기능·용량·복용 주기가 명확한 표준 제품군을 구축했다.

‘고려’라는 국호가 품질·공정·효능의 신뢰 코드로 자리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화에서 '보고 만지고 체험하는' 고려 3T 산업기술

강화가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 산업문명의 운형인 바로 3T를 오늘의 기술과 감각으로 작동시키는 일이다.

설명보다 체험이 먼저여야 한다.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거나 특정공간을 지정하여 <고려산업유산 체험공간>을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금속활자는 터치 테이블과 3D 프린터, 증강현실을 통해 글자를 고르고 작은 활자를 뽑아 직접 조판·인쇄하는 절차를 체험하게 한다. 현장에서 찍어 낸 글자는 즉시 디지털 폰트로 변환되어 이름표·엽서·간판 시안으로 출력된다. 옛 기술과 오늘의 디자인이 연결되는 과정을 몸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청자는 투명 스크린으로 가마 내부의 온도와 불길을 시각화하고, 탁상형 전기가마로 작은 생활도자를 구운 뒤 레이저 각인으로 문양과 날짜를 새긴다. 아름다움이 감이 아니라 정밀한 조절의 결과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한다.

인삼은 소형 추출기로 달여 미니 샘플을 만들고, 시음·시식으로 원삼·백삼·홍삼의 차이를 비교한다. 효능·용량·복용 주기를 표기한 라벨을 스스로 만들어 붙여 보며 가공과 표준화의 의미를 체득하게 하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영상, AR/VR, 3D 프린팅, 센서, 미니 가공기 같은 익숙한 도구만 얹으면, 강화는 누구나 '보고·만지고·해보며' 현재의 한국을 만들어 낸 고려시대의 산업문명의 원형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가 되면 된다.

'공항경제권'이 제공하는 세계적 접근성

강화의 입지의 장점은 분명하다. 수도권 인접을 넘어 인천국제공항의 공항경제권 안에 있다.

국내 접근성은 물론 세계 접근성도 뛰어나다. 이는 강화의 3T 기반 체험과 교육이 국제 관광·유통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당일 혹은 1박2일 일정으로 국내외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현장에서 만든 활자 굿즈·생활도자·기능성 식품을 공항 연계 온라인·오프라인 채널로 즉시 검증·판매할 수 있다. 체험이 곧 시장과 맞닿는 구조를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고려산업유산 도시연합(Korea Industrial Heritage City Alliance)

도시 간 연합을 통해 스케일을 키우는 일도 필요하다.

청주는 직지로 대표되는 금속활자 아카이브와 학술 역량을, 부안과 강진은 청자 컬렉션·가마터 연구·레지던시를 맡고, 강화는 수도권 접근성은 물론 인천국제공항 인접으로 세계 접근성까지 갖춘 체험·유통 허브를 맡는 구도다.

이른바 ‘고려산업유산 도시연합(KIHCA)’ 공동 라벨로 활자 굿즈·생활도자·기능식품을 수도권 편집숍, 온라인, 면세 채널에 동시 출시하고, 분산 동시전과 순회 포럼의 피날레를 강화에서 열어 B2B 바이어 상담과 시민 체험 마켓을 결합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문화로 잇는 새로운 균형발전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

왜 ‘국립 고려산업문화유산원’인가

국가적 추진체의 필요성도 명확히 밝혀 둘 필요가 있다.

한국 산업화의 역사적 근원에 대해서 일부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핵심에는 바로 한국의 근대·산업 발전을 외부 이식의 결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생적 기술·제도·문화 축적이 이끌었다고 볼 것인가가 놓여 있다.

이 논쟁에 말로 대응하기보다, 우리만의 독자적 산업유산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명료하게 증명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크다.

한민족이 최고의 산업문명을 구가하던 고려시대의 유산을 가꾸고, 보호하고, 느끼고, 체험하게 만드는 역할을 전담할 국립 ‘고려산업문화유산원’이 필요한 이유다.

이 기관은 금속활자·청자·인삼 관련 원형 데이터를 수집·표준화하고, 이를 토대로 연구·교육·산업의 공통 기준을 만들고, 전시·교육·체험·시제품을 잇는 프로그램으로 시민과 기업을 연결하며, 청주·부안·강진과 상설 연합 운영을 통해 국내외 전시·유통·교육을 하나의 회로로 묶는 일을 맡으면 된다.

공간은 '강화'가 적합하다.

고려 수도로서의 역사성, 금속활자 혁신의 기록, 인삼과 도자 공방이 만들어 낸 현재의 산업 생태계, 공항경제권과 맞닿은 세계 접근성까지 상징성과 실행성을 동시에 충족하기 때문이다.

미래 문명이 궁금하면, 강화에서 영감을 얻어라

강화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국가 정체성과 산업기술의 응집력을 품었던 도시이자, 오늘 다시 열어볼 산업유산의 보고다.

금속활자(IT)·상감청자(CT)·홍삼(BT)을 보고·만지고·해보는 경험으로 엮는 순간, 강화는 옛 수도를 넘어 한국형 산업문화의 원형을 오늘에 재현하는 도시가 된다.

그래서다. 한국의 문화기술 원형을 제대로 보고, 산업·교육·관광을 하나로 묶는 내일의 해법에 영감을 얻고 싶으면, 강화로 가면 된다.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학장. ⓒ

◇ 황태규 학장은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참여해 혁신도시·신활력사업 등 균형발전정책의 원형 설계에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단장과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을 맡아 국가 균형발전정책을 총괄했으며, 현 정부에서도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문화관광 정책 개발에 힘을 보탰다. 현재는 고용노동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 등 다수 중앙부처의 지역 사업 자문·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최근 4년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으로서 국토연구원, 교통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해양수산개발원, 환경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건축공간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기획·평가를 맡았다. 저서로는 국내 최초의 지방정부 마케팅 전문서 『신사고로 펼치는 지방시대』, 전북지역학 교과서 『지역의 시간』 등 지역학·지역전략 관련 10권, 그리고 『브랜드 코리아』, 『포용한국으로 가는 길』 등 국가전략서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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