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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릉원 입구 '장군차' 언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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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릉원 입구 '장군차' 언제 왔을까?

"김해 원예시험장 이전하면서 그곳에 있던 장군차 2그루 중 한 그루다"

"김해 수릉원 입구 '장군차'는 김해 원예시험장이 이전하면서 그곳에 있던 장군차 3그루 중 한 그루(수령 200년 차나무)가 지금의 왕릉 옆 수릉원 입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정권 김해 전 국회의원은 6일 김해문화원 '김해학 문화 리더쉽 아카데미'에서 이같이 피력했다.

김 전 의원은 "장군차는 가락국의 ‘허왕후(허황옥)’가 가져온 차 씨앗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며 "장군차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이 마신 차의 향과 맛이 특별해 차 잎이 큰 차나무를 보고 차 중에 으뜸이라 ‘장군수’라고 하면서 붙어졌다"고 밝혔다.

▲김정권 김해 전 국회의원. ⓒ프레시안(조민규)

김 전 의원은 "장군차의 역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에도 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면서 "김해 장군차는 동상동과 대성동 일원의 분성산에 분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장군차는 카테킨·아미노산·비타민류·미네랄 등의 무기 성분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고 하는 김 전 의원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올해의 명차로 선정되어 전국의 다인들이 찾고 있는 명차 중 명차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우장춘 박사(씨없는 수박)도 김해 원예시험장(지금은 부산 강서구)에서 근무했을 때 장군차를 재배하며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숨은 대단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때 우리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시대에 맞게 기여(寄與)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김해 장군차의 잔잔한 이야기부터 스토리텔링이 가미 되면 김해지역도 통영의 동피랑이나,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경주의 황리단길 같은 그런 곳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정권 전 국회의원은 "김해는 2천년 전에 호주제를 폐지했다"고 하면서 "김해는 잘 알다시피 허왕후의 성을 받은 허씨가 있다. 즉 호주제가 폐지된 곳이 바로 김해다. 이른바 양성평등의 본고장이 바로 김해이다"고 강조했다.

김 전 국회의원은 우장춘 박사를 이렇게 스토리텔링 했다.

"1903년 11월 24일 히로시마현 5살의 우장춘은 어머니는 일본인 아버지는 한국인 이였다. 우장춘 아버지는 우범선이다. 그는 1895년 일본의 군인과 자격들이 궁으로 들어와 작전명 '여우사냥'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하는데 함께했던 사람이다. 영문도 모른체 아버지를 잃은 5세의 우장춘은 역적의 아들로 낙인찍혀 어려움을 겪다가 우여곡절을 겪고 성장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장학금으로 교툐대학에 진학 했다. 우장춘은 1949년 한국으로 들어올때 난민자격으로 들어왔다. 그후 우장춘은아버지 죗값을 갚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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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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