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COP30' 브라질에 쏠린 눈... 기후 디스토피아 막을 의지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COP30' 브라질에 쏠린 눈... 기후 디스토피아 막을 의지는?

[COP30, 아시아-남미 청년의 목소리] ① N도의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10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된다. <프레시안>은 이 기간 동안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하인리히 뵐재단 동아시아지부와의 공동기획으로, 기후위기에 맞선 아시아-남아메리카 청년기후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하루에 한 편씩 싣는다. 한국기후활동가 다섯 명의 글과 COP30 참가자 대학생의 취재기 다섯 편을 차례로 게재한다.

간절기 옷을 한 달도 채 입지 못하는 계절이다.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옷을 쇼핑목록에서 삭제했다. 창밖에 보이는 은행나무는 가을볕이 더 필요한지 아직 초록빛을 군데군데 띠고 있다. 11월로 달력은 한 장 넘어갔지만, 여전히 여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지 밑으로 일찍 떨어진 은행 열매를 줍고 있는 사람들만 가을을 지나고 있다. 노란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은행나무에 하얀색 눈이 내려앉은 풍경을 올해도 다시 보게 될까 무서웠다.

곱씹어 보면 지난 계절도 무서웠다. 한편에서는 눈으로만 즐기기 아쉬워 흐드러진 꽃을 스마트폰 앨범에 담았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헬기에서 찍은 화마가 지나간 능선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한편에서는 물이 넘쳐흘러 일상의 공간을 뒤덮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물이 없어 댐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떤 모습이 기후위기의 진짜 모습일까? 혼란과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시민으로서 느낀 기후위기는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지만, 한편으로 활동가로서 느낀 기후 대응의 속도는 역설적으로 매우 느리다. 2009년 처음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립했지만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2018년이 되어서야 배출 정점에 도달하고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화석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10%에 불과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아직도 많은 과제가 쌓여 있다.

2050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지면 경로는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장 최적의 경로를 찾은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퍼즐을 합쳤을 때 모습은 희망보다는 답답함이 크게 느껴진다.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역량의 원칙이 정말 큰 기여와 노력을 해야 하는 국가와 기업의 행동을 촉진하기보다 면죄부의 근거가 되고 있다. 모두가 무임승차를 원하며 그럴수록 나아가기보다 후퇴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정은 없다. 소위 누군가는 ‘빠’가 되고 누군가는 ‘까’가 된다. 빠와 까 사이의 적당한 합의점을 맞추는 방식이 인간 세상에서는 유효하지만, 불행히도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를 초과하면 임계점을 넘어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시스템 측면에서 애초에 타협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그 선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힘든 상황에서도 많이 양보한 거라고, 심지어 자식세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변명한다.

1.5도 마지노선에 도달하기까지 3년 8개월 정도 남았다. 우리는 여전히 기후 불평등, 탄소 불평등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도에 가깝게 살아갈지, 2도에서 살아갈지, 4도에서 살아갈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다. 목표가 높을수록 당장 힘들 것이고, 변화를 확인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디스토피아는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3 수험생 시절 우리는 대학교에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을 믿었다. 고진감래에 속아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지만,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그 말을 믿어보려 한다. 기후위기를 말하는 청년들이 만들어낸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청년들은 2050 탄소중립을 요구했고, 결국 국가 목표가 되었다. 4년 전 대선 후보의 기후위기 TV토론회를 요구했던 것은 실패로 끝났지만, 올해는 다른 단체에서 더 발전된 캠페인으로 기획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뛰어난 말솜씨도, 전문적인 연구도, 가진 자원도 없었지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도 하는데 당신들도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N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그 세계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어떤 답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미래세대에 과연 그 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가. 부디 올해의 겨울은 겨울 답길 바란다.

▲그린피스가 본 기후 회의(Bonn Climate Conference)의 유엔 회의장에서 1.5도 제한 목표를 위한 더 강력한 행동을 촉구하는 배너를 펼치고 있다. ©Marie Jacquemin (그린피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