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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 움직이면 돈 번다? 하루 60건 배달하다 '쾅', 누가 등 떠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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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만 움직이면 돈 번다? 하루 60건 배달하다 '쾅', 누가 등 떠밀었나

[기자의 눈] 신기루 같으면서 벼랑 끝처럼 보이는 배달 플랫폼의 현실

우연히 2020년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시리즈를 만든 조은 사회학자 겸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조은 감독은 1980년대, 연구자로서 철거를 앞둔 서울 상도동에 들어간 이래 3대에 걸친 빈곤의 재생산을 연구했다. 그런 그가 당시 월세방 한 칸에 살던 금선이 할머니네의 33년 이후를 다룬 <사당동 더하기 33>을 만들었다.

영화 내용은 군고구마를 먹은 듯한 느낌을 준다. 쉽사리 가난에서 탈출하기 어려웠던 할머니네 집안의 3대손 중 한 명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최근 배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며 생애 최초로 적금을 들었다고 했다. 하는 일마다 꼬이거나 좌절을 맛봤던 영화 속 그를 생각하면 배달은 절로 설레는 일이었다.

쿠팡, 배달의민족 등 배달 플랫폼은 일터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금선이 할머니 손주를 비롯한 일부에게 플랫폼은 돈벌이의 혁신이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한다면 고정적인 수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같은 인터뷰에서 조은 사회학자는 "가난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배달 플랫폼을 비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루하루가 버거운 이들에게 이것은 달콤한 안식을 주는 혁신이었다.

▲ 야간 배달을 하고 있는 라이더. ⓒ프레시안

지금 시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더는 '상상'의 영역이 아니다. 단순히 편리하고 빠르게 집까지 물건을 배달해 주는 존재로만 플랫폼 노동자를 '상상'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전에 성남에서 배달앱 노동을 하다 사망한 고인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하루 50~60건 정도의 배달일을 소화했던 그는 오전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해야만 했다. 주말은 물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이를 반복했다.

심지어 고인은 콜(call)이 잘 잡히는 곳이 집과 멀다며 음식점이 몰려있는 곳에 숙소를 잡기까지 했다. 숙소로 지내던 지하 월세 방은 패널로 세워진 가건물이었다. 곰팡이가 퍼진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다. 한겨울에는 전기난로 하나로 버텼다. 한 달 월세가 15만 원이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한 달에 400~500만 원을 벌었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 1억의 빚을 진 고인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길이었다. 고1과 고3인 두 딸 학원비, 그리고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 내야 하는 등록금도 생각해야 했다. 고인이 몸이 부서져라 오토바이로 성남 일대를 돌아다닌 이유다. 그러다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고인의 등을 떠밀지는 않았다. 자기 스스로 배달 일을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 고인의 몸이 되었다. 가난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지만, 배달 노동도 상상의 영역은 아닌 이유다.

남은 고인의 가족 삶도 변했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고인의 아내는 식당이라는 생활전선에 나가야 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하루 12시간 일해서 한 달 230만 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삶은, 남편과 아빠가 없는 삶은 아마 그들도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는 '상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이들 가족을 이렇게 내몰았을까.

최근 쿠팡의 새벽 배송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배달 노동자들도 이를 원한다며 새벽 배송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나온다.

그 주장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난은 상상의 영역이 아니기에. 아마도 상당수 배달 노동자는 단가 높은 새벽 배송을 원할 것이다. 저마다의 이유와 상황으로 새벽 배송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다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다. 배달 플랫폼의 현실은 신기루 같으면서 동시에 벼랑 끝처럼 보인다. 운이 좋으면 죽도록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고, 나쁘면 죽음에 이르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새벽 배달의 위험도가 주간보다 크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새벽 배달 논쟁은 이미 '상상'의 영역이 아닐듯 하다.

지난 10일 새벽 배송 중 사고로 숨진 쿠팡 택배노동자 오승용 씨 친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19일 국회에서 호소한 내용은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부디 새벽 배송이라는 '현실'이 '상상'에 가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제 동생은 살기 위해 일했습니다. 아빠 장례 뒤에도 하루 밖에 못 쉬고 새벽 어둠 속으로 나갔다가 죽었습니다. 쿠팡에 묻습니다. 새벽 배송 기사들이 몇 시간 잠을 자는지 알고 있습니까. 시간에 쫓기며 목숨 걸고 운전하는 현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면서도 방치한 거 아닙니까. 죽어도 또 뽑으면 된다고 생각한 거 아닙니까."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기사 사망 사고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하며 쿠팡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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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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