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재용, 정의선, 젠슨황 회장의 치맥 회동을 보는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특히 삼성과 현대·기아차 그룹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서민적 풍모와 선명히 대비되는 그들의 착취와 탄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이 제정되자, 경영자단체와 재벌은 회사가 망할 것처럼 엄살을 떨었다. 그러나 재벌은 노란봉투법은 고사하고 지금 있는 법도 지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 그룹의 불법파견 범죄행위는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이런 재벌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제대로 교섭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이 재벌의 엄살을 받아 적었다.
법원 판단조차 거부하는 재벌
2021년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불법파견 범죄행위가 드러나자 '자회사 전환 방침'을 일방적으로 밝히고 사내하청사 15개를 폐업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자회사에 노동자를 몰아넣는 것이었다.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자회사를 거부한 노동자들이 53일 동안 총파업으로 맞서자, 현대제철은 총 246억 1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검찰은 현대제철의 편을 들면서 최근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노동자 12명에게 총 18년 8월의 징역형과 벌금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2013년 아르곤 가스 질식으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등 매년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은 '죽음의 공장'로 알려져 있다. 법원조차 현대제철이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지위에 있으므로 비정규직지회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현대제철은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1차 사내하청업체 이수기업 노동자들은 2019년 8월 22일과 2020년 2월 6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대제철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소송전을 진행했다. 2024년 10월 현대차는 이수기업을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없이 폐업시켰다.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쫓겨났고, 1년 넘게 투쟁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 3월과 4월 경비대를 앞세워 공장 앞에 천막을 설치하려는 노동자 시민을 무자비하게 폭행해 사회적 지탄을 받자, 대표가 사과했고 이수기업 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협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차 업체 복직은 안 된다며 여전히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10년 넘게 요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대차
현대차는 1998년 IMF 외환위기를 핑계로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직 판매 노동자를 위로금 몇 푼 쥐여주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었다. 판매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반반씩 이원화됐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판매 노동자는 정규직 판매 노동자와 똑같은 일을 한다. 현대·기아차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판매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켰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4대 보험은 물론 근로기준법상 모든 권리를 누리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2015년 8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현대·기아차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기아차는 거부했다. 대리점 대표들과 교섭하며 근로계약서 작성과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했으나, 대리점 대표들은 원청이 결정할 문제라며 거부했다.
대리점 대표들은 원청인 현대·기아차의 지시와 묵인 아래 수많은 조합원을 해고했다. 노조 탄압은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대리점 대표(점주)의 운영 연령 기한이 65세까지라는 이유로 대리점 대표가 65세가 되면 대리점을 폐업시키는데, 새로 계약한 대리점들은 조합원들의 고용승계를 배제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는 이처럼 어렵다.
비정규직 현실은 그대로
지난 10월 1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청소업체 보광 소속 노동자이자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인 김경숙 씨가 해고됐다. 다른 네 명의 조합원도 출근정지 2개월, 1개월 등 탄압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기존에 하지 않았던 산업폐기물 청소 지시를 거부했다. 친환경 공장을 신설하면서도 인력은 늘리지 않고 청소 구역만 늘리는 원청 기아차와 청소업체에 저항했다. 현장 안에 널리 퍼져 있는 원하청 관리자들의 성적 괴롭힘도 폭로했다. 10년 넘게 일해도 각종 수당을 합해야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무권리 상태에 신음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항하자, 기아차와 청소업체는 해고와 출근정지로 대답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아차는 법에도 보장된 해고 및 징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과 현장 출입을 막기도 했으며, 지난 11월 14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화성공장을 방문하자, 도로까지 막으면서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삼성전자의 화성·기흥·온양 사업장의 하청 기업인 명일은 작년 연말 무려 126명을 해고했다. 명일은 33년 동안 사업을 이어가며 주주배당금 320억 원, 사내유보금 538억 원을 보유하고, 85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경영 위기가 조금도 없다. 명일의 해고는 그동안 하청 노동자의 권리를 줄기차게 주장한 명일지회에 대한 삼성의 보복이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삼성은 올해도 도급업체 변경 방식으로 명일 소속 141명의 일자리를 잘랐다.
지난 11월 6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직원 수천 명의 개인정보가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내부 공용 폴더에 노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사내 심리상담센터(바이오마음챙김상담소)를 다녀온 노동자와 관련한 '상담소장님 소견' 등 기록이 '징계 폴더' 안에 정리돼 있었다. 회사가 상담센터를 이용한 직원을 징계 대상자로 관리하며 인사상 불이익을 줬던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더 세련되고 교묘한 형태로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11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차 본사에 모인다
노동부는 24일에 발표할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현행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의 틀 내에서"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업무의 성질·내용, 작업방식, 작업환경, 노동강도, 책임비중, 임금체계・구성항목・지급방법 등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하거나 분리된 교섭단위를 통합할 필요를 판단하겠다는 것인데, 있는 법도 안 지키며 수십 가지 방법으로 원청 사용자성을 지우고 있는 재벌들에게 피해갈 길 만을 열어주고 있다. 사실상 '강제적 단일화'를 기본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하청노조의 실질적 단체교섭 보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멀다. 비정규직에 대한 초과 착취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 현대, SK, LG 등 대재벌이 그 착취를 유지하고 싶어 정부를 압박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작년 12월 3일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쓰이던 자동차판매연대지회의 국회 농성천막과 스피커는 내란을 막기 위해 모인 노동자, 시민들의 무기로 쓰였다. 자동차판매연대 조합원들은 자신의 농성장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빌려줬다.
이렇게 내란 진압을 위해 앞장섰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재벌의 착취와 탄압도 달라지지 않았다. 11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 보여 집회를 연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힘든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디뎠던 노동자들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