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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더 많이… 한국식 '밤샘' 물류 시스템은 기후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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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더 많이… 한국식 '밤샘' 물류 시스템은 기후 악당

[초록發光] 쿠팡의 속도는 무엇을 감당하게 하는가 : 노동·기후의 이중 청구서

그렇게 나는 쿠팡 앱을 깔았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먹을 달걀이 떨어졌다는 사실, 내일 어린이집에 들러 보내야 할 준비물이 있다는 사실은 왜 늘 아이를 재우고 난 늦은 저녁에야 떠오를까. 밤 11시 50분, 하루를 넘기기 전 10분 안에 주문하면 새벽에 택배를 받아 볼 수가 있다.

결국 지웠던 쿠팡 앱을 다시 깔았다. 안도감과 불편한 감정이 동시에 올라온다. 아침의 혼란을 피할 수 있겠다는 해방감, 그리고 누군가의 밤을 더 짧게 만드는 일이 될지 모른다는 찜찜함.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편에 남는 이 감정은 아마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많은 소비자가 공통으로 느끼는 정서일 것이다.

노동의 문제에서 기후의 문제로 이어지는 새벽 배송

쿠팡 새벽 배송이 최근 논란이다. 과로와 사고 위험, 야간·심야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새벽 배송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배송노동자들의 선택과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노동자와 소비자, 또는 쿠팡의 물류시스템을 이용하는 소상공인만의 문제로 놓고 편의와 노동권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쿠팡의 새벽 배송, 로켓배송의 시스템은 노동권의 문제이자 바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소비, 그리고 먹거리 유통산업의 탄소 배출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말할 때 농업·먹거리 영역에서는 항상 생산자(주로 농민)가 먼저 불려 나온다. 저탄소 농법, 스마트 농업, 농축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 물론 중요한 논의지만, 정작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먹거리 유통·물류 시스템(대형 할인점, 온라인 플랫폼, 물류센터, 배송)이 배출하는 탄소는 제대로 이야기된 적이 거의 없다. 농민에게는 "탄소를 줄이라"고 말하면서, 유통·물류에는 "더 빨리, 더 싸게, 더 편리하게"만 요구해 온 셈이다.

최근 농업·먹거리 연구자들과 시민사회가 국내 주요 유통기업들의 탄소 배출을 직접 조사한 결과 대형 할인점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17만 7000톤(tCO₂eq)으로, 같은 해 발전산업 전체 배출량보다도 많았다. 냉난방과 조명, 냉장쇼케이스, 거대한 물류센터를 돌리면서 만들어 낸 숫자다. 그런데 이들 대형 할인점보다 탄소 배출량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한 곳은 쿠팡이었다. 쿠팡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 12만 3150톤에서 2023년 26만 6681톤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물류를 전담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같은 기간 세 배 가까이 늘었다. 2020년 5만 9531톤에서 2023년 17만 1873톤이다. 새벽 배송을 포함한 온라인 물류 시스템이 얼마나 에너지 집약적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쿠팡은 유통단계 감축을 통해 친환경 물류체계 구축하고 전기차 통합 배송센터 확대나 재사용 포장재 등을 사용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고 배송하는 시스템이 정말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것일까.

▲국회 '먹거리 유통산업 탄소감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 중 2020~2023년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량 현황. ⓒ국회의원정책자료

'쿠팡 속도' 이면 : 보이지 않는 탄소와 불투명한 책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분석 플랫폼 Ditch Carbon(영국 기반 기업 온실가스 배출 분석 플랫폼)에 따르면, 쿠팡의 2022년 배출량은 약 330만 톤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숫자는 쿠팡이 명확하게 공개한 데이터가 아니라, 불완전한 공시를 바탕으로 한 외부 추정치다.

쿠팡은 Scope 1(직접 배출), Scope 2(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 Scope 3(물류·포장·협력업체 등 공급망 전반의 배출)을 구분해 공시하지 않았고, 2030·2050 감축 목표나 SBTi(Science-Based Target initiative, 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 참여 기록도 없다.

Ditch Carbon은 쿠팡의 업종(소매유통업)이 산업 평균 기준으로는 탄소집약도가 낮은 편이라고 평가하지만, 이것이 쿠팡의 실제 배출 규모나 증가 추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배출은 급증하는데, 배출이 어디서 얼마나 발생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친환경 포장'과 '전기차 배송센터 확대'라는 홍보 문구와 달리 기후 책임의 기반인 데이터 공개와 검증 가능성이 부재한 것이다.

▲Ditch Carbon이 분석한 쿠팡 온실가스 배출량. ⓒDitch Carbon

이 지점을 보면 새벽 배송이 왜 노동 문제와 기후 문제를 동시에 품고 있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새벽 배송이 이루어지려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물류센터, 24시간 가동되는 냉장·냉동창고, 새벽마다 몰려 있는 분류·상하차 노동, 수천 대의 배송 차량이 반복적으로 도로 위를 달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새벽 배송의 편리함은 노동자의 몸뿐 아니라 막대한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에 의해 유지된다.

노동과 기후를 함께 지키는 길

여기에 기후위기의 극단적 날씨가 겹치면 위험은 배가 된다. 여름에는 폭염과 폭우로, 겨울에는 폭설과 결빙으로 노동자들이 아프고 다친다. 기후위기가 만들어 내는 극단적 환경은 속도 경쟁으로 이미 위험해진 노동환경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쿠팡식 속도경쟁 물류 시스템은 더 많은 에너지와 탄소를 배출하며 기후위기를 가속하고, 이상기후는 다시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의 과로와 사고는 단순한 '업무 강도' 문제가 아니라, 속도를 경쟁력으로 삼는 유통 구조가 사람과 기후를 동시에 소모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의 삶도, 에너지 사용도, 기후 부담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류는 속도가 아니라 '적정함'을 기준으로 다시 설계돼야 한다. 속도 경쟁의 제한, 재생에너지 전환, 냉난방 효율화, 과포장과 일회용 사용의 문제, 탄소·노동권 기준,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유통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 우리는 기업과 정부에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유통 규칙을 만들자고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과 기후를 동시에 지키는 길이다.

▲자사의 로켓배송이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한 쿠팡 홈페이지의 글 중 일부 갈무리.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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