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의 철학적 사유와 통찰로 그려낸 ‘밥그릇’ ...“그릇은 마음의 형상이고, 밥은 그 마음을 채우는 시간”
조미진 자수회화전 ‘비워진 시간’ 11월 27일 부터 전주한옥마을향교길68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미진 작가가 전통의 틀을 벗고 ‘자수회화가’로서 새로운 길을 선언한 뒤 두 번째 자수회화전이자 개인적으로는 통틀어 9번째 개인전이다.
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밥그릇이 주요 소재다. 달항아리 작품들도 함께 선보인다. 표현은 간결해졌지만 의식은 충만하다. 자수 ‘명장’으로서의 철학적 사유와 통찰이 깊게 반영됐다.
밥그릇은 ‘채움과 비움’의 ‘아이콘’이다. 비워야 채워지고, 채워야 다시 비워지는 순환. ‘공(空)과 색(色)’과도 통한다. 작가는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도 이끌어 낸다. ‘쓸모없음의 쓸모’.
조미진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비워진 그릇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품은 자리다. 그 안에는 한 끼의 숨결, 누군가의 손끝, 잠시 머물다 간 온기가 남아 있다. 나는 그 비워진 자리를 실로 짜며, 사라진 것들의 온도를 더듬는다.”며 “채움과 비움의 반복 속에서 삶은 조용히 이어진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바늘 작업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비우고 채우는 과정”
이어 “바느질로 옛 그릇을 짜며, 지나간 끼니의 시간을 더듬는다. 비워내야 담을 수 있고, 채워야 다시 비워진다. 밥과 그릇 사이를 잇는 실 한 올에, 살아 있는 시간의 온도를 꿰매고 있다.”며 “그릇은 마음의 형상이고, 밥은 그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다. 비어 있는 자리는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나는 실로 과거의 시간을 꿰매며, ‘비움과 채움’ 사이의 생을 조용히 기록한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밥그릇’ 작업은 그날 밤 ‘계엄’에서 비롯됐다고 고백했다.
“자수회화가로서 첫 전시를 마치고 몇몇 분들과 식사를 한 그날 밤, 다음 작업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계엄’이라는 믿기 힘든 일이 터졌다. 모든 것이 멈췄다. 바늘 끝의 한 땀도 그날 멈춰 버렸다.”며 “작업실 안 베갯잇의 문양과 오래된 밥그릇의 무늬를 바라보며, 긴 시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배운 건, 결국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내 ‘그릇’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는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끌어 내 “겉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존재의 중심을 지탱한다.”고 해석했다.
“바늘 작업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자연이 흘러가는 리듬에 스스로를 얹는 일. 공(空)이 색(色)이 되고,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호흡.”이라며 “쓸모없어 보이는 한 땀이 세상을 지탱한다. 무위와 행위의 호흡이 천 위에 놓이는 흔적들”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정의했다.
조 작가는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마음은 바람 한 점 없는 물 위에 떠 있는 듯 고요하다. 작은 숨결마저도 명확히 들리는 이 순간, 나는 세상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으로 깊이 잠겨 든다.“며 ”복잡함은 사라지고, 단순한 것들이 빛을 낸다. 손끝에 닿는 온기, 조용한 움직임, 흐르듯 이어지는 몰입 속에서 평온은 조용히 피어난다. 이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흐름이다."고 마무리했다.
조미진 자수회화가의 ‘비워진 시간’展은 전주한옥마을 향교길68미술관에서 2025년 11월 27일에 시작해 겨울을 넘길 예정이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비우고 채우는 과정’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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