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를 잇는 국제 문화 연대 기구가 공식 출범했다. 식민과 분단, 개발과 주변화의 경험을 공유해온 지역들을 문화의 언어로 다시 연결하겠다는 시도다. 이 실험의 출발지는 전북 군산이다.
국제 문화협력 기구 재단법인 칼라(KAALA·Korea with Asia, Africa and Latin America) 문화재단은 17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설립 취지와 향후 활동 방향을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와 황석영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칼라는 군산에 본부를 두고 문학·미술·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 간 문화 교류와 공동 창작을 추진하는 국제 협력 플랫폼을 표방한다. 재단은 제국주의 이후 세계가 겪어온 불균형과 단절의 경험을 문화적으로 성찰하고, 동시대의 문제를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이날 “칼라 문화재단은 전북을 기반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의미 있는 문화 협력 시도”라며 “전북특별자치도는 칼라가 군산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글로벌 사우스 문화 교류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행정적·정책적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칼라가 군산을 거점으로 삼은 배경에는 이 도시가 지닌 역사적 맥락이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호남평야 수탈을 위해 조성된 항구 도시로, 근대 항만과 금융·주거 공간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재단은 이러한 공간적 기억을 바탕으로 탈식민 이후의 문화 연대를 실험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초대 이사장을 맡은 소설가 황석영 작가는 “군산은 제국이 남긴 흔적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도시 중 하나”라며 “칼라는 이 기억을 보존하거나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상상력의 출발점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향후 글로벌 사우스 작가 포럼, 탈식민 미학을 주제로 한 국제 전시, 제3세계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과 비평 프로그램, 청년·이주민과의 공동 창작 프로젝트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문학 분야에서는 제3세계 문학을 조명하는 독자적 문학상과 번역·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황 이사장은 “과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공유했던 연대의 언어는 오랫동안 사라져 있었다”며 “칼라는 과거를 반복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 속에서 다시 연대를 실천하려는 문화적 장치”라고 말했다.
칼라 문화재단은 17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받으며 공식적인 법적 지위를 갖추게 됐다. 재단은 이를 바탕으로 군산을 거점으로 한 국제 문화 교류 사업과 정례 문화 행사를 단계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식민의 기억이 켜켜이 남은 도시에서 출발한 이 문화 실험이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역과 세계를 잇는 지속 가능한 연대의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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