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연초 신년하례식 신년사를 통해 '성장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선포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년사에서 내세운 성장전략의 대전환은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주도 성장 △대기업 중심에서 모두의 성장 △생명 경시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성장 △상품 우선 성장에서 문화 주도의 성장 △전쟁 위협의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에 기반한 안정적 성장이라고 정리된다.
분배보다 성장에 방점이 찍힌 것은 경제살리기를 성장동력의 회복으로 파악하는 이재명 실용주의의 반영이지만, ‘불평등과 격차’를 극복의 대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배와 성장의 동시적 지향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그러나 이 대전환 항목 가운데 '불평등과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포함돼야 할 항목이 빠져 있다. 바로 교육 문제다. 국가 정책의 방향 전환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교육이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국 교육의 고질적이고 핵심적인 문제가 서울 소재 일류대 중심의 대학서열체제와 그에 기반한 과도한 입시경쟁 및 사교육의 팽배, 그리고 사회 전반에 퍼진 학벌주의 풍토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신년사에서 말하는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악순환'의 주된 고리다. 또 이 서열체제를 뒷받침하는 ‘선택과 집중’의 대학정책 기조야말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의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12월 교육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교육의 이 같은 핵심사안은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누락이라기보다 이재명 정부가 교육 문제에 관한 한 '대전환' 혹은 전면적 개혁을 유보하거나 주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 교육, 특히 고등교육이 직면한 위기는 교육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저출산율과 인구감소,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대학입시 과열 경쟁과 교육 불평등의 구조화, 그리고 공정성의 위기와 결합해 있는 것이 대학문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초저출산율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풍토에 그 근원이 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다.
신년사의 표현대로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교육의 핵심문제들과 대면하고 그것을 개혁하는 교육정책의 청사진이 있어야 마땅하다. 왜 이 고질적이고 해묵은 문제가 수십년 간 해결은커녕 악화일로를 걸어왔는가? 많은 원인들이 중첩되어 있지만, 지금까지의 교육정책 기조가 그같은 진행을 부추겨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장주의적 대학정책의 지속이다.
대학 위기의 진정한 성격과 극복전략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대학을 사회의 공공 기반으로 보기보다 산업과 노동시장을 위한 인력 공급 체계로 간주해 왔다. 대학은 '혁신의 거점'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에 내몰렸고 '성과 관리'의 대상으로 재편됐다.
정책 언어는 점점 교육의 언어를 잃고, 효율, 성과, 경쟁, 랭킹이라는 경영의 언어로 대체됐다. 그 결과 대학은 공적 기관이 아니라 시장 조직처럼 인식되었고, 교육은 사회 통합 장치가 아니라 개인 경쟁과 부의 대물림 기제로 변질했다. 대학 위기의 본질은 학생 감소 그 자체라기보다 국가가 대학을 공공인프라가 아닌 시장 논리에 따라 다뤄 온 방식에 있다.
대학들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평가에 목을 매고 상호 생존경쟁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메커니즘은 필연적으로 수도권과 일부 상위 대학으로 자원을 집중시키고 지역 대학을 고사시킨다. 그러나 지역 대학의 붕괴는 단지 교육기관 하나의 소멸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청년 인구, 의료 인력, 문화 기반, 시민사회 역량이 함께 사라지는 과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성장전략 패러다임 대전환의 첫 번째로 꼽은 "수도권 중심에서 지방주도 성장"은 지방대학의 궤멸 추세를 방치하고서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그럼에도 정부가 교육 문제의 전면화를 유보 내지 기피하는 정치적 의미는 분명하다. 대학입시를 포함한 교육 문제는 국민적 논란을 감수해야 하는 정치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내란극복과 권력구조의 재편을 통한 정치개혁 그리고 '먹고사니즘'에 입각한 국민경제의 회복이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어젠다인 정권 초기가 아닌가. 교육 문제 전면화는 큰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 좋은 의미로 보자면, 이재명 정부의 교육개혁에 대한 일정한 유보는 정권의 권력 유지 플랜과 개혁 일정상의 전략인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권 차원에서 교육문제 핵심에 대한 정치적 유보와 관리전략이 어디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만약 이같은 전략을 정권 말기까지 가져간다면, 그것은 전략으로서의 입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택은 곧 지금까지 구사해온 시장 논리에 모든 조정을 위임한다는 것을 뜻하며 가장 취약한 영역부터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조국 사태'라는 이름의, 대학입시에 투영된 교육 불평등과 공정성 문제로 촉발된 역사를 돌이켜보라! 정권 안정을 위한 정치적 우려로 교육 불평등 문제를 도외시하는 순간 사회 대전환을 위한 정치개혁 또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이 거기에 있다.
대학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권 초기의 더 긴급한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유보를 인정하더라도 정권 후반기 교육대개혁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필수적인 또 다른 이유는 학령인구의 격감이 목전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의 무더기 폐교와 지역 소멸의 위기 심화는 앞으로 5년 이내에 닥치게 될 예정된 재앙이다. 이에 대한 대비가 없이 학령인구 격감의 직격탄을 맞아 지방대의 대거 폐교가 현실화하면 그 정치적 사회적 여파는 심대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다른 치적들을 쌓더라도 이 사태는 정권재창출을 위협할 정도의 중대사안이 될 가능성조차 있다. 향후 4년이 대학체제를 개편하고 지방대 몰락을 막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이제 내란 극복은 그 종착지를 향하고 있다. 범죄자들에게 합당한 징벌을 내리는 동시에 검찰 및 사법권력 개혁을 통해 국가 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권력구조 개편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내란을 배태한 기득권 구조는 비단 검찰과 사법부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어 그에 대한 끊임없는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준동할 토양을 이루고 있다. 그 불평등구조의 원천에는 교육 불평등과 학벌주의, 대학을 통한 부의 재생산기제가 도사리고 있다. 진정으로 ‘진짜 대한민국’ 건설을 추구하는 정권이라면 이 대학 문제와의 대결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 국면에서 근본적 개혁이 늦추어질 수밖에 없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다. 개혁의 골든 타임이 소진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이 정권에서도 해묵은 한국 교육의 문제가 개혁되지 못하면 한국 사회의 구조 왜곡은 돌이킬 수 없이 고착될 것이다.
교육 불평등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의 토양이다. 기회의 불평등, 이동성의 차단, 공정성에 대한 신뢰 붕괴는 결국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을 증폭시킨다. 정권 초기에는 내란극복과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정치 일정을 인정하더라도, 후반기는 사회대전환의 필수고리라고 할 교육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올해와 내년 초까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동안 대학구조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보전하면서 본격적인 개혁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것은 지역의 대학들이 회복 불능 수준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공적 지원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지방대학들이 그 지역에서 고등교육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유지하고, 교수를 비롯한 연구 인력을 도태시키지 않고 지원하는 일, 즉 학문생태계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대학이 현재의 상호 경쟁이 아닌 역할 분담을 통해 공존하고 공적인 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 전반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 설득 작업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 그로 인한 과열 입시경쟁과 사교육 부담 등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의 바탕은 이미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논거를 세우고 여론을 끌어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성장패러다임의 대전환 기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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