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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가야왕궁 실체 현실화 될 날 그리 멀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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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가야왕궁 실체 현실화 될 날 그리 멀지 않을 것"

이영식 교수 "지금 우리가 왕궁 위치는 모르지만, 수로왕릉 위치는 알고 있어"

"김해의 가락국(駕洛國), 그 어디에서도 심증이 가는 곳은 많아도,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한 곳은 없습니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같이 피력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가락국의 왕궁으로 김해시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왕궁후보지는 두 군데이다"며 "수로왕릉 동북쪽의 동상동사무소 앞과 수로왕릉 남서쪽에 있는 봉황대가 그곳으로 양쪽 모두 ‘가락국왕궁터’라는 내용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다만 북쪽의 동상동사무소 앞보다는 남쪽의 봉황대 쪽이 더 유력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영식 김해 인제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조민규)

이 교수는 "<가락국기>는 서기 199년에 돌아가셨던 수로왕릉의 위치를 ‘대궐의 동북쪽 평지’로 전하고 있다"면서 "지금 우리가 왕궁의 위치는 모르지만, 수로왕릉의 위치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국 수로왕릉이 왕궁의 동북쪽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뒤집으면, 반대로 왕궁은 현재 수로왕릉의 남서쪽에 있었을 것이다"며 "수로왕릉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바로 봉황대이다"고 밝혔다.

"봉황대에서 동북쪽으로 수로왕릉을 향해 내려오면 김해김씨 종친회관이 있다"고 하는 이 교수는 "이 회관은 김해시가 왕궁복원사업을 위해 철거 중에 있다만 바로 그 뒤에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와 함께 자연석을 가공한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그 비석에는 ‘가락국시조왕궁허지(駕洛國始祖王宮虛地)’ 즉 가락국 시조의 왕궁 터라는 뜻의 한자가 아주 깊고 두텁게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뒷면에는 조선 숙종 6년, 서기 1680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327년 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면서 "500년에 가깝다는 은행나무의 수령과 잘 어울리는 비석이기는 합니다만 이 비석이 세워진 것은 가락국이 멸망했던 532년 이후 무려 1148년이나 흐른 뒤의 일이다. 가야왕궁 찾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추정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역설했다.

이영식 교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수로왕이 도읍을 정하면서 길이 1500보의 나성(羅城)을 돌리고 궁궐·관청·무기고·창고 등의 신궁(新宮)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해 가야왕궁 실체가 현실화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민규

경남취재본부 조민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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