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시의 한 공조설비 업체가 고등학교 행정실장을 사칭한 일당에게 속아 4500만원을 송금하는 신종 납품 사기를 당한 사실이 20일 확인됐다. 사기범들은 실제 관내 학교 이름을 파악한 뒤 에어컨 교체 견적을 미끼로 신뢰를 쌓고, 고가의 산소발생기를 끼워 넣는 수법을 썼다.
피해자는 여주에서 S시스템공조공조설비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10시 31분, 김 대표는 자신을 '여주J고 행정실장 김태훈'이라고 소개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교무실·행정실 천장형 에어컨 3대 교체를 언급하며 "학교 방문 후 견적을 봐달라"고 요청했다. 통화 내용은 실제 관공서 업무와 다를 바 없었다. "행정실로 방문해 달라", "결재를 올려야 한다", "명함을 보내 달라"는 말까지 더해졌기에 김 대표의 의심을 사지 않았다.
산소발생기 납품으로 유인… 15대 → 30대 '긴급' 강조하며 송금 압박
사기범의 본격적인 유인책은 오전 11시 28분 이후 시작됐다. 이 남성은 "학교에 산소발생기가 긴급히 필요하다"며 "대표님이 취급하지 않는 물품인 건 알지만 중간에서 납품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가 있으니 재고와 단가만 확인해 달라"며 다른 업체와의 통화를 유도했다. 곧바로 연결된 인물이 '신라무역 김나리 부장'이었다. 김나리는 시중가 210만원짜리 산소발생기를 "연말 첫 거래 프로모션"이라며 155만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납품가는 198만~210만원까지 가능하다며 대당 40만~50만원, 총 수백만원의 중간 마진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우리 회사 취급 품목은 아니지만 납품만 하면 된다"는 설명과 '학교 긴급 건' '연말 예산 집행' '결재 서류'라는 말에 점차 안심하게 됐다.
사기범들은 이후 속도전으로 김 대표를 몰아붙였다. "물류가 빠질 수 있다", "오늘 발주하지 않으면 결재가 안 된다", "내일까지 받아야 한다"는 말이 반복됐다. 김 대표는 결국 산소발생기 15대, 총 2250만원을 개인 명의 계좌로 송금했고, 곧바로 15대를 추가 발주해 총 4500만원을 입금했다.
계좌 명의는 법인이 아닌 개인이었지만, 사기범들은 "물류센터 담당자가 따로 있다", "세금계산서는 나중에 처리한다"고 둘러댔고, 김 대표는 이 말을 믿었다.
송금 직후인 23일 오후 3시 5분, A은행 금융사고예방팀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개인 계좌로 고액이 입금됐다", "투자나 공동구매 권유를 받은 것 아니냐"며 사기 가능성을 명확히 인지한 정황을 보였다.
은행 직원은 "학교에서 정해준 업체가 맞느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직접 여주제일고등학교에 확인 전화를 했다. 그 결과 '김태훈'이라는 행정실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당 계좌에 대한 즉각적인 지급정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은행이 김 대표에게 "경찰서에 가서 사기계좌 등록을 하라"는 안내를 받고 경찰을 찾아가 해당 절차를 밟았지만 이미 자금은 인출된 뒤였다.
김 대표는 모든 것은 자신의 불찰이라면서도 "은행이 사기 가능성을 인지하고 학교에까지 확인 전화를 했음에도 지급정지 조치가 즉각 이뤄지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계좌는 김 대표 외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지급정지를 신청한 정황이 포착됐고, 조직적인 사기 계좌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지역인사는 "이상 거래를 인지한 시점에서 일시 지급정지(패스트 트랙)가 이뤄졌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며 "은행의 대응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 사기 혐의로 사건을 접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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