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각은 그 풀이 하나의 나무 모양을 하고 제 키만큼 자랐을 때, 잎을 따서 높다란 고목 팽나무의 큰 가지 위에 올려주며 중얼거렸다. 할매, 이것이 당신의 자식이라오. 내가 키웠어요. 몽각은 이 빈터의 오랜 주인이었던 고목에게 자기도 한 식구가 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군산 하제마을에는 수령 육백 년이 된 팽나무가 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다.
황석영 선생은 군산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하제마을 팽나무를 찾아가 막걸리를 부어드리고, 축문을 지어 소지하며 지켜드릴 것을 서원한다. 그 서원 안에는 팽나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한 편 쓰겠다는 염원도 들어있었다. 그 염원이 장편소설 <할매>가 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의 맨 위쪽 그러니까 삼봉산자락 끝이 우리 집이었다. 집 입구 한편엔 마치 수호신처럼 커다란 팽나무가 뿌리내리고 있었는데 마치 셸 실버스타인의 어린이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격이었다. 지금은 더 아래쪽으로 이사해서 옛 집은 빈터가 되었지만 고향을 찾으면 팽나무를 찾아간다. 내게는 마치 할아버지 같은 나무였기에.
새해 아침에 최성각 선생께서 두 권의 책을 보내주셨다. 특유의 필체와 사랑을 담은 편지와 함께.
"아주 오래전 멀쩡한 땅을 잃고, 그 땅을 위해 애쓰고 눈물지었던 분들의 노력과 마음만은 담아두자, 하고 엮었던 책을 드립니다." 책은 선생이 중심이셨던 풀꽃평화연구소가 엮은 <새만금, 네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 그리고 다른 한 권은 <할매>.
황석영 선생께서 소설의 '감사의 말'에 적었다. 최성각 선생의 <새만금, 네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가 소설의 뒷받침이 된 생생한 자료였다는 사실을.
"이 나무를 둘러싼 육백 년은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며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년 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부처의 '열반경'과 해월 최시형의 '사인여천'에 깃든 설법을 읽으며,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던 생각이 군산에 와서 '팽나무'를 만나면서 이제야 성사되었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경의 가르침이다. 인간과 인간은 그래야 한다. 인간과 자연 또한 그래야 한다. 이것이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다.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을 읽었다는 인터뷰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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