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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보려 했는데…" 30살 삼성전자 연구원 죽음에 유족 진상규명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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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보려 했는데…" 30살 삼성전자 연구원 죽음에 유족 진상규명 촉구

노동시민사회 "성과주의가 가져온 비극…삼성, 사과하고 근본 대책 마련해야"

"잘 해보려고 하는데 하나씩 일그러지고 있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30살이었던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고(故) 김치엽 씨가 지난해 1월 22일 소셜미디어 X에 남긴 글이다. 두 달여 뒤인 3월 26일 고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죽음에 대해 유족과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고인의 의무기록지 등을 토대로 업무 연관성을 주장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7일 서울 서초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치엽 연구원의 죽음은 삼성의 성과주의가 가져온 비극"이라며 "삼성은 고인의 죽음 앞에 사죄하고,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고 병들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내라"고 촉구했다.

1995년생인 김 씨는 2024년 2월 대학원에서 신소재공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해 4월 16일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3월 26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한 이들은 연락 두절을 이유로 자택 문을 열고 들어간 삼성전자 인사팀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올림이 제공한 삼성전자 사내병원 마음건강클리닉의 의무기록지 내용을 보면, 고인은 우울증, 불안, 업무 스트레스 진단을 받았다. 수면장애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고, 스트레스 평가 1순위는 '일과 직업에 관련한 사항'이었다.

유족 대리인인 이성민 노무사는 "고인의 기록에는 '사과문 제출', '파트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정신건강휴직을 쓰게 생겼다'는 말이 반복된다"며 "고인의 사망 시기에 'HBM 경쟁에 뒤처진 삼성'이라는 보도와 연구원 이탈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성과 메시지를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인의 기록 곳곳에 남은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은 그의 죽음이 이런 조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며 "이 죽음의 원인과 책임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노동자의 취약한 정신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조사도 제시됐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지난해 3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과 함께 수행한 '삼성전자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 결과 "임금노동자 평균에 비해 수면장애 비율이 2.5배에서 3.7배까지 높았다"며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에게 우울증세가 있었는데, 이는 일반 인구에 비해 2.5배나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살 관련 항목이었다. 일반 인구에 비해 자살충동은 7배, 구체적인 자살계획은 5배, 자살시도는 10배나 높았다"며 "과도한 업무량과 성과 압박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회견에는 고인의 아버지도 참석했다. 김영구 씨는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며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그곳에 입사한 아들은 누구보다 기뻐했고 저희 가족 역시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 선택을 응원했다"며 "하지만 입사 이후 아들은 점점 회사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밝던 아이의 표정은 사라졌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목소리도 점점 무거워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하늘로 보낸 아들을, 이제는 꿈에서라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며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그날 이후 제 시간은 멈췄다. 그리고 매일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왜 우리 아이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나?'"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오늘 아버지로서 이 자리에 섰다. 아들의 죽음 앞에 이 사회에 묻고자 한다"며 "이 죽음이 정말 개인의 선택이었나. 아니면 구조와 압박 속에 방치된 결과였나. 삼성전자는 이제 침묵이 아니라 답을 해야 한다"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고 김치엽 연구원의 아버지 김영구 씨(가운데)가 27일 서울 서초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반올림이 주최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연구원 故 김치엽 자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용락)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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