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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신비, 스칸디나비아를 가다

꿈에도 그리던 북유럽의 먼 나라, 백야(여름)와 오로라(새벽, 겨울) 그리고 빙하와 만년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동화의 세계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여행한다는 것은 행운이고 가슴 벅찬 일인데, 아내 덕분에 꿈을 이루게 되었다.

1일차 되는 지난 6월 22일 새벽잠을 설치고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점보 택시 편으로 김해공항에 갔다.

▲김영일 前 KNN경남본부장
인천 가는 국제선 연결 편을 타기 위해 서두른 것이다. 김해공항에서 인천을 거쳐 오슬로 가는 좌석을 배정받고 수하물을 부쳤다. 오슬로까지는 10시간이나 걸리는 먼 여정이다.

마음 같아서는 비즈니스 석을 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운 좋게도 일반석 비상구 좌석을 구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준 비지니스! 내가 지어냈다.

얼마 전에 개장한 인천공항 제 2터미널을 돌아본 뒤 조찬을 하고 라이브 공연까지 보면서 느긋하게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오후 1시 반에 출발해야할 대한항공 전세기는 계류장에 꼼짝 않고 앉아 이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 하늘에 트래픽이 심해 대기하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유럽으로 향하는 하늘 길도 체증이 심한가 보다. 정확히 1시간 뒤에 요란한 발진음을 울리며 육중한 에어버스는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나는 비행하는 동안 시차 적응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맛있는 비빔밥 한 그릇을 비우고 오디오북이 읽어 주는 ‘한국의 오솔길’ 시리즈를 1시간 반 가량 들으며 약간 졸기도 했다. 오슬로는 8시간의 시차가 있다. summer time을 적용해도 7시간이나 늦다.

현지시각 오후 5시에 노르웨이의 관문 오슬로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향했다.왕궁에서 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칼 요한 거리의 그랜드호텔에 투숙했다.

이 호텔은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묵는 유서 깊은 호텔이라고 한다.DJ 대통령도 체류했다고 한다.

나도 세계평화에 기여한 사람처럼 우쭐해 졌다. 이날 저녁 9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환해, 왕궁과 국회의사당,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헨리크 요한 입센(1828-1906 극작가)의 작품을 상시 공연한다는 국립극장 주변을 돌아보고 1849년에 왕궁을 건립한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동시에 통치한 국왕 ‘칼 요한 14세’의 동상을 바라보며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았다.

23일 2일째에는 오슬로대학 교수였던 입센이 매일같이 그랜드호텔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가 어딘지 물어, 나도 거기에서 빵과 커피로 가볍게 조반을 들고 아쉬운 마음으로 칼 요한 거리를 거닐며 기억의 열쇠를 열어 두었다.

잠시 뒤 구스타브 비겔란트(1869-1946)의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태어나 성인과 노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과 喜怒哀樂, 사랑과 절망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생동감 있게 청동으로 제작해 진열해 두었다.

정부 지원으로 유학해 세계적인 조각가로 성공한 때문인지, 국가에 귀중한 작품들이 문화유산이 되어 전 세계 관광객의 발걸음을 딛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현실과 대별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꿈나무가 태어나도 국가나 공익재단, 기업 등에서 후원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 부모가 등골이 휘도록 뒷바라지하여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그때서야 관심을 갖는 정도이다.

대다수의 재원들은 꿈을 키우기도 전에 스스로 좌절하거나 경쟁자들의 시기나 중상모략으로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대부분 시들고 만다.

▲노르웨이 베르겐 시가지 ⓒ김영일 제공

옛날에는 척박한 땅 노르웨이 살던 사람들은 해적질을 해서 먹고 살았다. 폭이 좁고 닻이 길며 뾰쪽하게 솟아올라 속력이 빠른 배를 만들어 타고 이웃나라를 침략해 노략질을 했던 것이다.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바이킹 박물관과 뭉크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미술관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노르웨이 출신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가다.

그의 대표작인 ‘절규’는 노르웨이 해변의 아름다움과 사람(뭉크 자신)의 놀라운 표정을 독특하고 기발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일본식 스시와 샤브샤브로 점심을 배불리 먹은 뒤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다는 노르웨이 시청사를 방문했다.

노벨상은 스웨덴에서 시상한다. 하지만 평화상만은 오슬로에서 수여하고 피로연은 스톡홀름에서 갖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한때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100여 년 동안 지배하면서 그 유화책의 일환으로 실시하였다고 한다.저녁 무렵 스칸디나비아(SAS) 항공편으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3일 되는 날 오전에는 발트 해와 멜라렌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스웨덴 왕궁과 스톡홀름 시청사, 감라스탄 구시가지와 대 광장을 중심으로 한 시티투어를 했다. 거리 연주자의 앙칼진 톱 연주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으로 미각을 돋우었다.먼저 찾아 간 곳은 노벨상을 수여하고 연회도 개최한다는 스톡홀름 시청사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연회를 베푼다는 푸른 방(Blue Holl)에는 푸른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건축가 ‘랑나르 외스테르베리’가 푸른 방이라고 이름 지을 때는 벽을 푸르게 채색하고 지붕을 개방하여 하늘을 끌어 들일 생각이었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유리로 천정을 덮으려다가 이마저 눈의 무게를 감안해 포기하고 설계 변경했다고 한다.

또, 조명에 비친 붉은 벽돌이 하도 아름다워 아예 푸른 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푸른빛이 나는 화강석을 바닥에 깔아 위안을 삼았나 보다.

그리고 오벌 룸에서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왕자인 유진이 그렸다는 벽화이다. 아름다운 멜라렌 호수를 등지고 앉은 수상자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 호수의 풍경을 그림으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작품성을 떠나 손님에 대한 배려가 깊다. 9-20세기 초반까지 스웨덴 역사가 묘사되어 있는 대망의 골드 홀은 1800만개의 수정과 금박 모자이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튀어 나올 듯 큰 눈과 메두사 머리를 한 건장한 체구의 멜라렌 여신의 모습에서 이질감 같은 걸 느꼈다.

감라스탄 구시가지에서 왕궁과 시청 등을 파노라마로 촬영하고 질긴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바사호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바사호박물관이 있는 유르고르덴 섬은 17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스웨덴 왕실의 사냥터였던 곳이다.

1628년 8월 10일 폴란드를 공격하기 위해 스톡홀름 항구를 떠난 전함 바사 호는 출항 직후 돌풍에 휘말려 침몰하였다. 그 후 333년이 지난 1961년에 인양되어 임시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1990년에 이곳으로 이전하여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로 가려면 발트 해를 건너야 한다. 중국 위해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기분으로 별 생각 없이 부두로 나갔다. 거기에는 여러 척의 크루즈가 정박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런 여객선이 아니었다.

12층 높이의 크루즈 급 실자라인에 올랐다. 20년 전에 홍콩에서 출발해 하이난 섬과 베트남 하롱베이를 돌아왔던 스타크루즈 슈퍼스타 레오 호 보다는 작지만 꽤나 괜찮은 배였다.

데크층인 7층은 카지노, 바, 편의점, 사우나, 노래방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있고 6층은 두 개의 큰 식당과 작은 바들이 여러 개 자리 잡고 있었다. 8-12층은 객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방과 보이지 않는 방 그리고 테라스가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까지 3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방을 배정 받아 호수같이 잔잔한 발트 해의 이름 모를 섬들과 셀 수 없이 자주 지나다니는 크루즈들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25일 4일째에는 선내 뷔페에서 일찍 조식을 끝내고 하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동행한 김 사장님이 어제 찍은 사진을 찾았다며 건네 주셨다. 잡지 표지 모델처럼 코스프레 한 사진이 그럴 듯 해 보였다. 하선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핀란디아’란 곡으로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이 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1865-1957)를 기념해 만든 시벨리우스 공원이다.

문득 애국가와 ‘코리아 환상곡’을 작곡하고도 낯선 땅 포르투갈에 누워있는 안익태 선생이 생각났다.

핀란드는 위도가 높은데다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있어서 그런지 한 여름인데도 날씨가 쌀쌀했다.

초기 러시아 정교회 건물과 핀란드 농가 등 소박한 건축물 몇 개를 보며 한참 걷다보니 추위가 사라졌다.

감자와 미트볼로 요리한 핀란드 식 오찬을 들고 자갈치 시장 같은 마켓 광장에서 그들의 음식문화를 살펴보고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헬싱키 대성당 앞, 원로원 광장에 우뚝 선 동상이 궁금하여 가까이 가 봤다.

舊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의 동상이다. 과거 러시아가 핀란드를 지배하고 있을 때의 군주이다.

우리 같아서면 벌써 끌어내렸을 것인데 그들은 자존심이 없는 건지, 선정을 베풀어 준 황제라고 오히려 칭송하고 있다. 문화의 차이로 해석해야 옳을지?

나는 여행하는 내내 핀란드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다른 두 나라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운명을 지닌 국가라는 생각마저 들어 마음이 당겼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같은 종족인 게르만족이고 바이킹의 후예이다. 반면 핀란드 사람들은 우리와 어순이 같은 우랄알타이어를 구사하는 스키타이 계통의 핀 족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바다 건너 스웨덴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5천년 동안 중국의 간섭을 받으며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다투었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무엇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바위산을 부숴 지은 교회 하나를 더 보고 코펜하겐으로 날아갔다.

5일 째에는 바로크 풍의 아름다운 정원을 관람하러 가는 길에 김 사장님의 즉석 제안으로 루지애나 현대미술관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개관하지 않아 소장품은 보지 못했지만 정원과 건물 외관을 살피며 위안을 삼았다. 이윽고 베르사유 궁전의 앞뜰보다 더 아름답다는 바로크 정원을 보고 안델센 동화의 주인공 인어공주를 마주하고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인어공주를 떠올려 보았다. 똑같은 인어공주라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코펜하겐의 인어공주는 찾는 사람이 저리도 많은데...

조선업이 성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오래전에 문을 닫은 조선소들이 묵묵히 우리의 현실을 예견이라도 하 듯 대했다.

바다 건너 스웨덴 “말뫼의 눈물”을 기억하라면서, 스칸딕 호텔에서 칠면조 요리를 맛있게 먹고 왕이 거쳐한다는 궁전 거쳐 로젠보그 성 보석관에서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왕관과 각종 보석류와 검 등 왕실 보물들을 살펴보며 눈을 호강시키고, 시청 광장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의 부산 베르겐으로 향했다. 베르겐은 북해와 맞닿는 곳이라, 여름인데도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였다.

부둣가에서 푸른 하늘과 백야를 즐기며 바다가재와 대구 요리로 배를 채우고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300년이나 된 목조 건축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고풍스런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어 6일 째에는 브리겐 구 시가지와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오슬로에서 보지 못한 뭉크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그리고 지상 궤도로 언덕을 오르는 후니쿨라를 타고 플뢰엔 산 전망대에 올랐다.

탁 트인 베르겐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북해를 향해 손 뻗고 있는 산맥들 사이로 대형 크루즈 선들이 관광객들을 연신 토해 내고 있었다. 보존도 좋지만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여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것도 효율성이 더 높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부터는 캐피털 투어나 시내 관광이 아닌 자연을 섭렵하는 일정이라 지겹도록 차를 타야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버스에 올랐다.

편도 1차선 도로를 천천히 달려 미르달로 향했다. 차창에 비치는 산과 계곡, 폭포와 호수가 달력에서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이었다. 산악열차를 탑승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공기가 상쾌했다. 하늘빛도 높푸르고 빙하가 녹아 만든 호수의 물빛도 에메랄드보다 더 파랬다. 온 세상이 파랗거나 진녹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플롬 열차를 타고 좌측과 우측을 번갈아 살피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대자연이 준 선물치고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웅장했다.

산꼭대기 아니, 차라리 하늘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기둥이 폭포를 이루어 쿵쾅 쿵광 소리 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코가 크고 눈이 툭 튀어나온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만 전해오는 요정, 트롤(troll)이 음악에 맞춰 폭포 옆에서 한바탕 춤사위를 벌인다. 사람이 분장한 것이다.곡예 하듯 달리던 열차는 어느새 송네 피오르드에 도착했다. 나는 선착장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카페리 편으로 왕실 소유의 호텔로 향했다.

송네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빙하가 만든 협만으로 북해에서 200km나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깊은 곳은 수심이 1000m가 넘는다고 한다. 폭이 넓어 거대한 호수 같았다.

심해에서 살고 있는 고래가 가끔 착각하여 내륙 깊숙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가이드가 밤새 자지 말고 돌고래 떼를 관찰해 보라고 권한다. 멋진 피아니스트의 감미로운 연주를 들으며 진한 커피 향에 취해 한참을 앉아 있으니 일어나기가 싫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반팔차림으로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기도하고 해초도 뜯어보았다. 그림같이 조성된 예쁜 목조 가옥 사이로 잘 조성된 화단을 찍느라 분주한 김 사장님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유롭고 한적했다.

7일 째에는 아침 일찍 브릭스달로 향했다. 수만 년 전 빙하시대의 빙하를 보기 위해서다. 서너 시간 넘게 1000고지나 되는 산을 넘고 또 넘으며 때로는 달나라 같이 황량한 사막을 만나기도 하고 또, 눈으로 뒤덮인 골짜기와 산등성이도 마주하며 그렇게 브릭스달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우의를 꺼내 입고 바퀴 큰 사륜 오픈카를 타고 또, 걸어서 빙하가 보이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서울시의 10배가 넘는다는 빙하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봤지만 거세게 흐르는 빙하계곡을 보고 있자니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흐르는 우유 빛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10초를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차가웠다. 물 한 금을 마셔보았다. 이가 시리고 입 안이 얼얼했다.

▲달스니바 호수(노르웨이)ⓒ김영일 제공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게이랑 피오르드를 관람하기 위해 다시 카페리에 몸을 실었다. 빙하가 할퀴고 간 U자형 협만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지리 시간에 상상했던 바로 그 협만이었다. 넓은 피오르드 사이로 대형 크루즈 선이 지나간다. 손을 흔들어 보았다. 그들도 따라 흔들어 주었다.

칠 선녀 폭포와 나무꾼 폭포가 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흐른다. 나는 나무꾼이라도 된 듯 뒷짐 지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인간이란, 대자연 앞에서는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오르드가 끝나는 지점에 우리 일행이 묵을 150년이나 된 호텔이 있었다. 이름 하여 유니온 호텔이다. 클래식 카 수집광인 호텔 주인장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 주인 잃은 고급 세단들만 번쩍거리고 있다. 지금은 그의 손자나 증손자가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정의 끝을 달리고 있는 8일째 게이랑에서의 아쉬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꼬불꼬불 비탈길 따라 달스니바 전망대에 올랐다.

해발 1500m가 넘는 산 정상에 오르는 동안 몇 차례의 아찔한 광경을 경험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 구름 속에 가려 있는 게이랑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언제 또 다시 이렇게 맑고 신선한 공기를 흡입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심호흡을 거듭해 보았다.

백두산 천지보다 훨씬 큰 빙하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연록의 물길이 이내 로겐 강이 되어 미에사 호수에 이른다. 강 따라 내 마음도 흐른다. 릴레함메르에서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청춘을 다 바쳐 일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이드의 요청으로 나는 올림픽의 역사와 개최지, 릴레함메르대회 때부터 동 하계 올림픽이 2년 간격으로 서로 엇갈리게 치러지게 된 배경 등을 일행에게 잠시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IOC본부 임원이 묵었던 호텔에서 오찬을 들고 스키 점프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며 공항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어느새 24년 전 올림픽 때 ‘시셀(Sissel)’이 불러 세계인의 가슴을 적셨던 릴레함메르 올림픽 찬가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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