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하 등장인물 직함 생략)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잃은 한나라당을 사실상 자신의 사당인 새누리당으로 바꾸는데 성공했지만 스스로를 새누리당 속에 가두어버렸다. 하지만 이 정당은 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생명력이 긴 강력한 정당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야당으로 견뎌낸 강인한 정당이다. 현재의 야당 조직만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를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민주당의 실패에 기인한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선거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떠난 민심이 민주당으로 돌아서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민주와 개혁을 갈망하는 민심의 무게 중심은 정당 밖에 자리 잡고 있음이 무소속 박원순의 당선을 통해 확인되었던 것이다.
이후 반년 민주당은 정당 밖에 자리하고 있는 민주개혁 세력의 무게 중심을 민주당 내부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 밖의 많은 인물들이 민주당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두주자 문재인이 그랬고, 현재 당 대표인 이해찬이 그랬고, 백만민란을 이끈 문성근 및 혁신과 통합 아래 뭉쳤던 적지 않은 시민운동가들 역시 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뿐인가. 무소속으로 남아 있던 김두관 경남지사,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통합'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4.11 총선에서 참패했다.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민주당에 합류했음에도 민심은 이들과 함께 민주당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 대선이 4월 총선과 같은 정당 대결 구도로 간다면,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이길 확률이 높다. ⓒ프레시안(최형락) |
민주당은 단지 외형적 외연만 넓혔을 뿐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떠안았던 핵심 과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민주당의 '혁신'을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지금의 민주당은 바꾸어야 할 '무엇'을 가져 본 적이 없다.
87년체제 하에서 구 민주당의 정체성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호남당'이었다.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전국적 개혁정당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정치적 모험의 산물이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자기정체성 창출에 실패했고, 함께 추구할 집합적 가치와 노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으며, 이에 기반한 굳건한 조직망을 구축하는 데도 실패했다. 2007년과 2008년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민심이반이 확인되고 권력상실이 확정된 순간 열린우리당은 허망하게 붕괴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열린우리당의 뒤를 이은 지금의 민주당 역시 제대로 된 정당 모습을 지난 4년 동안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자기 정체성과 집합적 가치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정당은 허깨비 정당에 불과하다. 문제는 '혁신'이 아니라 '건설'인 것이다. 명망 있는 새 인물들을 무수히 영입했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노선에 바탕을 둔 화학적 결합은 없었다. 4.11 총선을 목전에 두고 이들이 국민에게 보여 준 것은 희망과 비전, 그리고 이를 성취할 수 있는 단합된 역량이 아니었다. 한 울타리 안에 갇힌 들개들이 고기 덩어리를 한 입 더 뜯어먹으려 다투는 이전투구의 목불인견이었다. 총선 참패는 결코 의외의 결과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대선에 나서려 하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박근혜의 새누리당을 이기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그러면 이번 대선의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02년 노무현이 그러했고 또 2011년 박원순이 그러했듯 정당의 조직력과 동원력은 운동정치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에 관해 가장 탁월한 연구와 분석을 수행해 온 최장집 교수는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정당정치의 낙후성에서 찾고 있다. 그는 소위 운동정치의 과대성장이 정당정치의 견실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최근 여러 차례 진단하고 또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인과관계를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과연 운동정치의 과대성장이 정당정치의 견실한 발전을 가로막았을까. 오히려 87년체제 하에서 지속된 '정당의 실패'가 그 대안으로서 '운동정치'와 '시민정치'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책임은 '정당'에 있지 '운동'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 이후 한국 시민운동은 정치개혁을 주력운동으로 삼았다. 이 시민운동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역주의 기득정당들의 탄핵 기도를 촛불과 표로 응징했으며, 지역주의와 사당정치에 기반한 87년체제 혁파의 서막을 열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반복되었던 저항의 물결은 작년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시민정치의 거대한 쓰나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운동정치, 시민정치는 한국정치의 흐름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정당의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 한나라당의 변신은 놀라웠고 이 변신을 주도했던 박근혜의 리더십은 주목할 만했다. 군부독재 세력의 후신 정당, TK를 기반으로 한 영남당이라는 이미지를 대폭 약화시키고 보수 우파를 대표한다는 이념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성공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변신과 반격은 보수언론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으며 같은 시기 시민사회에 결성된 보수적 시민단체 역시 탄탄한 후원 세력이 되어 주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변신을 주도한 박근혜는 정당정치 외곽에서 세력을 키워 온 이명박에게 대권 후보 자리를 넘겨야 했으며 이명박 집권 후 한나라당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한나라당은 순식간에 민주시민 탄압 정당, 기득세력 비호 정당, TK(영포)주도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보수언론은 정권의 시녀가 되었고 공영방송은 정권의 나팔수가 되었다. 보수적 시민단체는 신속하게 관변단체로 성격을 바꾸었다.
이 모든 변화야말로 지난 4년 한국 시민사회에서 운동정치, 시민정치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배경이 되어 주었다. IT기술의 급성장과 소셜미디어의 눈부신 진화는 시민적 공론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을 넘나들며 점화하고,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민심의 이반은 한나라당의 변신 속도만큼 빨랐다. 2008년 촛불시위로 타오른 시민의 분노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운동정치가 정당정치를 압도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총선을 압두고 참패의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박근혜는 절묘하게 변신시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정당의 위기를 당 외곽세력의 지원을 받아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당 외곽에 조직한 비상대책위원회가 한나라당의 새누리당으로의 변신을 이끌었던 것이다. 총선 후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당으로 바뀌었다. 의회 절반을 장악한 강력한 정당 조직 안에 자신을 가두었다. 자신이 변신시킨 정당조직과 정당정치의 힘으로 대권을 차지하려는 의지가 확연하다.
박근혜의 이처럼 견고한 정당정치를 과연 운동정치로 제압할 수 있을까.
운동의 물결은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몰아치기도 한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그러했다.
그러나 운동정치의 강력한 물결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강한 특징을 보여 왔다. 2002년 노사모의 결성과 노무현의 승리는 그 전형을 보여 주었다. 이 현상은 2004년 총선 때 재현되었다. 이때 몰아쳤던 운동정치의 물결은 노 대통령을 탄핵하려 했던 자들을 응징하려는 물결이었으며 열린우리당은 그 반사이익을 보았을 뿐이다. 총선 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2011년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며 사투하고 있던 김진숙을 구하기 위한 '희망버스'의 물결 역시 인물을 중심으로 운동정치가 작동함을 보여 준다. 감옥에 갇힌 정봉주를 격려하기 위해 결성된 '미권스' 역시 또 다른 사례일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이라는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운동정치, 시민정치의 백미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대의정치의 상식을 뒤엎고 있다. 정당과 선거라는 대의기제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은 정당지지율과 투표율을 떨어뜨리면서 시민운동을 확산시킨다는 것은 현대 민주정치의 상식이다. 시민운동 확산은 투표율 저하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물결치는 한국의 운동정치, 시민정치는 오히려 투표참여 운동으로 나타난다. 2002년 대통령선거, 2004년 총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가 그러했다.
결국 운동정치가 정당정치를 압도하려면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의 물결이 형성되고 확대되어서 선거당일 투표참여의 고조된 열기로 절정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 물결을 형성하고 또 확대시키나.
첫째, 부당한 탄압에 대한 시민적 공분이 동력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진숙과 정봉주의 사례가 전형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물결을 공분만으로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둘째, 후보자의 삶의 궤적이 발휘하는 힘과 감동이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 바보 노무현,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삶에 대한 공감과 감동이 발휘한 폭발적 동력이 그것이다.
셋째, 후보자의 메시지 생산 능력은 운동 동력의 증폭과 지속을 담보한다. 시민의 지지와 감동을 끌어 낼 수 있는 메시지를 스스로 생산하고 또 이를 전파, 확산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 노사모와 2011년 박원순 진영은 그 힘을 갖추고 있었다.
넷째,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유기적으로 넘나들며 시민들의 요구를 경청하고 이를 즉각 공약에 반영할 수 있는 소통 능력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다섯째, 시민정치는 집권의 길을 열어 줄 수는 있지만 효과적인 민주적 통치의 길을 결코 담보해 주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바로 그 뼈아픈 사례이다. 정책적 실패 사례들을 굳이 언급할 필요 없이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으로 실패한 정권이었다. 수명이 사실상 종료한 87년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질서 확립에 실패했다. 탈지역적 개혁정당의 성공적 안착에 실패한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또 통치의 효율성과 민주성을 조화시키는 데도 실패했다. 운동정치에 힘입어 대선에 승리하려는 인물 혹은 세력은 이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작년 가을 확인된 시민정치, 운동정치는 그 폭발력을 잃지 않은 채 잠복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과연 이 잠재된 기운이 이번 가을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다시 폭발할 것인가가 12월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가늠자가 될 것이다. 위에 열거한 덕목을 갖춘 후보자는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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