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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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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와 박근혜

[기고] 광복절 67주년 아침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과거사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모양이지만(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 그가 아직 너무 젊었을 때 부모가 차례로 총에 맞아 운명했고, 그의 앞길에 그의 아버지의 과거가 늘 발목을 잡으니 그에게는 과거란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뜻 깊은 광복 67주년인 만큼 우리 모두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얼마간 과거사를 복기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을사늑약)을 막지 못하자 전 우의정 조병세가 자결했다. 곧이어 병조판서와 형조판서 등을 지낸 민영환도 자결했다. 1910년 8월 22일에는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합병조약(合倂條約)이 강제로 이루어진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이 길로 국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매천 황현은 고향 구례에서 음독 자결한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벼슬자리를 얻은 바 없었기에 그의 말처럼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그는"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리오."라면서 절명시를 남기고 죽음의 길을 간다.

이렇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데 대해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도 있는 한편, 많은 우국지사들은 만주로 그 무대를 옮겨 무장투쟁과 교육 사업으로 조국의 광복을 준비한다. 물론 나라가망하자 자결하거나 집단으로 혹한을 무릅쓰고 망명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망국에 앞장선 대가로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희희낙낙한 부류들이 없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했던 자들 중에서도 1919년 초 파리강화회의에 미국의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대표로 파견된 이승만은 그해 2월 25일 미국의 대통령 윌슨에게 조선의 위임통치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매국적 행위를 저지른 자도 있었다. 더 나아가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조선 민중들을 착취하면서 일신의 영달을 도모한 자들도 많았다.

이 글에서는 이회영과 김좌진과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의 삶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까닭은 민주당 국회의원 이종걸이 새누리당 국회의원 박근혜에게 퍼부은 막말과 그것을 빌미로 이종걸의 사퇴를 요구하는 새누리당 여성의원들의 회견장에 서 있는 (새누리당 의원) 김을동이 연상시킨 역사의 패러독스 때문이다. 그 두 사람, 그러니까 이종걸의 할아버지 이회영과 김을동의 할아버지 김좌진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했던 독립지사들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대척점에 서 있는 한 가운데에는 새누리당 의원 박근혜가 자리하고 있는데, 누구나 알다시피 박근혜는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다.

그러니까 만주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독립투쟁을 하던 동지였던 이회영과 김좌진의 손자손녀인 이종걸과 김을동은 광복된 조국에서 이제 만주의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는 데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 개인이 아니라 만주의 일본군이 그랬다는 뜻이니까 행여 오해하거나 흥분하시지 마시길!)의 딸을 사이에 두고(지지와 반대의 양 극단에서) 대치하는 형국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 우리 역사의 패러독스가!

▲ 이종걸 의원의 박근혜 의원에 대한 막말에 대해 사과 요구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 마이크 앞에 선 이가 신의진 의원. ⓒ연합뉴스


이덕일이 지은 책 『이회영과 젊은 그들』(역사의 아침,2009)에 의하면, 이회영은 임진왜란 때 호종 1등공신인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다. 누군가의 족보를 따지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했던 명문가의 자손 이회영(그의 부친 이유승도 이조판서와 우찬성 등을 역임했고, 모친 역시 이조판서를 지낸 정순조의 딸이었다)이 누구 못지않게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산을 모두 정리한 다음 일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회영은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가서 무장투쟁과 교육 사업을 통해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이회영뿐만 아니라 고국을 떠나온 교포들은 먼저 중국인 토착 지주들의 일상적 착취에 시달린다. 중국인 지주들은 척박한 볼모지대를 애써 개간해 옥토로 만들어놓으면 갖은 명목으로 임대료를 올리거나 빼앗기 일쑤였다. 일제는 일제대로 친일파들을 앞세워 교포사회 내부를 분열시켰다. 중국 군벌들의 이해다툼으로 애국지사들이 겪게 된 고초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이회영은 가지고 간 자금을 모두 써버린 끝에 추위와 굶주림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무장투쟁의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부투하다 일경에 체포돼 결국 여순감옥에서 고문사하고 만다.

1920년 10월 21일의 청산리 대첩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김좌진은 1918년 만주로 망명해서 무장투쟁조직의 지도자가 된다. 여러 무장투쟁 조직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가운데 1920년대 중반 김좌진은 신민부의 총사령관이 되지만 곧 일제와 만주군벌의 결탁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된다. 이즈음에 이회영과 김좌진은 북만에서 조우하게 되는데, 정치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조국의 해방이라는 대의 앞에서 협력하게 된다. 1929년 7월에 발족한 한족총연합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족총련은 공산주의 세력과 끊임없는 충돌을 겪게 되고, 만주 청산리에서 일본군 1,200~1,300명을 사살하고 독립운동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김좌진 장군은 1930년 1월 20일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저격당해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우리 이름 박정희, 일본 이름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교도 조갑제에 따르면, 박정희는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1급 지식인이자 사상가였고, 그 사상을 실천에 옮겨 민족이 처한 상황을 타파해간 혁명가였다." 조갑제는 그의 책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박정희가 어릴 때부터 매우 폭력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통솔력이 매우 강했다고 다음과 같이 미화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박정희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친구였어요. 별명이 '악바리','대추방망이'였지만 함부로 그렇게 부르지도 못했지요, 일본인 교사들도 그를 귀여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급장을 지냈던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급우들 가운데 맞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동급생보다 키가 작았던 박정희는 겁도 없이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으면 체구나 나이가 위인데도 뺨을 후려갈겼어요."

자기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이 있으면 체구나 나이가 위인데도 뺨을 후려갈겨댔다는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다닐 때 교련주임 아리카와 중좌의 총애를 받은 덕분에 만주군관학교 추천서를 받아들고 그곳에 입학하여 일본군 장교가 된다. 이후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굳이 말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부모를 택할 권리가 애초에 없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가는 그야말로 운명이다. 박근혜 의원이 하필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의 딸로 태어난 건 그저 운명일 뿐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연좌제를 적용해서 그가 일본군 장교였고 나중에 5•16쿠테타와 유신정변을 일으킨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때 열린우리당의 의장이었던 신기남의 경우 그의 부친 신상목이 일제 헌병의 오장이었던 사실이 드러나자 의장직에서 사퇴했던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신기남은 집권당의 당의장일 때 그의 부친이 일제헌병의 오장(하사관)이었다는 의혹이 일자 처음에는,"전혀 사실이 아니다, 보도는 소설이다. 내용을 보고 나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뻔뻔함을 보인다. 이후 악화되는 여론과 그의 부친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애국지사들의 증언이 쏟아지자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박근혜 의원을 향해 년자를 붙인 트위터 글로 비난을 받고 있는 이종걸의 경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항일운동 경력 때문에 덕을 본 사람이니 박근혜보다야 행복한 편이겠다. 그러나 년자를 붙여 욕설을 한건 적어도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으로서, 더구나 집권을 꿈꾸는 유력 정당의 최고위원으로서는 참으로 정치적 감각이 없다. 욕은 사석에서 마음껏 해라. 그것까지야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렇게 한 건 무조건 사과해라. 구차하게 굴수록 수렁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나보다.

새누리당 의원 김을동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맞서 무장항쟁을 하고 온갖 고초를 겪은 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을 때, 박정희는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일본군 장교가 된다. 만주의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는데 앞장섰던 그 일본군 장교의 딸이 김을동이 받들어 모시는 박근혜 의원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묘한 느낌이다. 무엇인가, 너무나도 잘못되지 않았는가?

때마침 광복 67주년 아침이다. 정치적 인연이 어떻게 돼서 새누리당 의원이 되었는지 알 수 없고 그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러나 친일과 군사정변과 5•18학살의 유전자로 채워진 당에서, 그것도 박근혜의 충복 노릇에 여념이 없는 김을동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을까? 알 수야 없지만 평소 천박한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그가 이종걸의 한마디에 핏대를 세우며 나서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문제는, 박근혜가 국회의원을 하는 건 괜찮겠지만(신기남도 이번에 민주당 공천을 받고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5•16쿠테타와 유신정변도 문제지만, 누누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부친이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였다는 사실은 그의 가장 큰 원죄가 아닌가. 과거의 역사가 무슨 문제냐고?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희망찬 미래로 가야하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집적이요, 현재는 과거로부터 흘러온 물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흐름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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