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계에서 해양사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로 하네다 마사시는 더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아시아 지역 해양사 연구의 대가인 하네다 마사시의 저서는 이미 다양하게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그중 대표적으로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이수열·구지영 옮김, 선인)는 아시아 근세사와 근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영국 동인도회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고의 입문서이자 연구서이다. 최근에 하네다 마사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동아시아 해역으로 배를 저어 나아가다"라는 어젠다로 총 여섯 권의 시리즈 교양서를 집필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그 가운데 총론에 해당하는 제1권이 국내에 <바다에서 본 역사>(조영헌·정순일 옮김, 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해양사에 관한 풍부한 내용을 담은 대중 교양서로 출간되었지만, 그 전문성은 학술 연구서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이런 수준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일본 학계의 깊이에 경탄하게 하면서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양사 연구를 전공하는 필자와 같은 후속 세대들에게는 읽는 내내 호승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작이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동아시아 700년 문명 교류의 역사를 '바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를 위해 프롤로그에서부터 육지 중심의 관점을 바다 중심의 관점으로 다시 정립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기존 육지 관점의 '국적' 개념이 바다를 오가는 이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적을 명확히 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한다. 바다를 무대로 활약한 동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이 국적이 아닌, 거주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167년에 절강성 영파에 세워진 한 비석에는 사원 건립에 자금을 보탠 장공의, 정연, 장녕이라는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출신지가 각각 "건주 보성현에서 일본국으로 이주", "일본 다자이후 하카타진 거주", "일본국 다자이후 거주"로 되어 있다. 이들은 명백히 화인(華人: 중국인)의 이름을 가졌으니 육지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남송인일 테지만, 자기들의 거주지를 일본으로 밝혔다. 또 다른 예로 우리에게 익숙한, 전라남도 신안군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은 선박 자체는 중국에서 건조된 정크선이 분명하지만, 그 내부에는 일본의 사찰 이름들이 다량 적힌 목간이 있고, 중국과 일본의 것임이 분명한 생활용품들이 섞여 있어 승조원들이 중국과 일본의 혼성으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경우 신안선을 일본선으로 불러야 할까, 원선(元船)으로 불러야 할까? <바다에서 본 역사>는 이와 같은 흥미로운 바다의 혼종성을 보여 주는 다양한 예시를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였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육지의 국가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바다 세계를 '해역'으로 명명한다. 이는 바다를 단순히 자연지리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는 공간이자 물자와 정보가 교류하는 장(場)으로 인식하기 위함이다. 이 관점은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개념과 맞닿아 있는데, <바다에서 본 역사>는 이 개념을 동중국해 중심의 '해역사'로 새로이 해석했다는 점에서 아시아 해양사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사실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 이후 그 아시아 버전으로 초두리(K. N. Chaudhuri)의 인도양 연구(Trade and Civilisation in the Indian Ocean)와 앤서니 리드(Anthony Reid)의 동남아시아 해양사 연구(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가 나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사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데 비해,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사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 연구의 부록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12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긴 시간을 크게 세 개의 '100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각각 '열려 있는 바다(1250~1350년)', '경합하는 바다(1500~1600년)', '공생하는 바다(1700~1800년)'다. 각 100년의 타이틀은 동중국해를 무대로 활동한 다양한 그룹(관리, 상인, 종교인, 노동자, 기술자 등) 간의 관계가 때로는 개방되어 있었고, 때로는 경쟁했으며, 때로는 공생했던 양상들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도출하여 명명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도양이나 남중국해와는 구별되는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해역의 특수성이 도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들은 해역을 육지와 구분되는 하나의 개체로 설정함으로써 바다의 역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육지의 역사와는 다름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보여 준다. 사실 이는 육지에는 국경이 있지만, 바다에는 선으로 명확히 그어지는 국경이 없어 국가의 구분이 무의미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면서도 <바다에서 본 역사>는 "해역을 육지에서 분리해 역사를 그리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이 지점이야말로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해역사의 중요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바다에서 본 역사>에 따르면 동아시아 해역은 '육역'과의 관계에 따라 그 성격이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육지 정치권력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해역 세계의 대응이 나타나고, 그에 따른 해역 세계의 시대별 성격 변화 역시 관찰된다는 것이다.
시기별로 보면 남송대와 '팍스 몽골리카'의 개방성이 모든 해양 세력을 수용하는 '열려 있는 바다'를 제공하였고, 명대의 해금, 천계령, 해금 해제로 이어진 연안 지역의 혼란함이 일종의 기회로 작용해 다양한 해양 세력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경합하는 바다'를 형성하였으며, 조선, 청, 도쿠가와 막부라는 근세국가의 형성을 계기로 해역 세계마저 국가의 통제하에 들어감으로써 근대를 준비하는 '공생하는 바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바다에서 본 역사>는 전체적으로 해역 세계와 육역 세계의 관계를 '통제'와 '개방'으로 파악한다. 두 세계는 매우 미묘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 육지의 정치권력이 중앙집권화하고 강화되면 해역 세계를 통제(원대, 청대)하고, 육지 정치권력의 원심력이 강화되어 통제력이 떨어지면 해역 세계의 활동은 다원화되면서 활발해지는 식(명대)이다.
유라시아 전체에 걸쳐 제국을 형성한 몽골의 중앙집권화에 따른 통제가 해역 세계와의 교류를 제도화하고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면, 명대 후기에는 조공 무역이 거의 유명무실해지면서 (특히 화인) 해상(海商) 세력들에 의한 비제도권의 밀무역을 중심으로 해역 세계의 교류가 활발해진다. 이후 '공생하는 바다'의 시대에는 조선, 청, 도쿠가와 막부라는 국가 간 경계와 통제력이 명확한 근세국가의 등장으로 각 해역 세계의 주체들이 국가의 통제 아래에서 공존하는 시대로 접어든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외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해상들마저 이 통제적 질서를 따라야만 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해역 세계는 다른 해역 세계와는 달리 각 육역에 성립된 국가들의 성격과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동아시아 해역에 관한 다양한 영감을 제시하고, 그 관점을 비교적 뚜렷하고 명료하게 드러내 전공자뿐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함 직하다. 주로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서술된 가운데 한반도의 상황은 재미는 있지만 간간이 나오는 아쉬움이 있는데, 옮긴이들이 밝혔듯이 이 책의 출간을 기점으로 추후에 한반도에서 바라본 동아시아 해양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번역 작업은 업적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의 연구 환경에서도 후속 세대를 위해, 그리고 관련 주제에 관심이 있는 대중을 위해 흔쾌히 번역을 결정해 준 조영헌과 정순일 두 옮긴이와 민음사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