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빗속 수영협회**
하늘이 꾸물꾸물 하더니
서쪽 하늘 끝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온다.
번쩍거리는 걸 보니 번개를 가득 실어 놓은 것이
요란하게 한바탕 쏟아 부을 참이다.
새들은 하늘 높이 떠서 분주하고
이웃집 여자는 우박이라도 올 듯 싶은지
차를 차고에 집어넣기 위해 급히 자동차 열쇠를 들고 나온다.
동네 아이들은 죄다 자기 엄마들이
부르는 소리에 끌려서 집으로 들어갔고
골목 구석에서는 음산한 바람이 빈 봉지들만이 서로 엉켜
괜스레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다
검은 구름은 순식간에 하늘을 감싸 안더니
어느새 후드득거리며 빗방울을 떨어 뜨리고
천둥번개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아빠 지금 비 온다. 이제 가자.”
“어 그래 알았어…….
가자. 다들 수영복 입어.”
둘째 녀석이 나와 함께 창가에 앉아 있다가
천둥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걸 보더니 수영하자고 나서는 것이다.
큰놈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옷을 갈아입으러 이층으로 올라가고
막내 녀석도 엄마를 찾더니 수영복을 달라고 조른다.
“넌 안돼.”
우리 집 남자들이 하는 짓이 어린아이에게는
심하다고 생각한 아내가 아이를 막아 보지만
벌써 울음부터 터트린 막내는
기어이 앙증맞은 수영복을 찾아 입고는 따라 나선다.
번개가 치자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이미 장대비로 바뀐 하늘 밑을
이웃들의 의아한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우리 넷은 당당하게 걸어간다.
삼십여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집 뒤쪽의 수영장은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비가 오자 급히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가느라
잊어버리고 간 주인 없는 물안경과
수건 한 장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오전부터 여름 햇살을 받은 수영장 물은 아직도 따뜻하다.
아이들은 벌써 물 속에 뛰어 들어 괴성과 함께 수영을 즐기고
나는 바로 눈 밑에까지 물 속에 몸을 담그고는
신기한 눈빛으로 빗방울이 수면을 때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렇게 물 속에 머리를 담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 주위의 모든 풍경은 사라지고
빗물이 세차게 수면을 쳐내면서 생기는
물 파편과 함께 귓속은 가끔씩 울리는 천둥소리와
아우성치는 빗방울 소리로 가득하다.
굳이 하나님이 되어야
천지 창조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의라는 표현을 느끼기 위해
그랜드캐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물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웅장하면서도
대단히 부드럽고 고요해서 가슴은 북 치는 소리처럼
울리면서도 마음은 정경처럼 고요해져서
저절로 할 말을 잊는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낄낄대다가
이제 내 옆에 하나씩 붙어 앉아
다들 나처럼 나란히 등을 기대고 빗물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네 명의 작은 하나님이 되어
하늘의 이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도 자식을 낳으면
오늘 나처럼 빗속에 수영을 즐기듯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수영을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 또 그렇게 빗속에서 수영을 할 것이고
얼마 후에는 우리 같은 이상한 것들을 무조건 따라 하는
동조자들이 생겨서 전국빗속수영협회가 생겨 자식들 중에 하나는
협회 회비로 밥 먹고사는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식이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면 힘든 일이지만
세상을 뒤집어서 바라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분명 삶에 유머를 담고 생기를 불어넣는 행복한 일이다.
수영을 마친 오후에 비가 그치고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아이들과 나는 집 근처의 작은 도마뱀들을 몽땅 잡아서
빨간 리본을 달아 풀어 주었다.
다음 날부터 이웃들은 담장 위에 파란 도마뱀이
앞발 하나를 들고 먹이를 향해 숨을 죽이고 막 달려드는 순간에,
목 밑에 달려 있는 빨간 나비 리본을 보고
뒤로 넘어 갈듯 웃어대며 지나간다.
우리 집 남자들의 기행은 내일도 계속되리라.
<편집자 주> 필자 김승호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독자는 jk959@ naver.com로 연락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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