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고정 약진, 그리고 고정 사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고정 약진, 그리고 고정 사고

함익병의 피부 이야기 <14>

***고정 약진(fixed drug eruption), 그리고 고정 사고(?)**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흔히 복용하는 약제들로 인해 피부에 발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약에 의한 발진을 '약발진' 혹은 '약진(drug eruption)'이라고 합니다.

약진의 형태는 아주 다양해서 홍역에서 볼 수 있는 발진과 유사한 발진이 생기는 발진성 약진, 두드러기처럼 보이는 약진, 여드름같은 병변이 생기는 여드름양 약진, 물집이 생기는 수포성 약진, 피부의 혈관이 파괴되어 피멍이 생기는 약진까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약진 중에서 특정 약을 먹고 나서 피부의 동일한 부위에서 반복적으로 피부 발진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고정 약진'이라 합니다.

고정 약진은 원인이 되는 약물에 의하여 동일한 부위의 피부나 점막에 유사한 병변이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약진으로, 치료된 다음에도 대부분 진한 갈색의 과색소침착이 남으므로 피부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보면 진단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진>

사진은 원인 약제(클로르메자논: 근육 이완제)를 복용한 후 소양감을 동반한 붉은색의 반점이 발생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 생긴 병변은 예전에 발생했던 고정 약진으로 인해 과색소침착이 남아있는 부위와 일치하여 발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병변의 색깔이 가장자리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에서 갈색과 붉은 색이 합쳐져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습니다.

고정 약진이 생기는 원인은 명백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알레르기 원인 물질을 찾아내는 검사법인 첩포검사를 치유된 병변부위에서 실시한 결과 원인이 되는 약제를 찾아낸 경우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병변이 동일한 부위에 계속 재발하는 이유는 불확실하나, 정상 피부와는 달리 고정 약진이 생기는 부분의 표피 속에는 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인 CD8+ T-세포가 오래 남아있고, 또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포간 유착분자-1 (ICAM-1)가 병변부 표피 세포에서 비정상적으로 오래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포나 분자는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는데, 이로 인한 예기치 않은 면역반응이 고정 약진의 중요한 요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테트라사이클린(항생제), 코트림옥사졸(co-trimoxazloe:sulfamethoxazole-trimethoprim)등의 설폰아마이드(설파제), 바비튜레이트(수면제), 옥시펜부타존(소염진통제), 아세틸살리실산(해열제) 등이 원인 약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는 80년대에는 코트림옥사졸(설파제)로 인한 고정 약진이 많았으나, 90년대 들어서는 클로르메자논(chlormezanone:근육 이완제)이 더 흔한 원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클로르메자논은 부작용이 흔하다고 알려짐에 따라 97년부터 국내에서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해열 진통제로 많이 사용되는 메페나믹산(mefenamic acid)도 고정 약진의 흔한 원인이 됩니다.

고정약진의 흔한 원인이 되는 약제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tetracyclines(항생제), sulfonamides (co-trimoxazole:설파제),barbiturate(수면제), oxyphenbutazone(소염진통제), metamizol(진경진통제),acetylsalicylic acid(해열제), hyoscine butylbromide(진경제), ibuprofen(진통해열제), chlordiazepoxide(신경안정제), dapsone(나병치료제), antipvrine(해열진통제), phenolphthalein(진경제)
quinine derivatives(항말라리아제), paracetamol(진통해열제), benzodiazepines(신경안정제). 사용에 주의를 요하는 약제들입니다.

고정 약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원인으로 추정이 되는 모든 약제를 중단하고, 증상에 따라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변이 붉은 색을 띄고 있을 때에는 바르는 스테로이드제제를 붉은 색이 가라앉을 때까지 사용하고, 치료후에 남게되는 진한 갈색의 색소 침착은 미백 연고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는 호전이 되지만 완전히 본래의 피부색으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색소 침착이 미용상 심각한 문제가 될 경우에는 알렉산드라이트 레이져나 Nd-YAG 레이져를 사용하여 색소를 없애는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성분의 약제일 경우 교차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데, 반합성 페니실린 제제들 사이, 독시펜부타존-페닐부타존(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 사이, 프레드니졸론-덱사메타존(스테로이드제제) 사이, 카바마제핀-페니토인(항경련제) 사이에는 교차 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니 어느 한 쪽이 원인인 경우에는 다른 쪽 약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특정 약제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약이든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만큼 약을 복용하기 전에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사용해야만 합니다. 원인 약제의 규명은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한 검사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이 '피부반응 검사'인데, 이 결과가 양성이라고 해도 원인 약제로 확정 지울 수는 없습니다.

'피부반응 검사'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량의 약제를 다시 투여하여 약진이 다시 유발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검사는 병변을 다시 유발하여 환자를 불편하게 하므로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고, 발병 전에 먹었던 약을 정확하게 기록해두었다가 다시는 그 약이나 유사한 약의 복용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진찰을 받은 다음에 받은 처방전을 버리지 말고 일정 기간 보관하는 것이 '고정 약진'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여러 대형 사고를 보면, 고정 약진이 발생하는 이치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들만 되돌아봐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도시가스 폭발,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그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과 같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고들이 있습니다. 일어날 개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별문제 없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고 발생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았고, 실제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도 책임자의 무사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대형인명 손실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대형 사고가 이어지는 것은 해당 사고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면 항구적인 대비책은 세우지도 않고 두리뭉실 넘어가 버리는 무신경한 대응이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일 겁니다. 약발진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서 원인 약제 및 그와 유사한 약은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책이듯, 대형 참사가 생긴 다음에는 사후 수습뿐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이번 참사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프레시안의 독자들과 함께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