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같은 TV 다큐멘터리는 고정 시청자를 확보한 인기 프로그램이고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는 비리와 부정을 폭로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한편으로는 <워낭소리>, <노무현입니다> 같은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이라는 형식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상, 영화는 다양화되었고 그 시장은 산업화되었다. 그 산업화에 대하여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몇몇 다큐멘터리가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고 해도 회수된 수익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대다수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삶은 위태롭다. 고정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제작비를 마련하려면 여러 공적 자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영화진흥위원회, 각 지역 영상위원회 등 기관에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많은 독립영화들의 제작을 지원해 오고 있고, 전주국제영화제가 SJM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한 다큐멘터리 피칭은 '전주프로젝트마켓'이라는 행사로 거듭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른 행사들의 독립영화 제작지원도 전보다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전주와 결별하게 된 SJM재단이 인천영상위원회와 손을 잡고 만들어진 인천다큐멘터리 포트는 작년까지 5회의 행사를 치러냈다.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강상우 감독의 <김군> 등 인천다큐포트의 지원을 받은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왜 갑자기 폐지되었는가?
인천다큐멘터리 포트는 인천시 소속의 인천영상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인천시, 영화진흥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국내외 다큐멘터리 창작자, 제작 및 투자 배급 관계자, 해외 다큐멘터리 전문가 등이 참가한 다큐멘터리 플랫폼 행사다. 이곳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크고 작은 지원금이나 현물 지원을 확보하게 된다. 제작비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 창작자 입장에서는 오아시스 같은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인천다큐멘터리 포트가 갑자기 폐지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문제는 그 폐지 과정이 여러모로 상식에 맞지 않고 몇 가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1일 인천다큐멘터리 포트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안녕하십니까, 인천다큐멘터리 포트 사무국입니다.
인천다큐멘터리 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는 2014년 출범해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내에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행사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각지의 다큐멘터리 창작자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으며, 인천다큐포트를 통해 발굴되고 제작되어 좋은 성과를 낸 작품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큐멘터리’의 역할과 가치에 공감하고 손 내밀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작년 제5회 행사를 끝으로 인천영상위원회는 더 이상 인천다큐포트를 개최하지 않습니다. 집행위원회와 사무국은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이와 관련해 치열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매우 안타깝게도 인천영상위원회가 인천다큐포트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선 인천다큐포트가 다큐멘터리 산업 관계자들에 특화된 사업으로서, 좋은 평가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상위원회 본연의 목적 사업에 부합하는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영상위원회가 영상산업 발전과 건강한 영상 생태계 조성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 사업에 일정 규모 이상의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 다양한 문제제기들이 있어 왔습니다. 나아가 영상위원회 차원에서 상반기의 디아스포라영화제와 하반기의 인천다큐포트를 연이어 치르기에 사무국의 피로 누적이 상당하다는 내부 진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인천다큐포트의 총괄 디렉터를 맡아왔던 사무국장이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개인적 사정까지 겹치면서, 인천다큐포트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프로젝트마켓으로서 인천다큐포트가 그 자체로서 얼마나 더 발전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판단과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여 인천영상위원회는, 안팎으로 많은 기대와 지지가 있고 그에 따른 막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2018년 5회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인천다큐포트를 개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인천다큐포트의 중단 결정을 알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수많은 분들에게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결정이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을 돕고 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기꺼이 품 내어주신 모든 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릴 것임은 분명합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충심으로 깊고 긴 고민이 있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천에서 멈춘다 하더라도 다큐멘터리 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들은 더 커지고 다양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천다큐포트에 보내주신 관심과 애정을 새롭게 생겨나는 사업들에도 이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 동안 제작은 물론 후반작업과 사운드, 음악, 홍보 마케팅 및 번역, 극장, 펀드와 투자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큐멘터리 산업 전 분야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예산을 세워주셨던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인천시에도 역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가장 고생하시고 수고한 분들이지요. 1회부터 5회까지 인천다큐포트의 준비와 진행애서 뒷일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신 그간의 스태프분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천영상위원회는 앞으로 더 활기차고 멋진 사업으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인천다큐멘터리 포트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가을, 수많은 스텝의 노력과 국내외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의 참가로 성황리에 이루어진 행사였다. 그런데 인천다큐 포트를 폐지하는 이유들 중 '인천다큐포트의 총괄 디렉터를 맡아왔던 사무국장이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개인적 사정까지 겹치면서'라는 부분이 있다. 인천다큐멘터리 포트의 총괄 디렉터는 인천영상위원회의 사무국장인 강석필 씨였다.
인천다큐멘터리 포트에는 엄연히 집행위원회가 있고 행사 폐지라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집행위원들의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집행위원이었던 사람들(김동원, 김옥영, 김원중, 김유열, 박봉남, 조지훈)이 6월 10일 올린 연명서( ☞ 바로가기 클릭)를 보면 2018년 12월 11일 인천영상위원회측이 인천 다큐포트의 폐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한다. 이 글에 따르면 다큐포트 집행위원회의 회의석상에서는 ‘강석필 국장이 건강 문제로 인천영상위를 그만두게 되어 인천다큐포트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제시되었으며, 내부 직원들과의 논의에서의 주요쟁점도 '강석필 국장 없이 스태프만으로 행사를 지속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연명서에서도 분명히 지적하듯 총괄 디렉터의 사임으로 그 행사를 지속하지 못한다면, 그 행사가 공공의 사업이라 불릴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행사에 참가했던 인원의 개인 사정이 생길 경우, 그가 맡았던 직의 신규인원을 뽑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어느 국제영화제가 수석프로그래머 한 명 사퇴했다고 폐지로 이어지는가? 인천 다큐 포트는 개인 사업체가 꾸리는 장사판이 아니라 수많은 다큐 관계자와 참가하고 언론이 주목했던 공공적 행사였다.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을 비롯한 국내외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은 행사에 참가하라면 참가하고 없어졌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며 다른 창구를 찾아봐야 하는 보릿자루들인가?
또한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는 역시 연명서에서 지적하듯 인천다큐포트의 폐지를 알리는 영문 공지에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ut never to be too much disappointed please. Even though we stop here, another good arena is coming. It’ll be probably even bigger. It is DMZ Docs Industry. They will launch a new forum which is so comprehensive that all the programs that DPI has done will be included in the scheme. We feel a bit relieved with this. You will be able to find out good chances there to realize your dreams.'
“인천다큐포트는 없어지지만 또 다른 행사, 즉 DMZ다큐영화제의 인더스트리가 아마도 더 크게 될 것이므로 우리(인천영상위원회)는 안심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은) 당신의 꿈은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DMZ다큐영화제를 홍보하는 듯한 멘트는 왜 들어간 것일까?
인천영상위윈회는 2017년과 2018년 두 해에 걸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제다큐멘터리 지원사업 국고보조사업자 공모에 선정되어 행사 비용의 일정 부분을 국비 보조받았다. 그 심사 결과는 심사위원 명단도 없고 심사평도 없는 단 한 줄씩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2019년에는 그 지원금 수혜처로 선정된 기관이 강석필 씨의 부인 홍형숙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사실이다. DMZ다큐영화제는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문광부,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후원을 받아 열리는 행사로 올해로 11회째를 맞고 있다. 지난해 배우 조재현이 맡고 있다가 공석이 된 집행위원장 자리에 홍형숙 감독이 들어간 후 급하게 10회 행사를 치렀었다.
아래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알림을 보면(☞ 바로가기 클릭) 거액의 세금이 지원되는 공모사업인데 심사위원 명단이나 심사평 하나 없이 단 한 줄의 심사결과만 있다. 이에 의구심이 생겨 이에 대해 정보공개신청을 했더니 공개시한 맨 마지막 날에 한 장짜리 서류가 공개되었다.
공개된 정보에 나와 있듯 2017년과 2018년에는 인천영상위원회가 단독으로 신청하여 문광부의 지원을 받았다. 여기에 금액의 규모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인천시에서는 국가지원을 받은 것에 대해 똑같은 액수를 인천영상위원회에 지원했다. 모 기사에 나온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바로가기 클릭) 제3회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전체 예산은 10억원 가량인데 문화부와 미래부 쪽에서 각각 2억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금년 2019년에는 인천영상위원회는 공모에 신청조차 하지 않았고 대신 DMZ다큐영화제가 단독으로 신청하여 선정되었다.
인천다큐멘터리 포트 폐지를 다룬 기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바로가기 클릭)
"국내 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인천다큐포트의 중단이 아쉽지만 이미 올해 초부터 (중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DMZ영화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한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는데, DMZ영화제가 이를 잘 흡수해서 다큐멘터리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석필 씨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열리는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집행위원장 홍형숙 감독이 제작자로 피칭했던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감독이기도 하다.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 씨는 원래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단체 '서울영상집단'에서 함께 활동했었다. 홍형숙 감독은 최근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의 다큐멘터리 부문의 회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부부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한국의 영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해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인천다큐멘터리의 급작스럽고 일방적인 폐지와 DMZ국제다큐영화제의 규모 확대가 몇몇 사람들만의 판단과 합의에 의해 연결된 것이라면 이는 집중된 권력의 사유화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다수의 창작자들은 곤궁에 빠진 상태에서도 작품 제작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들인데, 한 줌의 권력을 갖게 된 소수가 그것을 남용하면서 배임하는 것은 윤리의식의 마비라고도 할 수 있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급작스런 폐지는 여러 모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급작스러운 폐지는 다큐멘터리 지형 외부에서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공공적 성격을 가졌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의 다큐멘터리도 관객과 만나게 되면 미시적 역사의 기록물로서 공공성을 갖게 된다. 1895년 영화가 만들어진 이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늘 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소금 역할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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