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북한식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신봉자인가? <동아일보>의 동아닷컴에 연재되는 '김순덕의 도발'이 조국 법무부장관을 다룬 글('사회주의 조국이 그린 한반도의 새 질서')은 그런 것처럼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그 글이 조국을 비판하며 나와 이제는 고인이 된 제자 방인혁 박사의 논문을 인용했다고 지인이 알려줘 읽었다.
문제의 글은 사노맹 때와 생각이 바뀌었냐는 청문회 질문에 대해 자신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답에 주목하여 그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자'라고 보고, 그가 끼칠 사회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글은 조 장관의 발언을 사노맹 이전, 즉 그가 20대 중반인 30년 전에 쓴 한 논문과 연결시켜 분석하고 있다.
김 위원은 특히 조 장관을 북한식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연결시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나와 북한 전문가인 방인혁 박사의 논문에서 인용한 북한사전에 나온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의를 재인용하고 있다.
나 역시 자신이 아직 사회주의자라는 조 장관의 발언에 놀랐다. 우선 그가 아직도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것에 놀랐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문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그의 용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또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나는 특권적인 자식들의 스펙 및 입시관리 등 사회주의, 아니 제대로 된 자유주의와도 거리가 먼, 그의 '일부' 삶의 방식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김순덕 논설위원의 비판, 특히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조 장관의 주장을 나와 방 박사의 논문에 인용한 북한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론과 연결시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이 글을 쓴다.
지면상 30년 전의 논문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면, 문제가 된 조 장관의 발언은 둘이다. 하나는 자신이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이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민주주의 헌법 하에서, 대한민국 헌법 틀 하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두 발언이 '김순덕의 도발'이 시사하듯이 조 장관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자이고 "북한식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는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자신이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조 장관의 첫 발언에 의하면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합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이지 어떻게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되는가?
그러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는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의 다양한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사회주의로 보완하는 사상으로 존 스튜어트 밀, 케인즈로 이어져 현대에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보비오와 미국 정치학의 대가였던 로버트 달의 후기 사상을 말한다.
특히 미국은 권력이 다양하게 분산된 다원주의 사회라는 '다원주의론'을 통해 미국이 민주사회라는 것을 나름대로 입증해 미국 주류학계의 각광을 받았던 로버트 달은, 그가 자본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은 뒤 경제적 민주주의론 등을 통해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로 진화했다.
둘째, 우리 민주주의 헌법 하에서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조 장관의 발언은 어떠한가? 김 논설위원은 조장관이 '민주주의 헌법'이라고 했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라고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라고 경고하지만, 조 장관이 이미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이상 이는 별 의미 없는 시비다.
우리 헌법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박근혜의 선거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도 헌법하에서 ‘사회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려한 것이다. 조장관이 “우리 헌법을 혁파하고 사회주의사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모를까 “우리 민주주의 헌법하에서, 대한민국 헌법틀하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떻게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그것도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 가자는 주장인가?
아마도 조 장관의 발언 중 "우리 민주주의 헌법"에서 '민주주의'를 빼내 사회주의와 조합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조합하면 떠올라야 하는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이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다. 특히 그가 사회주의자이며 동시에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것과 연결하면 그러하다. 아니 조 장관이 자유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 그의 사상은 민주적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회민주주의는 북유럽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사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처럼 명확한 사상은 아니지만, 3년 전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의원이, 그리고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르미 코빈이 주장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서 심상정 대표에 도전한 양경규 전 노동정치연대대표가 들고 나와 관심을 끈 바 있다. 특히 지난해 미국중간선거에서 하버드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소년의 39%가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와 1대 99의 양극화에 분노한 대중이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사상이다.
김순덕 위원이 인용한 조 장관의 글 중에서 조 장관을 북한식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관련시킬 수 있는 부분은 딱 한가지이다. 30년 전 쓴 글에서 우리의 헌법이 "북한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 장관이 아직도 이 같은 생각은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이 주장 자체도 북한식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통일은 어차피 남북한의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다. 이는 북한이 아니라 엣 소련·동구와 '정통좌파'가 주장한 사상이지만, 이제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정확히 이야기해, 거의 없다. 북한도 주체사상 이후 이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도 이와 거리가 멀다. 기초 생필품도 배급하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사회주의이며, 세습까지 하는 나라가 무슨 민주주의인가?
조국 장관에 대해 여러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를 선언한 그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특히 북한식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연결시켜 비판하는 것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흥분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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