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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범의 양심을 되찾은 푸순의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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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범의 양심을 되찾은 푸순의 용서

[프레시안 books]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만주국에서 군사 고문을 지낸 오즈키 이시로는 전후 귀국해 후쿠시마현의 산지를 수년 간 걸어 다녔다. 주민들에게 꾸준히 말했다. 일본에 끌려와 숨진 중국인 유골을 찾아 속죄하고 싶으니 그들이 어디 묻혔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유골을 찾아내면 자택의 제단에 모셨다. 그의 이 같은 모습은 1965년 4월 NHK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매몰된 전후>에 기록됐다.

이시로는 전범이었다. 이시로와 같은 전범 상당수가 일제 패망 후 중국에 장기 억류됐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상당수 패잔병이 중국 전선에서 전쟁 범죄에 가담했다. 그들 중에는 죄없는 민간인의 목을 일본도로 재미 삼아 잘라낸 이들이 있었다. 중국인과 조선인 민간인의 목숨을 끔찍한 생체 실험으로 거둔 이들도 있었다. 노동자 강제 동원에 가담한 이, 성노예 피해자의 인권을 빼앗은 이도 있었다. 오즈키 이치로를 비롯한 숱한 이들이 전후 랴오닝성 푸순(撫順)전범관리소에 수용됐다.

중국은 새 정부가 만들어진 후인 1956년, 수감 중인 일본인 전쟁범죄자 1000여 명의 처우를 정했다. 45명을 기소해 특별군사법정에 회부하고 나머지는 전부 기소 면제로 석방했다. 사형수는 한 명도 없었다. 유죄가 선고된 이들이 받은 형벌은 금고 8년에서 20년까지였다.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패전 11년 만에 귀국, 고향 땅을 밟았다.

믿기 힘들 정도로 관대한 전범 처리를 책임진 이는 저우언라이 총리였다. 그는 곧바로 엄명을 내렸다. "전범의 인격을 존중하라." "구타하거나 욕하지 마라." "일본인의 습관을 존중하라."고 했다. 실무진이 곧바로 반발했다. 그대로는 인민의 분노를 다스릴 수 없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저우 총리는 꿈쩍하지 않았다. '무기를 놓고 항복한 적은 개조할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기조 아래에 전범 '개조 정책'이 시행됐다. 전범관리소 직원들이 거친 수수밥으로 하루 두 끼를 떼울 때, 전범들은 쌀밥 세 끼를 받았다. 시베리아 수용소와는 처우 수준이 달랐다. 대신 공개 자아 비판의 장이 열렸다. 몇몇 전범이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황국신민교육에 물든 이들 몇몇은 이 정신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전범들이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여서 토론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전범들이 수용된 감방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집단 경험이 훗날 '중귀련(중국귀환자연락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푸순전범관리소의 실무 주역 중에는 김원, 오호연, 최인걸 등 조선족 3인도 있었다. 푸순전범관리소 소장을 지내기도 한 김원은 훗날 "전범 개조가 나 스스로를 개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고향으로 귀국한 이들은 자신의 전쟁 범죄를 진지하게 반성하고 일제 침략전쟁의 실상을 죽을 때까지 알리고자 했다. 과거를 잊으려고만 하던 일본 사회에 이들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이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하고, "중국공산당의 세뇌를 받은 이"로 치부됐다. 공안이 달라붙어 이들의 활동을 감시했다. 제대로 취업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인 생계조차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았다. 평생을 속죄하지 않는 한, 여생의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숱한 전쟁범죄가 새롭게 밝혀졌다. 그 중에는 한국과 인연이 닿은 활동도 있다.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 나와 일본군 '위안소'의 여성 성노예 착취 운영을 폭로한 두 명의 증인은 '중귀련' 회원이었다. 중귀련, 즉 중국귀환자연락회는 여러 책자 발간, 공개 강연을 통해 일제의 전쟁범죄를 생생히 증언했다. 중귀련은 1988년 푸순전범관리소 터에 사죄비를 세워 영구히 자신들의 악행을 증언하기도 했다. 1997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과거사를 새로 쓰려하자, 중귀련은 곧바로 계간지 <중귀련>을 창간해 이에 대응했다.

전후 50년간 일제의 만행을 살아있는 목소리로 증언하던 중귀련은 회원들의 고령화로 인해 결국 2002년 4월 공식 해체했다. 이를 이어받아 '푸순의 기적을 이어가는 모임'이 구성됐다. 시민단체 활동가, 학자, 언론인, 일반 시민 등이 참여한 이 모임은 푸순전범관리소에 주목했다. 어떻게 그곳에서 천황제 파시즘에 물들어 인간성을 잃었던 전범들이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했는지를 연구한 모임은 그 과정을 '기적'으로 평가했다. 푸순전범관리소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김효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푸순전범관리소의 그 '기적'을 정리한 책이다. <한겨레> 대기자, 진실과 정의 포럼 공동대표를 지낸 저자는 푸순전범관리소가 어떻게 인간성과 인권 회복의 길을 열었는지를 주목하고, 정리했다.

책은 유례없다고 할 만한 중국의 전범 처리 방식이 어떻게 전범에게 반성의 길을 열었는지 주목하고, 이를 통해 일제 침략전쟁의 실상을 고발하며, 전후 중귀련 회원들이 어떤 고난의 길을 걸으며 반전과 평화의 활동을 해나갔는지를 기록했다. 한국이 익숙한 주제이지만, 여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생생히 담았다.

▲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김효순 지음) ⓒ서해문집

이대희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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