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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구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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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구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할 때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본래 면목은 화장을 지운 후에야 알 수 있다

"허~ 기가 막히네."

인터넷 검색을 열심히 하던 아내가 한숨을 쉬며 한 마디를 합니다. 이미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마스크 가격이 오르고 배송이 원활치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직접 접하니 실감이 난 것이지요. 미세먼지 때문에 구비해 놓은 것이 있긴 하지만, 아이의 학교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니 준비하려고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 날 오후에 서점에 갔다가, 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 납득할 만한 값을 치루고 몇 장 구입 했습니다. 그 날, 거리에는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요.

중국의 우한 지역은 본래 여름에 덥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확진자에 관한 정보 덕분에 다른 뉴스들, 예를 들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같은 심각한 기사들마저 가려지는 상황입니다. 저녁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을 공포와 의심과 강박으로 몰고 가는 시절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놓쳤던 많은 중요한 사실들로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도시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전염병이란 문제에 시달려 왔습니다. 적은 인구가 흩어져 살던 수렵채취 시기에는 한 집단이 감염되어도 거기서 더는 전염병이 확산하지 않을 확률이 컸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긴 밀집화한 생활양식과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도리어 전염병의 발생과 유행에 취약해졌습니다. 이것을 그간 인류는 발전하는 위생과 좋은 영양, 그리고 의학의 발달로 메꿔왔지요.

그런데 사스, 메르스, 그리고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의 전염병은 이제 국가단위의 통제범위를 넘어서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국가의 경계를 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정보의 유통이 초단위로 이루어지고, 세계의 모든 지역이 서로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한 현실에서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사건은 인류의 문제가 될 확률이 있고,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지역의 비극적 사건이 이제 더는 강 건너 불구경이나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보여 준 민낯은 부끄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서 자신은 과거와 똑같은 가격으로 넘기는데 유통에서 몇 배가 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심하고 조금 억울한 심정도 든다는 마스크 생산업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가 마스크를 검색하다 기 막혀 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김장 채소와 과일 가격이 주기적으로 폭등하던 기억도 났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것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장사의 전부는 아니야. 돈을 벌 목적으로 장사하는 상인은 오히려 큰돈을 벌기 힘들어. 물건에 적당한 값을 붙이지 않고 무조건 높은 값을 받으려 들기 때문이야. 제값에 미치지 못하는 물건을 산 사람은 절대 그 객주를 다시 찾지 않겠지. 진정한 상인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야. 장사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김만덕>(공지희 글, 장차현실 그림, 비룡소)

마스크 대란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를 겪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양인 차별은 과연 우리와 미래세대가 살게 될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의문을 품게 합니다. 어려서는 맹자의 성선설을 믿다가 나이가 들수록 순자의 성악설에 더 공감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빠른 상황정리에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종류의 문제는 더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우울한 예감이 듭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미세플라스틱, 미세먼지, 후쿠시마의 오염수, 핵발전소, 불평등, 그리고 전염병과 같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언제고 우리의 안전한 생존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의 일로 미뤄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요.

체질의학을 전문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지만 가끔 환자들이 "저는 무슨 인(人)"인가요 하고 물으면, 농반진반으로 웃으며 "환자분은 지구인이세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럼 환자는 약간 벙한 표정을 짓지요. 물론 그 후에는 제가 아는 한에서 설명을 합니다.

지금, 그리고 다가 올 시대에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무슨 체질인, 어떤 나라의 국민이라는 인식보다 '나는 지구인'이라는 자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과거의 선지자들은 깊은 통찰을 통해 우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현대인들은 물질문명 덕에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더는 누군가의 불행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어떤 시에서처럼 외계인이 침공하지 않는 한 전 인류가 지구인이라는 자각은 크게 확산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중병에 걸린 환자가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죽음으로 가는 것처럼, 인류도 그렇게 사라지는 생물종이 될 확률이 커 보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귀한 눈이 내리는 데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루 내 마스크를 쓰고 진료를 하고 퇴근길에도 벗지 못하는 현실 또한 가슴을 무겁게 하는 입춘일 저녁입니다.

▲ 우한에서 일어난 일이 전 지구의 일이 되었습니다. 이 사태에 대처하는 우리의 민낯을 똑바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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