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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살까?"

[긴급기고]정부여당의 '상류층 경기부양' 무더기 대책을 보고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산다?**

***2백년전에 보수경제학자 맬더스가 이미 했던 말**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산다"는 말을 요즘 자주 들을 수 있다. "부자들이 돈을 안 쓰는 나라는 망한다"는 좀더 자극적인 말이 들리기도 한다. 경제 부총리까지 나서서,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국민들이 부자들의 돈 쓰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고 있다면서, 부자들의 소비를 늘이기 위해 위화감을 거둬줄 것을 사회에 호소한 바 있다. 열린 우리당과 재정경제부는 "부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풀린다"는 판단으로 골프용품 등에 부가되는 특별소비세를 추가로 폐지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사회의 총소비가 늘어나면 생산이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단순논리를 자주 들어왔던 터라, 이 주장의 타당성은 너무도 당연하여 반박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이미 2백년 전에, 그것도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보수적인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맬더스(T. Malthus)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일깨워 준다면 이 주장의 신빙성에 한번쯤은 의심을 가져봄직할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맬더스는 '토지귀족으로 대표되는 부자들의 이익을 경제학의 표현으로 옹호'한 보수 경제학자였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영국의 개혁사상을 반대했으며 부를 생산하는 이들의 빈궁을 정당화하고 노동의 착취자를 변호했으며 사회의 약자들에 대해서는 "사람이 가난한 것은 원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며 무자비하게 경멸했다. 그런 그가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산다"고 주장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사실 이 주장은 그 동안 부자들의 이해를 옹호하는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경제가 어렵고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상황 표현**

다분히 이데올로기 측면이 강한 이러한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자주 접한다는 것은 현재의 경제상황과 관련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우울한 사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의 총소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이 작성하여 공표하는 ‘주요 경제지표’에 따르면 최종소비지출 증가율이 2003년 2.4분기부터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가 부족하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생산된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이 이를 소화할만한 구매력의 부족으로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다는 얘기다. 또한 시장에서 팔려나가기를 대기하고 있는 노동력 상품도 팔려나가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의 경제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돈을 쓸 사람이 부자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우리 경제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아닌 것이다. 최근 발간된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불평등 정도)가 2000년에 0.358로 OECD국가 가운데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 OECD평균이 0.272이니까 평균보다 높아도 한창 높은 불평등도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에는 0.298 이었으니까 위기 이후 불평등도가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2001~2003년에 사상 최악의 아파트값 폭등이 있었던만큼 이 불평등도는 더욱 커졌을 게 분명하다.

***부자의 소비가 정말로 경제를 살릴 수 있나?**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부자가 돈을 쓰면 정말 경제가 살아날까' 하는 데 있다. '소비가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자들의 소비’가 그렇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소비의 주체가 누구인가, 소비의 대상의 무엇인가에 따라 경제적 효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맬더스의 논적이자 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리카아도(D. Ricardo)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인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의 서문에서 "경제학의 주요 문제는 지대, 임금, 이윤 등 분배 문제를 규제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실제로 경제학은 소득형태별 분배가 어떻게 결정되고 어떤 상태일 때 가장 높은 성장을 달성할 것인가를 보이는 것을 중요한 연구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정치라는 것도 세 가지 소득에 따른 계급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부자들이란 다름 아닌 지대(임대소득, 이자)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사회의 총 소득 가운데 임대소득에 대한 분배율이 달라졌을 때, 환언하면 노동자의 임금이나 기업의 이윤 가운데서 부담해야 할 임대료나 이자 지급비율이 달라졌을 때, 장기적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성장 잠재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는 경제학의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비생산적 계급(지대소득자)의 옹호자'였던 맬더스는 "비생산적인 소비가 생산을 자극하여 장기적으로 부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과잉생산(공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지대소득자의 소비만이 이의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공황 없이 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대소득자들이 높은 비율의 분배를 받아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장에 남아도는 상품들을 부자들이 이것저것 골고루 소비한다면 아마 맬더스의 주장이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스미드(A. Smith)가 <국부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자들이 쌀을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은 "위의 크기에 의해 제한 받는다". 남아도는 쌀을 부자라고 해도 모두 먹어치울 수는 없는 일이다. 가전제품이 남아돈다고 해도 이를 다 소비할 수도 없다. TV를 열대씩 포개놓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부자들의 소비품목은 특정한 상품들로 모아지게 된다. 그런 상품을 경제학에서는 ‘사치재’라 부른다. 이제 논점은 ‘상품일반’의 소비가 아니라 사치재의 소비가 국부의 증진과 성장잠재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맬더스는 필시 의도적으로 상품일반과 사치재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이의 구분은 경제성장을 논하는 데서 결정적이다.

가령 부자들이 쌀이나 가전제품을 소비하는 것과 ‘삼천궁녀의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 같은 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남아도는 재원을 공장을 짓는 데 사용하는 것과, 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성장 잠재력에 같은 영향을 끼친다고도 볼 수 없다. 물론 단기적인 고용 측면에서는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스미드의 지적처럼 "비생산적 노동을 부양시키는 데 부를 사용하는 것은 국부의 증진이 아니라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같은 말이지만 사치재의 소비는 성장잠재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떨어뜨릴 뿐이다.

***대다수 서민들의 소비확대만이 진정한 경제위기해법**

부자들의 소비는 사치재에 한정되어 있어서 성장에 기여할 수 없다. 오직 대다수 서민들의 소비확대만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얼마 전 “상류층은 내수 진작에 별 도움이 안 되며, 내수 견인을 위해서는 오히려 중산층을 건전하게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여당은 이 수석의 지적과는 정반대 길을 가고 있다.

지금 위기의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성장잠재력을 유지하면서도 저소득층의 소비기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은 소비능력 증대에 대한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감세는 상속세나 소득세 또는 사치성 상품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깎아주는 형태가 될 터인데, 이같은 감세는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복지 지출은 그만큼 더 줄어들게 되어 결국 빈부격차를 더 커지게 할 뿐이다. 감세가 부자들의 소비능력을 키워 줄지는 모르지만 경제 전체의 소비능력은 더욱 제약할 것이다.

오히려 부자한테서 세금을 확실히 거두어 이 재원을 바탕으로 공적 이전지출을 확대하여 소득분배를 개선시키고, 더 나아가 저소득층의 소비를 늘려주는 것이 경제 회복을 꾀하는 더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3년간 아파트값이 배이상 뛰는 전국적 투기가 발생했음에도 막대한 투기수익을 본 이들에게 정부가 거둔 세금은 투기이전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대목은 더없이 개탄스런 현실이다. 또한 이런 경제학적 의미에서 볼 때 부유세는 경제전체의 소비능력을 높이고 현재의 경제침체를 벗어나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고 소비를 늘이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무엇보다 자산소득으로 대표되는 지대 분배분을 낮추는 것이다. 지대야말로 임금과 이윤(투자재원)을 잠식하는 주범이다. 부동산 거품을 확실히 빼서 지대를 낮추어야만이 투자가 늘어나고 실질임금도 유지되어 소비도 늘어날 수 있다. 임금 분배몫과 이윤 분배 몫을 높이고 지대 분배몫을 낮추는 것이 경제문제 해결의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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