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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을 돕다 비참하게 죽은 '생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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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을 돕다 비참하게 죽은 '생쥐' 이사

[표변하는 삶] 이사

하지만 생쥐야. 앞날을 예측해 봐야 소용없는 건
너만이 아니란다.
생쥐와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
일이 제멋대로 어그러져.
고대했던 기쁨은 고사하고
슬픔과 고통만 맛보는 일이 허다하잖니!

스코틀랜드 농민 시인 로버트 번스의 <생쥐에게>(To a Mouse, 1785)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쥐의 해인 경자년 들어서 크게 유행한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헝클어지자 떠올린 시다. 올해 들어 오직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인 것 같다.

로버트 번스가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어느 날 밭을 갈다가 잘못해서 쥐의 집을 갈아엎어 버린 일이었다. 아무런 까닭 없이 살던 집이 별안간 무너져 내려버린 가엾은 쥐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도 통제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좌우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는 탄식했다. 존 스타인벡은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유명한 <생쥐와 인간>이란 소설을 썼다고 한다.
생쥐철학

생쥐와 인간의 유사성에 주목한 또 다른 이가 있다.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나라 승상 이사(李斯)다. 그는 젊은 시절 지방의 한 군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면서 뒷간 쥐와 창고 쥐의 커다란 차이를 목도했다. 관청 뒷간의 쥐들은 고작 더러운 것을 먹다가도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다가가면 놀라 달아나기 일쑤인데, 창고 쥐들은 쌓아 놓은 곡식 낟알을 느긋하게 먹고 큰 공간에 살면서 사람이나 개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탄식하며 읊조렸다.

"사람이 현명하다거나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로구나!"

인간도 어느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한 마리 생쥐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사는 '창고 쥐'가 되기 위해 순자(荀子)를 찾아가 제왕지술(통치술)을 배운다. 학업을 마친 그는 '기회를 잡으면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제후에게 유세해서 출세할 시기라며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서쪽 진나라로 떠난다. 조국 초나라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못 되고, (진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는 모두 약소국이어서 공을 세울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난이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사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치욕은 비천한 것이며, 가장 깊은 슬픔은 빈궁한 것이었다. 그에게 오랜 세월 비천한 지위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을 비난하고 이익을 미워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선비라는 존재가 할 짓이 아니었다.

성공의 길

진나라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때 마침 장양왕은 죽고 13세 소년 영정(籝政, 진시황의 이름)이 요행히 즉위한다. 그는 먼저 여불위의 식객으로 들어간다. 인물은 인물인지라 여불위가 알아보고 추천한 덕에 그는 곧장 궁중의 시종관이 된다. 그리고 몽매에도 그리던 진왕(훗날의 진시황)에게 유세할 기회를 잡는다.

"진나라에 복종하는 모양새를 보면 제후국들은 마치 진나라의 일개 군현과도 같습니다. 진나라의 강성함과 대왕의 현명함을 합치면 부뚜막의 먼지를 쓸어버리는 것처럼 쉽사리 제후들을 멸망시키고 제업을 이루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만세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입니다."

그는 곧장 장사(長史,비서장)에 제수되었다. 그는 다시 진왕에게 제후국의 명망가들 중에서 회유가 가능한 인사에게는 후한 선물을 주어 결탁하고, 회유가 통하지 않는 인사는 날카로운 칼로 찔러 죽여 군신 사이를 이간하는 계략을 진언하였다. 진시황은 그의 계략을 따라 조치하고 이어서 뛰어난 장수를 보내 토벌하였다. 이사는 객경(특별고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정위(최고 사법장관)에 지위에 올랐다.

이로부터 20여 년 뒤,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여 진왕은 진시황이 되었으며, 이사는 마침내 승상이 되었다. 중간에 한나라에서 파견한 간첩이 발각되는 바람에 축객령이 내려지는 곡절이 있었지만 출중한 지혜(축객령을 거두어 달라는 유명한 문장을 올림)로 이를 돌파했다. 이사는 10년에 달하는 통일 전쟁은 물론이고 천하를 통일한 이후 황제제도와 삼공구경제(三公九卿制)라는 관료제, 그리고 군현제를 제정했다. 아울러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분서갱유를 통해 사상을 통일하는 등 진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모두 바쳤다.

그의 딸들은 공자에게, 아들들은 공주에게 시집 장가갔으며 집안 잔치에 문무백관이 모두 와 축하하고, 집 앞에 ‘파킹’한 수레가 천 대가 넘었다. 초나라 상채의 평민에 지나지 않았던 이사는 어느덧 표변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부귀가 극한 달한 이사는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몰락의 길

진시황의 죽음이 하나의 전기가 된다. 진시황은 자신의 지배권을 다지기 위해 평생 다섯 번이나 순행을 다녔는데 사구란 곳에서 예기치 않게 최후를 맞이했다. 진시황은 제위를 맏아들인 부소에게 물려주는 조서를 남겼으나, 그는 몽염 장군을 감독하기 위해 상군에 가 있었고 총애한 막내아들만이 곁에 있었다. 진시황의 죽음이 만약 함양에 있는 여러 공자(20여 명)들에게 알려지면 난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냐하면 황제는 외지에서 죽었고 미리 태자를 확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는 황제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발상을 하지 않았는데 환관 조고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호해와 이사를 설득하여 유조(遺詔)를 조작한다. 조고는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걱정한 이사의 마음을 공략하여 자신과 친한 막내아들 호해를 황제로 앉힌다.

이제부터 <이사열전>은 '조고열전'이 되어버렸다. 이사의 삶의 주도권이 조고에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사는 분투 노력하여 결국 '황궁의 쥐'가 되었지만 이제 조고라는 ‘고양이’에게 쫒기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게 됐다. 진시황이 죽은 이후 전국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났고 1년 이내에 전국에서 과거 육국이 다시 세워졌다.

조고가 앉힌 호해는 정말 무도하고 '바보'(바보라는 뜻의 일본말 ‘바까’는 한자로 지록위마의 馬鹿이다)같은 황제였다. 이사는 이런 황제를 바로 잡기는커녕, 벼슬과 봉록을 소중하게 여긴 나머지 황제에 영합하여 백성을 더욱 옥죌 것을 주장하는 독책(督責, 죄를 감찰하고 징벌을 가함)의 서를 올린다. 조밀한 논리로 축객령을 거둘 것을 주장한 '간축객서(諫逐客書)'가 그의 일생의 상승기를 대표하는 문장이라면 '독책의 서'는 이사 같이 총명한 사람도 얼마나 심하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증명한 글이라고 하겠다.

무능한 이세 황제는 이 계책을 받아들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리하여 길에 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형벌을 받은 사람이고 형벌을 받아 죽는 자들이 시장 바닥에 가득했다. 뒤늦게 이사는 조고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황제의 의심을 받아 거꾸로 시장에서 요참을 당해 죽었다. 다시 한 번 고향 상채의 동쪽 문 밖에서 둘째 아들과 누렁이를 끌고 가 토끼사냥을 하지 못한 채...

이사의 공과

이사는 초나라의 일개 평민으로 태어나서 진나라로 건너가서 승상의 지위에 올라 진시황이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제국의 기틀을 놓았으니 그의 커다란 공을 부정할 수 없다. 사마천이 평가한 것처럼 그는 주공이나 소공과 같은 위대한 이들과 어깨를 겨룰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벼슬과 봉록이라는) 욕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한 마리 '생쥐'였다. 그렇기 때문에 승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간파한 조고라는 '고양이'에게 쫒기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자신과 일족, 더 나아가서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

사마천은 <이사열전>의 상당 부분을 조고의 일을 기록함으로써 이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사열전>에서는 조고의 최후만을 언급하고 출생은 <몽염열전>에서 다룸으로써 조고를 역사적으로 요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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