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란은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지, 이란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란 고위 인사로는 1979년 이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도 "미국이 핵 문제로 이란을 공격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란의 핵문제를 둘러싼 분쟁에 대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등 조지 W. 부시 행정부 안팎의 강경파 진영에서는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을 흘리는 등 '안보 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얼마 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이라크 내부의 종교적,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브리핑을 해 주목받은 중동문제 전문가 발리 나스르는 중동의 <알자리라>와 인터뷰를 갖고, 왜 미국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해서는 안 되는지, 설혹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했다.
나스르는 미 캘리포니아 해군대학원(Naval Postgraduate School In California)에서 중동·남아시아 정치학 교수로 있으며, 최근 발간된 <시아파의 부활>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 전문이다.(원문보기) <편집자>
미국의 후세인 제거가 이란을 키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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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그리고 요르단은 지속적으로 시아파의 부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해 왔다. 종파 간(시아와 수니) 전쟁이 '새로운' 중동을 휩쓸 것인가?
"각각의 국가들은 시아파의 부활을 우려할 것으로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수니파로부터 시아파로의 권력이양 초기단계에 있는 이라크의 상황이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매우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는 매우 오랫 동안 정치적 유혈사태가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특히 1991년 이후 이라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종파간 분열이 심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다룰 준비를 하지 못해 상황이 더 악화됐다.
여기에 나름대로 명분을 갖고 있는 전사들이 외국에서 유입됐다. 그들은 미국을 이라크에서 축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종파간 분쟁을 일으키고, 성지를 파괴함으로써 내전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아파 역시 수니파와 마찬가지로 현재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피하려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이라크에서의 종파간 폭력 사태가 정치적 변화, 민주주의, 개방, 중동지역의 권력 분점 등 모든 논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폭풍 속의 고요'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 도전적 자세의 이란이 이슬람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은 미국의 정책 탓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이런 견해에 동의하는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사담 후세인이 이란에 대한 강력한 방어막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은 극단적으로 반(反)이란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이란의 반목은 이란이 왕정 시대였던 195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미국의 후세인정권 제거로) 이라크에 친이란 정권, 특히 시아파 정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이란이 이라크에 대해 보다 큰 발언권을 가지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미국은 이라크에서 군사적으로 발목이 잡혀 이란을 봉쇄할 여력이 없다. 이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란을 쉽사리 봉쇄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란의 힘이다. 예컨대 이란의 석유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면 석유 가격은 극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조치를 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미국의 여론도 미군의 해외 군사 활동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중동 최강이라는 이스라엘이, 겨우 인구 350만인 레바논의 일개 무장단체에 불과한 헤즈볼라를 격퇴하지 못했고, 13만 미군이 이라크에 붙잡혀 있다. 이란은 운신의 여유가 더 많아졌고, 국제사회와 핵 문제에 대해 '노'라고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국이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이란의 힘은 1990년대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눈 여겨 본 사람들은 없지만,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국제유가도 올라 매우 부유해졌다. 게다가 이란은 인구가 7000만 명이나 되는 나라다.
하타미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란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지표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의 변화에서 군사적 측면, 중동 전체에 대한 이란의 군사적 위상의 변화는 이제서야 주목받고 있다.
이란은 아랍권 민심의 동향을 아주 정확히 읽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평화 정착을 위한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에 아랍의 일반민중들은 좌절과 분노를 느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아랍의 민심은 매우 흉흉해졌다. 이란은 아랍 정권들의 지지를 얻는 데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란은 서구에서는 인기를 잃을 것이 분명하지만 아랍 민중들 사이에서는 커다란 인기를 얻을 것이 분명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홀로코스트에 의문을 던진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 발언은 외교적 측면에서 볼 때는 서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이란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같은 공방은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 앞서 시리아와 레바논의 민중들로부터는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 레바논 사태로 헤즈볼라의 인기는 전례없이 올라갔으며,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무슬림 성직자들이 국제협상 테이블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이란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란이 원하는 것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 이란은 중동의 지역강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남아시아에서 인도 같은 존재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이같은 입장이 수용되고 인정되길 원한다. 핵 문제는 이러한 기대의 한 부분이다.
이란은 미국과 대등하게 마주 앉기를 원하지, 미국의 훈계를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대등한 지위는 협상의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협상의 결과 달성돼야 할 것이다.
특히 레바논 전쟁 이후 이란의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그들의 전반적인 목표가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협상이든 보다 강화된 위치에서 협상에 임겠다는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란은 대화하길 원한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미국 CBS방송의 마이크 월리스와 인터뷰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서한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만을 제기한 이유이며, 얼마 전 부시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토론하자고 제의한 이유다.
물론 그들은 대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서구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미국이 이란과 대화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뭔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대화를 하려면 양측 모두 국내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 자기가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미국은 대화하겠다는 이란의 자세가 그리 진지하다고 보지 않는다. 미국은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해야 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이란이 미국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는 특정한 일들을 중단하는 것이다. 헤즈볼라, 테러에 대한 지원이라든가 이라크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핵프로그램을 종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이란이 처리해준다고 해서 미국과 이란의 전반전인 관계가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이란은 그같은 일들을 처리해준다고 해도, 이란의 어려운 처지는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특유의 거친 표현으로 "우리가 핵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그들은 인권문제를 거론할 것이다. 우리가 인권문제를 양보하면, 그들은 다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은 이란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석유문제에 관한 이해관계 때문에 양측이 관계회복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석유문제 때문에 관계회복이 불가피할지는 단정하기 힘들지만, 압박의 요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석유 문제 때문에 유엔에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란의 석유에 대한 제재가 포함된다면, 유가가 극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란보다는 서구와 일본의 경제에 더 빨리 충격을 미칠 것이다. 석유는 유엔과 미국 모두에게 한계를 지우는 요소다.
두 번째, 이란이 위협적인 대응책으로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방안은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을 공격하거나, 해협을 봉쇄하는 것이다. 이란의 이런 조치는 실제로 이뤄질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유가는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란은 미국의 정책수단을 제한할 정도로 석유시장에 충격을 줄 능력을 갖게 됐다. 석유에 대한 조치가 화해를 이끌어내거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는 수단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의 핵은 임박한 위협 아니다"
- 이란은 도전적인 태도로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라는 유엔결의안이 설정한 마감시한을 무시했는데, 이스라엘이 미국에 앞서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하는가?
두 가지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란은 핵 무기 보유와는 거리가 먼 단계에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이란은 현재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면 우라늄 농축뿐 아니라 많은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이란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려면 핵폭탄 제조 등 다른 많은 기술들을 획득해야 한다.
미국의 정보기관을 포함한 여러 분석들에 따르면 이란이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려면 5~8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제적인 군사공격 같은 것을 해야 할 정도로 임박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측이 거친 말들을 주고 받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지금은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비용은 이득보다 손실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공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공격으로 핵프로그램을 억제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란을 공격하는 데 따른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안보 비용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다."
-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헤게모니를 무력화시킬 묘책은 무엇인가?
"손쉬운 해법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군사적 해결책은 항상 있을 수 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난다고 해도 정권 교체조차 이루지 못할 것이다.
레바논에서 목도했듯이, 군사적 공격은 기존정권을 더욱 안정시킬 뿐이며, 중동의 분노를 초래할 것이다. 이란이 공격을 받으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페르시아만과 중동 전체가 엄청나게 불안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중동 국가들은 이란을 제어할 만큼 군사적인 능력이 없다. 이라크와 이란이 한 때 힘의 균형을 이룬 적이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그런 능력을 제공해주길 바란다.
문제는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머물기 위해 어느 정도 역량을 쏟을 것이냐다. 그러나 아랍국가들, 특히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과 미국에게 가장 좋은 해법은 이란과 대화하고, 이란이 중동의 안정과 질서를 원하도록 유도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란같은 강적을 계속 묶어두려면, 그 존재와 중요성을 인정해주는 보상이 필요하다. 이런 일은 서방세계가 직접 하기보다는, 페르시아만에 있는 아랍국가들이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아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번역=이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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