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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IMF 모범생이라는 건 칭찬 아닌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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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이 IMF 모범생이라는 건 칭찬 아닌 조롱"

[기고] IMF와 세계은행의 개혁운동, 한국도 동참해야

지난 5월 폴 울포위츠가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세계은행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금융기관들(IFIs)의 역할에 대한 논란과 이들 기관의 고위직 선출 방식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뉴욕타임스>는 IMF와 세계은행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를 함께 거론하면서 이들 기관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어 5월 28일 <파이낸셜타임스>도 "세계은행 총재를 투명하게 선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로버트 죌릭 전 미국 국무부 차관을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1944년 미국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국제연합(UN) 국제회의의 협정문을 기초로 이듬해인 1945년 4월과 12월에 각각 설립됐다. 이들 기관이 설립된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금융 시스템을 재건하고 안정된 통화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브레턴우즈 기관'들이, 애초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고위직 인사 임명 관행을 무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강대국의 기관투자가 집단과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IMF 처방은 '약'이었나 '독'이었나?
  
  탈냉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쏟아지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동아시아 외환위기였다. IMF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IMF가 이 외환위기를 치유한답시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강요했던 '구조조정' 정책과 '안정화' 정책에 놓여 있었다.
  
  당시 IMF의 진단과 처방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1980년대부터는 외채위기의 주기적인 재발로 국제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외환위기 직전 동아시아의 거시경제는 양호한 편이었다. 아시아 각국의 재정적자도 평균 3~4%에 불과했고, 무역적자도 평균 5~6% 정도였다. 외채위기 이전 평균 20% 이상의 재정·무역 적자나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에 시달렸던 라틴 아메리카와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다.
  
  동아시아의 외환위기 국가들과 라틴 아메리카의 외채위기 국가들을 구분 짓는 또 다른 차이는, 동아시아의 경우 해외로부터 단기금융자본을 빌렸던 당사자가 정부나 공적 기관이 아니라 재벌 등 민간 경제주체였다는 점이다. 물론 금융시장 개방 정도 등 각국의 사정에 따라 외환위기의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이 위기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서 민간 경제주체, 특히 산업자본가들의 과도한 단기차입이 핵심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따라서 이자율 인상이나 재정 지출 축소 등 라틴 아메리카의 한두 나라에서, 그것도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던 정책과는 전적으로 다른 대책이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치유하는 데 요구됐던 것이다.
  
  그러나 IMF가 동아시아에 내린 처방은 라틴아메리카에 내린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해외 금융자본의 신뢰를 확보한다는 미명 하에 국내 이자율을 높이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개별 비금융 기업뿐 아니라 은행에까지 강요하며, 이와 동시에 정부 재정 지출 규모를 급격하게 축소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IMF는 동아시아 각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전적인 무지와 정책 집행 결과에 대한 무책임성을 무기로 이 '안정화' 정책을 아시아 각국에 강요했던 것이다. 이에 더해 IMF는 긴급 금융지원을 대가로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와 금융 및 비금융 산업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한도를 폐지해 해외 금융 자본가들의 잠재적 이익을 극대화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그리고 스티글리츠의 조언
  
  우리가 직접 체험했던 것처럼, 국제통화기금(IMF)의 이같이 잘못된 경제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대가는 매우 컸다.
  
  IMF의 정책들은 공식 실업률뿐 아니라 절대 빈곤률을 급격하게 상승시켰고(인도네시아, 필리핀), 도시 거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농촌 지역으로 퇴행 이주하는 결과를 낳았다(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일부). 또 미약하게나마 잔존하던 중소 규모의 산업적 경제기반을 와해시키면서 국내총생산(GNP)을 급격히 후퇴시켰고(자본통제를 실시한 말레이시아를 제외한 모든 동아시아 외환위기 국가들), 심지어는 끊임없는 정치적 불안정성과 인종갈등 및 내전의 상황으로까지 국민경제의 상태를 악화시켰다(인도네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된 지금까지도, 'IMF의 모범생'이라는 칭찬 아닌 조롱을 들으며 조기에 위기 국면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에서도 이 IMF식 정책들의 부정적인 영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뿐 아니라 설비투자율도 외환위기 이전의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고, 허깨비 같은 경제성장률조차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시장은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56% 이상이 비정규직인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대신 한국경제 전반을 휘감고 있는 것은, 가까운 장래에는 도저히 방향을 되돌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금융 및 자본시장의 대외 종속과 수직적 통합, 그리고 이것이이 야기하는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의 수많은 징후들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같은 비판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 동아시아 외환위기 전후에 세계은행의 수석연구원으로 일했던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교수라는 점이다.
  
  그는 외환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비대칭 정보(asymmetric information)'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자체에 놓여 있다고 보면서,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는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정책 결정자들의 맹목적인 신앙과 추종에 입각한 급속한 국내외적 금융 및 자본시장 개방 과정이 외환위기의 주범이라고 분석했다.
  
  스티글리츠는 자본 및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정책 과정과 회계감독 등의 영역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지만, 그런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 단기이자율과 환율변동에 따른 시세차액을 노리고 역내로 유입되는 금융자본과 이들이 야기하는 금융 불안정성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스티글리츠는 해외자본의 단기화를 줄이고, 해외자본이 생산적인 장기 투자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금융 투자 자본을 각국 중앙은행에 일정 기간 동안 예치해 두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고(칠레의 경우), 세제 혜택 수준의 조정 등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단기 자금을 차입할 인센티브를 줄일 것을 제안했다.
  
  더 나아가서는, 스티글리츠는 개별 국가들이 긴급 상황 발생 시 금융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아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고(말레시아의 경우), 이와 더불어 역내 정부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채무 상환 재조정과 부채 탕감 등을 강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 파산법을 대폭 수정해, 국내 우량 기업들의 불필요한 연쇄파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같은 권고들은 IMF가 탈냉전 이후 취해 왔던 전형적인 '안정화' 정책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이는 IMF의 전통적인 역할과 위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나온 권고들이었다.
  
  세계은행의 이념적 편향성과 잘못된 대출 행태
  
  한편, 세계은행(World Bank)의 역할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세계은행의 대출이 설립 당시의 목표였던 빈곤퇴치와 경제부흥이라는 임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들의 빈곤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차관의 압도적인 금액은 당연히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극빈국가들에 대한 무상지원금으로 할당돼야 한다.
  
  그런데 세계은행 차관의 대부분은 이들 극빈국가들이 아니라 소위 '중간소득 국가들'(middle-income countries)에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6년 세계은행의 총 차관 공여액 가운데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140억 달러 이상이 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 지급됐다.
  
  세계은행은 지급된 대출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국가들에만 돈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은행이 극빈국가들의 빈곤 퇴치를 위해 필요한 차관 지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은, '빈곤퇴치 및 경제부흥'이라는 공식적인 조직 목표와는 달리, 차관 지급에 앞선 중요한 요구조건(conditionality)으로 대외무역개방과 무조건적인 시장개방을 내걸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세계은행이 자체 연구진과 대외용역을 통해 발주한 연구 논문들의 주제와 연구 방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이 나와 경제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들의 자문과 직·간적접인 참여 하에 작성된 <1998~2005년 세계은행 연구 평가 보고서(World Bank Research Evaluation Report 1998~2005)>는 1998~2005년 사이에 세계은행이 발간한 자체 연구보고서 및 단행본 4000여 편이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분석한 최초의 평가서였다.
  
  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이 기간 동안 세계화와 원조 및 빈곤의 상관관계, 사회간접자본, 금융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 등 세계은행의 국제적 역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연구서를 주로 발간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편향된 이념과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이 평가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부분의 보고서들이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을 가져다준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고 있거나 △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국들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대외원조가 지니는 상이한 경제적 성과를, 아무런 경험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계량화된 수혜국 내의 '좋은 제도'(good institutions)가 존재하는가 여부를 가지고 평가하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 경제성장률의 증가가, 이에 따른 환경 외부효과나 국내적 차원의 분배구조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이롭다고 주장하고 있고 △ 금융시장의 개방과 대외적 통합이 경제발전 단계와 상관없이 무조건 빈곤국들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이같은 이념적 편향성을 고수하면서, 실제로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면, IMF보다 먼저 철저한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IMF와 함께 세계은행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계은행과 IMF 개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최근의 고무적인 소식은 호주, 남아프리카, 브라질의 재무장관들이 각각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고위직 인사 선발 방식의 개혁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또 영미권 국가들에서는 학계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서 이 서명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단체는 '국제금융의 새로운 질서(New Rules for Global Finance)'다. 발전경제학자, 인권운동가, 환경운동가 및 노동운동가들 그리고 종교단체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최근 세계은행과 IMF의 고위직 관료 선출 방식을 개선하자는 취지의 서명운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 서명운동 결의문에서 "폴 울포위츠로 대변되는 세계은행의 문제는 그가 국제적 차원의 합의를 요구하는 세계은행의 과제를 대변하기보다는 미국의 특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려고 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면서 "미국 행정부가 세계은행 총재를 지명해 왔던 낡은 관례는 '선발 절차의 투명성'과 '국적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인사를 충원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고위직 인사 선출 방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30일 현재 총 558명이 이 서명에 참가했다. 한국의 독자도 이 서명운동에 참가할 수 있다. 이들의 홈페이지(http://www.new-rules.org)를 방문하거나, 대표 이메일 주소(jbaker@new-rules.org)로 영문 이름과 소속기관(예: Moo-Hyun Roh, President, Republic of Korea)을 써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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