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들어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 등을 새롭게 신청하는 사람에게 장애 상태와 등급의 심사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6월 17일의 보도 자료에서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복지법 상의 장애등급 심사 결과 장애등급이 36.7% 가량 하향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보도 자료에 의하면 장애등급 하향 조정의 주요 원인으로는 "장애진단서와 진료기록지 상의 장애 상태가 상이"한 경우가 74.3%(5589건), "장애등급 판정 기준 미 부합"이 14.0%(1052건)로 두 유형이 전체의 88.3%(6641건)를 차지하였는데, 일선의 많은 의료인들이 그간 진료를 해온 환자가 신청인으로 요구할 경우 그간에 쌓인 유대관계 등으로 장애등급을 올려주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며, 이에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 판정에 대한 일선 의료기관의 좀 더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장애계는 장애등급이 하락되면 7월 30일부터 최초로 지급되는 장애인연금을 못 받게 될 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기고 보행을 못하는 사람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게 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며 실제로 현재 피해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에 '장애등급제 폐지와 사회서비스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장애인연금의 신청 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고, 9월 13일 급기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여 무기한 집단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장애인복지카드를 반납하는 기자회견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장애등급제와 관련된 작금의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선 원인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살펴보자. 우선 우리는 "장애등록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말하기 전에 2010년 1월부터 새로운 장애등급 판정 기준이 시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장애등급 판정 과정에 부정의 요소가 얼마나 있었는지 알려면 기존의 판정 기준을 재사용해보아야 하는 것이지 이번처럼 새로운 기준을 사용한다면 부정의 가능성과 측정 도구의 변화라는 두 개의 독립변수가 혼재되어 우리는 충격적인 결과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새로운 판정 기준이 기존의 것보다 엄격해졌다고 장애계가 주장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둘째, 일선 의료인들이 주장한다고 하는 것처럼 거의 40%나 되는 장애인들이 그간에 의료인들과 유대관계를 쌓아 왔다는 것이 현실적인 주장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장애인으로서의 본인의 경험이나 다른 장애인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것은 별로 현실성 있는 논거로는 보이지 않는다. 혹 그간 진료를 해온 환자가 신청인으로 요구할 경우 그간에 쌓인 유대관계 때문에 장애등급을 올려주었다 하더라도 그런 경우가 과연 36.7% 중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적 오류와 과잉 일반화하는 해석 때문에 오는 결과는 의외로 크다. 보건복지부의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제공한 일선 의료기관에는 "좀 더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할 뿐 아무런 금전적ㆍ신체적 불이익이 없는 반면에, 보건복지부의 주장이 틀렸을 경우에 장애인이 입게 되는 피해는 실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장애계의 주장을 살펴보자. 장애계는 이번 장애등급 재심사가 예산 절감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 심사와 관계없이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의 총 예산이나 대상자 수는 변동이 없으며 탈락자가 생기면 다른 장애인이 급여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장애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해명은 역설적으로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장애인에게 급여가 제공된 것이 아니라 그들 중 일부에게만 제공되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 된다.
또한 장애인연금 예산에 있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3185억 원까지 증액 의결한 2010년 예산안이 결국 절반에 못 미치는 1519억 원으로 삭감되었고 활동보조서비스 예산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총 1628억 원으로 증액되었던 것 중 증액분 335억 원이 전액 삭감된 바 있으니 장애계의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장애계는 장애인차량 LPG 지원제도를 폐지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내세웠던 부정 수급의 논리가 이번 장애등급 심사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재현되고 있다는 데에 몹시 불쾌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론 장애등급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필자나 장애계가 주장하는 것은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장애인의 교육, 고용, 소득, 의료, 주거 등 다양한 복지 영역의 욕구를 장애등급 한 가지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건복지부와 대법원이 의뢰하여 수행된 '한국장애평가기준개발사업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그러니 자신이 외뢰하여 수행된 사업의 보고서 내용을 보건복지부가 채택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인권의 문제이다. 사람을 함부로 분류하고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그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한 수업 시간에서 한국에서의 장애인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발표하면서 내 장애가 한국에서 지체장애 2급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당시 수업 분위기 상 내 조국이 미개국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적 관점은 장애인 등급이 기록되어 있는 장애인복지카드를 장애계가 반납하겠다고 하는 데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대뜸 나오는 질문이 그러면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굳이 등급을 매기지 않더라도 복지 영역별로 장애인의 욕구를 측정하는 다양한 도구를 채용할 수 있으며, 장애등급제를 똑같이 채택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런 방식으로 별 무리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이겠으나, 여기에서 필자는 서비스, 프로그램 제공에 있어서의 자격 기준이 되는 장애의 정의를 재고해 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에 장애인복지법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를 보면,
(1) '장애인'이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2) 이 법을 적용받는 장애인은 제1항에 따른 장애인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장애가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① '신체적 장애'란 주요 외부 신체 기능의 장애, 내부기관의 장애 등을 말한다.
② '정신적 장애'란 발달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
여기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는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ㆍ요루장애, 간질장애이다. 또한 장애인의 장애 정도에 따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등급은, 장애의 종류별로 다르지만, 제1급에서 제6급까지 있다.
장애인복지법은 제1항만 보아서는 얼핏 이상ㆍ손상에서 기인하는 활동 제한, 즉 기능적 제한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2항과 동 법 시행령을 통하여 장애 종류를 정하고 있고, 그 법정 장애 범주도 아직 좁다. 심지어 시행규칙에서는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것처럼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어, 이에 장애인복지법은 철저하게 의학적으로 장애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도 장애를 정의함에 있어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하고 있어, 역시 의학적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학적 접근법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공인된' 질환의 특정 목록으로부터 중요한 많은 질환을 빠뜨리게 될 위험성이 있고, 이것은 그 질병이 이 목록상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있어서 급부의 거절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5개 장애 종류에 포함되지 않으면 아무리 신체적ㆍ정신적 손상이 있어도 장애인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둘째, 이 접근법은 제한의 결과보다는 왜 그 제한이 생겼는가를 강조하며, 따라서 개인의 신체 상태와 능력 사이에 분명한 관련성이 있다는 생각을 영구화한다. 즉 신체적ㆍ정신적 손상이 있으면 그 사람은 곧 무능력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개인으로부터 초점을 바꾸어 더 광범위한 사회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정치적 환경으로 향하는 사회정치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신체적ㆍ정신적 제한만큼이나, 오히려 그 제한보다도 더욱, 사회에서의 차별과 억압에 의해 불리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이 직면한 문제는 환경을 고치는 정책 변화를 통하여 다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장애인복지법의 장애 정의를 검토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장애등급을 넘어서 장애 정의에서부터 개선할 부분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의 경우에 장애 범주를 더 확대하는 것을 우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도 장애 범주를 확대하는 쪽보다는 좀 더 종합적인 장애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즉 장애인복지법의 경우에 손상되지 않은 신체 기능과 구조, 활동을 하는 능력, 그리고 제약 없는 참여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 물리적ㆍ사회적 환경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동 법이 완전히 사회정치적으로 접근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동 법에 사회정치적 접근법의 요소를 가미하여 의학적 접근법과 통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통합적으로 장애를 정의하고자 할 때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예로서 '기능, 장애 및 건강에 관한 국제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를 들 수 있고, 법률로는 미국의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과 재활법(Rehabilitation Act)을 참고할 수 있다. 특히 재활법의 경우에 section이나 title에 따라 각기 다른 정의를 융통성 있게 채택하고 있어 우리가 꼭 참고해야 할 방식이라 할 것이다.
물론 장애등급제가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 정의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 조금은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참에 장애 정의의 문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이 항상 비장애인 전문가에 의하여 분류되고 또 그것에 의하여 복지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결정되며 그 와중에 생존권이 심대하게 위협받는 악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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