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40년. 1970년 11월 13일, 스물 두 살의 청년 전태일이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고 사람임을 선언한 지 벌써 반세기나 가깝게 지났다.
40년 동안 한국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이제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선진 공업국가로 탈바꿈되었다. 한국의 가난한 차상위 계층 한 달 수입은 북한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의 2~3년치 연봉과 맞먹는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40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화 한 통화로 해고되는 불안정 계급 비정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인 8백만 명을 넘는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금속노조 케이이씨지회 노동조합의 김준일은 경찰과 회사의 탄압에 저항하다 전태일과 똑같이 분신을 기도해 생명이 위독하다. 이런 분신이 지금까지 몇 명인지조차 헤아리 수 없을 정도로 현재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와 형편은 극단의 선택 앞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들이 끊이지 않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 죽음에 대한 반응은 40년 전과 전혀 다르다. 일반 인민들과 심지어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까지도 그냥 흔히 있는 일상의 일인 양 심드렁하게 한 번 쳐다보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간부들과 소수의 노동자들만이 분노에 몸을 치떨고 투쟁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40년 전의 엄청난 충격에 견주면 정말 세상이 원망스럽고 속상할 정도로 울림은 적다.
민주노총이 아무리 비정규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소리높여 외쳐도 현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철저히 비정규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배제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런 모습은 이제는 아예 보수언론의 단골 조롱거리로 늘 거론될 정도이다. 거기다 기업별 노조의 우물안에 갇혀 있는 노동조합들은 자판기 노조라는 자탄이 나올만큼 임금-단협 위주의 투쟁이 조합활동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말이 '민주'이지 조합원 활동이 거의 없는 오늘날 한국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이기는커녕 이제 민주주의의 무덤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노동운동은 위기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태일 40주년의 다양한 기념행사 또한 그냥 연례행사일 뿐, 그 어디에서도 생생하고도 뜨겁던 전태일의 꿈과 열정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어쩌다 한국 노동운동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전태일 40년, 오늘 우리는 진실로 겸허하게 근본에서부터 다시 왜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운동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너무나 자주 들어 이제는 아무런 감흥조차 나지 않는 상투어, 노동자가 해방되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전태일 40년, 한국 노동운동은 다시 스물 두 살의 전태일로 젊어져야 한다.
새로운 전태일 노동운동으로 부활해야
누구나 알고 있듯이 1970년 전태일은 반공병동(反共病棟)의 철벽같은 감옥에 동면 상태로 갇혀 있던 한국 노동운동을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녹여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전태일 이후 한국에는 이전 시대의 노동운동과는 족보가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노동운동이 탄생했다. 분명히 지금의 한국 노동운동 생일은 1970년 11월 13일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노동운동은 늘 청년 전태일의 꿈과 바보같은 열정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며 꽃을 피워 왔다.
전태일의 꿈은 소박한 것이었다. 노동자도 인간 대접을 받고 일하며 살 수 있는 사회,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모범업체, 사람들이 서로 빵을 나누고 사랑과 우애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전태일의 꿈이었다. 전태일의 열정은 새싹과도 같았던 푸릇푸릇한, 세상을 맑은 눈으로 꿰뚫어보며 그 어떤 불의와 부정, 억압과 착취에도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피끓는 청년의 열정이었다. 이런 전태일의 꿈과 열정은 그대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져 그 가열찬 투쟁과 공동체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 1980년대 민주노동조합은 명백하게 새로운 인간관계의 집이자 새로운 생활공동체였다. 1970년대 민주노조를 처음 접한 노동자들은 전태일과 똑같이 신천지를 만난 충격을 거의 모두가 경험한다. 세상에 이런 재미있고 유익한 소모임이 있다니! 세상에 이렇게 힘있는 노동자 권익 보호의 투쟁조직이 있다니! 세상에 이렇게 서로 돕고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가 있다니! 그래서 노동자들은 퇴근이 무섭게 조합 사무실로 달려갔고, 밤새워 소모임을 했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공돌이 공순이라는 열등의식을 과감히 벗어 내팽개치고 당당히 자신을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존심과 자긍심을 갖출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심봉사 눈뜨듯 노동자들의 눈을 벼락처럼 번쩍 뜨게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목숨과도 같이 소중한 상부상조의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소통과 교류의 세계였다. 단순한 투쟁공동체를 뛰어넘어 상부상조의 생활공동체였다. 적어도 1980년대 후반까지 민주노동조합은 이런 전태일의 꿈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노동공동체였고, 노동운동의 핵심은 노예가 아닌 자유인들의 공동체운동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1990년대가 되면서부터, 딱히 어느 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그리고 때로는 급속하게 이런 노동조합의 생활공동체 성격은 거세되어 갔다. 그리고는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등 노동조건 개선 위주의 투쟁조직 성격만 부각되기 시작했다. 급격한 임금인상과 함께 노동조합 권력을 둘러싸고 정파가 생겨나고 조합 집행부 선거가 기존 정당정치에 버금가는 금권과 관권 선거정치의 복사판이 되어 가는 곳도 생겨났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급기야 오늘날 노동조합은 공동체와는 전혀 거리가 먼, 갓잡은 싱싱한 활어같은 생동감도 없고, 전태일의 그 치열한 꿈과 용암과도 같은 열정은 더더구나 아예 사라진, 죽어가는 관료 조직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주의의 조직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자연히 일반 시민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이고 조합원 자신들조차 스스로 노동조합에 대해 신뢰를 거둬 들이고 있다. 이제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합 사무실로 달려가거나 창동의 이소선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 밤을 새우는 그런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서로 언니 동생 친구로, 형과 아우 친구로 핏줄보다 더 진한 우정과 의리와 희망을 함께 나누던 조합원들 사이의 그 끈끈한 인간관계는 아득한 옛 전설로 사라졌다. 노동조합은 그 어떤 지원 세력도 다 사라지고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처럼 소수의 고립된 조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늘 근본과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청년 전태일이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갔듯이 한국 노동운동은 청년 전태일의 꿈과 열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집합체이며 노예에서 벗어난 자유인들의 새로운 공동체임을 실천했던 1970년대 1980년대 전태일 노동운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의와 불평등 세력에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평등과 평화와 우애와 사랑이 넘치는 새로운 자유인들의 연합체로서 노동조합이 모든 노동자들을 새로운 자유인으로 각성하고 재탄생시켰을 때 가능하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공동체운동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땅에 뿌리박은 농민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가차없이 때려부순 다음 공장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모래알같은 임금노예들을 강제로 만들어 냈다. 이런 임금노예들의 일상생활 모습은 끔찍하고도 비참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채 열 살 남짓한 아동들이 탄광과 면방공장에서 하루 17~18시간씩 혹사당하고 있는 실태를 기술하면서 자본주의를 분석한 분노의 책이었다. 1970년대 한국의 공장들이 꼭 그러했고 전태일은 책을 쓰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꿈꾸며 횃불을 들었다.
마르크스는 국가 대신 자유인들의 연합체인 공동체 사회, 공산주의라고 번역을 잘못해서 늘 혼란을 가져오는 공동체주의(코뮤니즘)을 추구했다. 물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또한 자원 착취의 지속불가능한 생산력주의로서 자본주의와 똑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념이었다. 또한 마르크스와 전혀 다르게 철저한 국가주의자들이었던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혁명이란 이름 아래 공동체를 강제로 해체한 전체주의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결국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전태일의 사상과 실천은 마르크스의 서구 중심 근대사상과 전혀 달리 한국이라는 땅에서 피어난 청년의 사상과 실천이었다. 전태일의 꿈과 열정, 사상과 실천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인간 선언이었고 늘 푸릇푸릇하게 재생하는 지속가능한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사상과 그 실천이었다. 마르크주의는 낡은 이념으로 늙어갔지만, 전태일의 사상과 실천은 늘 청년으로 새롭게 부활한다.
서구 자본주의의 초기에도 노동자들의 유일한 희망은 노동자들 스스로 공동체 조직을 만들어 상부상조하면서 지옥같은 현실을 뜯어 고치는 길 뿐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우애조합, 우애협회, 통신협회, 비밀공제조합 등 다양한 노동자 조직을 수도 없이 만들었고 노동조합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801년 우애협회와 공제조합은 영국에서만 7,200여개나 되었다. 179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조직은 대부분 우애조합이었다. 즉, 서구에서도 노동조합의 본성은 공동체였고, 노동운동은 공동체운동으로서 출발했던 것이다
노동공동체가 전제되지 않는 노동조합은 사실 어쩌면 물거품과도 같은 한시 조직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오늘날 서구 노동조합의 대부분은 노동공동체 이념은 간 곳 없고 미국의 노동조합처럼 자본과 거래를 하는 비즈니스 유니언이즘(business unionism)만 남은, 말 그대로 하나의 사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노동공동체고 뭐고 사라진 폐허 위에 돈다발만 오고가는 순전한 이익단체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노동조합 또한 이 길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상호부조 사회로 바꾸는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고 또 평등과 사회정의가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면, 사회구조를 배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한다면, 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의 노동조합과 노예노동자일 뿐이다.
서구의 사민주의 복지국가 체제도 사실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떡고물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여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구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성장의 과실 가운데 일부를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분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과실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노동자들의 피를 짜내 만든 과실이었다. 그 결과 서구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심하게 말하면 배부른 노동노예들, 배부른 가축들, 배부른 기계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한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또한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제3세계 노동자들과 생태계를 착취하고 파괴하고 억압한 떡고물이다. 결국 한국의 노동조합 또한 착취와 억압의 협력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전태일 40년, 한국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 노동조합은 박제화된 법정기구의 늪과 관료주의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어가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낡은 테잎처럼 틀거나 약간의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환갑이 넘은 중늙은이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 물론 기륭전자나 동희오토 등의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처럼 노예임을 거부하고 자유인의 지난한 투쟁을 지속해 온 노동조합도 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향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이지않는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런 투쟁과 동시에 새로운 자유인들의 공동체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생활공동체 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으로 전환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공동체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생산협동조합을 비롯해 다양한 협동조합과 공제조합 등등 수많은 노동자 공동체 조직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자본에 대항한 반대와 저항의 투쟁을 넘어서서 새로운 생산조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노동자들에게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에너지-자원 고갈-기후변화의 위기 앞에서 삼성같은 지속불가능한 재벌 기업을 넘어서서 지속가능한 생산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생활공동체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여성노조나 지역일반노조들의 경험을 더욱 확대시켜야 한다. 로버트 오웬이 "자본은 노동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서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흔치 않은 유산이며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한다.
전태일이 오늘의 노동운동, 나아가 개인의 삶과 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태일과 1970년대 198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역사가 오늘에 던지는 절절한 외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청년의 꿈과 열정을 부활시키라는 호소이다.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생활공동체운동이라는 노동운동의 뿌리에 대한 호소이다. 노동자들은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라는 각성과 선언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 사회, 새로운 공동체 국가를 만듫어나가야 한다는 거대한 전환에 대한 호소이다. 노예의 운동에서 자유인들의 공동체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정언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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