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40여분 정도 진행된 행진이 끝나기 바로 직전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던, 스스로 평범한 시민을 자처한 한 남자가 부산 해운대 경찰서의 형사로 밝혀지면서 행진 참가자들과 형사 간에 카메라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얼마 안 있어, 잠복해 있던 사복 경찰들과 오전부터 벡스코 광장 앞에서 서성대던 제복 입은 경찰들, 그리고 아직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정장에 리시버를 착용한 건장한 남자들 20~30명이 몰려와서 항의하는 행진 참가자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대낮 실내에서 전통적으로 하는 행사에 벌어진 채증과 연행
| ▲ 국내외 소수자 단체 활동가들은 "에이즈 치료제 접근을 막는 FTA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금도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 독점으로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의 60%가 치료제를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FTA에 반대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1990년 호주 캔버라에서 제1회 대회가 시작된 이후 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국제대회로 매 대회마다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 아이캅은 '세계에이즈대회'를 제외하고 지역 대회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HIV/AIDS 관련 포럼이지만, 포럼장 밖에서 참가자들이 주체적으로 꾸리는 전시 및 행진, 집회도 아이캅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이다. 때문에 27일 벡스코에서 열린 행진도 호주, 인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이캅 '20여년의 전통'에 따라 '당연하게' 기획된 것이었다. 이는 이번 아이캅 조직위원회에도 이미 예상한 것이고, 당일 벡스코 측에서도 그들의 행진에 대해 별다른 항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야간도 아닌 여름의 태양 빛이 내리쬐는 대낮에, 실외도 아닌 도로 위는 더더구나 아닌 아이캅 행사장에서, 아이캅 참여자들이 대회의 전통에 따라 아무런 문제없이, 즉 현행법상의 불법행위가 전혀 없이, 현장의 그 누구의 문제제기도 받지 않으며 진행된 시위를 경찰이 자신의 신분을 속여가면서까지 몰래 채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경찰들이 몰려오자 참가자들은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불법채증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외부의 누군가에게로 노출되면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HIV/AIDS 감염인, 성노동자,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자가 경찰이었으니, 참가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이 땅에서 공권력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한국 참가자들이 느낀 분노와 두려움은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경찰은 이들의 항의와 쏟아지는 질문에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연행을 지시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경찰의 행태에 문제제기 하는 변호사 한 명이 지휘관의 "연행하라"는 한마디에 양 팔이 경찰들에게 붙들려 경찰차로 끌려갔다. 그 자리에 있던 200여 명의 참가자들은 행진을 함께 한 그녀의 연행을 막기 위해 경찰차를 에워싸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한국인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100여 명의 해외 참가자들도 "다운(down)! 다운(down)!"을 외치며 연행을 저지하기 위해 함께 드러누웠다. 그러나 경찰들은 그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면서 그 자리에 있던 참가자들을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HIV/AIDS감염인을 비롯한 다수의 참가자들이 다치거나 옷이 벗겨지고, 머리카락이 뽑혔으며, 몇몇 참가자들은 실신하여 병원 응급실로 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연행된 변호사를 태운 경찰차가 벡스코 앞 광장을 벗어나는 순간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그 뒤를 따라갔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이들이 공유했던 감정은 바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트렌스젠더, 공항직원에게 성기 형태 질문받기도
이들이 느낀 참담함은 사실 아이캅의 부산 개최 결정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개최 결정 이후부터 보건복지부는 개최 자체를 반대했다. 보건복지부가 일체의 재정 지원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과연 아이캅의 개최가 가능한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파행적으로 준비되었다. 물론, 아이캅의 주인공인 HIV/AIDS 감염인들이 대회 준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아이캅이 개최된 이후에는 참가자들은 '소외'를 넘어 '인권 침해'로 인해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HIV/AIDS 감염인들과 더불어 아이캅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에이즈 감염인, 성노동자, 마약사용자, 트렌스젠더는 한국으로의 입국과정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활동가가 입국 비자를 거부당하는가 하면, 한국에 도착해서도 입국심사과정에서 몇 시간 억류되는 경험을 겪어야했다. 한 트렌스젠더는 공항직원으로부터 당신의 성기형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외국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 그 어느 부처에서도 이들에게 사과는 커녕 입장표명 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캅은 시작되었고, 본 대회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이처럼 어이없는 경찰 폭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벡스코 안에서 구호 외쳤다면?
| ▲ 경찰의 연행을 막으려는 참가자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우선 한국에서는 HIV/AIDS 감염인과 성노동자, 트랜스젠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앞 글자를 딴 단어) 등은 그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HIV/AIDS 감염인 및 동성애자, 그리고 성노동자 등에 대한 이 사회의 근거 없는 증오와 정부의 멸시가 없었어도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집시법에 대한 시시비비를 차치하고, 현행법상으로 그 어떠한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경찰들은 참가단의 행진을 시종일관 감시하고, 종국에는 연행을 시도함으로써 진압하려 했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이들의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만약에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근사한 옷을 입고 대낮에, 벡스코 안에서 "FTA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했어도 과연 경찰이 이처럼 무모한 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의 경찰은 단지 다수의 군중이 모여 있는 것, 혹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모든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여기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법 위에 경찰 있다"
또 한 가지는 한국 경찰이 인간과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상이다. 물론 현 정부 들어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원천인 법에 대한 존경마저 없다는 사실은 경찰과 현 정부가 심심하면 내뱉는 "법대로"의 법이 '법치(法治)'가 아닌, 독재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인 '인치(人治)'의 다른 표현일 뿐임을 새삼 깨닫게 하였다.
경찰은 그들의 행동에 '오판'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은 경찰의 오판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인 법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경찰의 '오만'에 있다. 불법 채증과 불법 연행에 대해 그 근거를 대라는 변호사에게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연행하라"는 말을 마치 인사말처럼 자연스럽게 내뱉는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손가락 한번 움직이는 것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죽였던 독재자와 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한 불법을 망설임없이 저지르면서도 이를 저지하는 참가자들에게 "법적 조치" 또는 "공권력"을 운운하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다. 한국 경찰들에게 법은 그들의 존재 근거가 되지 못하며, 법 또한 그들이 자의적으로 그 존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대상이다. 바야흐로 경찰독재국가라고 해도 손색없음을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호주로 이민을 간 후 몇 십년 만에 한국에 오게 된 한 참가자는 그녀의 "우리나라"가 이 꼴이 된 것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가 그리워했던 '우리나라'에는 그녀는 자리잡을 틈이 없었고, 오직 경찰만이 '우리'로 있었다.
| ▲ 침묵 시위하는 참가자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불법 채증한 사진 행방은 아직도 묘연"
분노 이전에 황당함부터 느껴지는 이 사건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다.
행진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있었던 아이캅 조직위원회 직원은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간 줄 알았다가 엉뚱하게 시위 주동자로 몰려 피의자 조사를 받게 되었다. 외국 참가단 일부가 2년 후 태국에서의 아이캅을 보이콧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 하고나서야, 조직위원회는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서 경찰로부터 신변 보장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경찰은 아직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이 불법으로 채증한 사진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자신들의 개인 정보 유출에 특히 민감한 참가자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분노했고, 결국 유엔에이즈가 외교통상부 장관과 면담하여 외국 참가단의 입출국 절차에서 어떠한 불이익이 없을 것임을 약속받았다. 유엔에이즈는 조만간 이 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대회의 폐막 전에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하고 뛰어다녔던 한국 참가단들은 이번 아이캅을 위해 작년 겨울부터 반년 넘는 시간동안 준비해왔던 포럼 및 각종 기획들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200여 명의 사람들이 무려 2시간 가까이 연행을 막으려 했고, 급기야 "Free that woman!"(그녀를 풀어줘라!)을 외치며 벡스코 광장에 드러누우면서까지 지키려했던 변호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해운대 경찰서에 끌려간 그 변호사는 조서를 작성하던 형사로부터 "도대체 왜 연행되어 왔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듣고 연행된 지 3시간 만에 벡스코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현 정부 들어서 경찰서로 연행된 세 번째 변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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