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에서는 산업, 업종과 지역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공동 요구를 마련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정부와 한나라당까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실제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거나 실효성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기획단에서는 10.22 대회에서 천명할 구체적 요구들에 대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릴레이 기고를 진행한다. (공동 요구와 슬로건은 웹자보 참조) <기고자>
- 비정규직이 말하는 임금 ① '밀린 임금' 받으려다 맞아 죽은 건설노동자 ② "너희는 하루살이…친척 묘지 풀베기까지 시켜" |
조선산업이 잘나가던 지난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자본가들은 남해안 조선산업 밸트를 만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조선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현대중공업, STX 해양 등이 하청업체 기성금을 30%씩 삭감했다는 얘기들이 있었다. 이런 원청의 기성금 삭감을 이유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들은 기본금 10%와 수당을 삭감하고, 토요일 4시간 유급시간도 0시간으로 만들었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 하청업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대형 조선소들은 벌크선 등을 저가 수주하면서 중형 조선소 배까지 수주하기에 나섰다. 결국 책임 떠넘기기는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업체에서 하청노동자들로 전달벨트처럼 연결되어 하청노동자들에게 2중, 3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그나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의 하청업체들은 기성금을 가지고 도망가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다. 대형 조선소 하청업체에서는 상시적인 체불임금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선산업 빅4에 속한다는 STX 조선해양 소속 하청업체 사장들이 기성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원청 회사에 블록 등을 제작해 납품하는 오리엔탈 정공, 전남 대불공단에 있는 블록 공장들은 원청과의 저가 계약을 강요당했다. 이러한 블록 공장들은 사내 하청업체에게 기성금 삭감을 강요했다. 이런 하청업체 사장들은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먹고 도주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2009년 한해 전남 대불산단 내 체불임금만 50억 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프레시안(허환주) |
이렇게 조선사업장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원청사가 가지고 있는 힘의 우위 때문이다. 원청사는 물량수주부터 인원관리까지 모든 것을 지시, 명령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현실이다.
원청사는 제조업에 사내하청을 두는 것은 법 위반(불법파견)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사업장 생산직을 사내하청 노동자로 고용하고 있다. 그 비율이 가장 낮다고 하는 현대중공업조차 사내하청 규모가 이미 정규직 생산직 대비 100%을 넘어섰다. 특히 STX 조선해양의 경우는 사내하청 숫자가 정규직 대비 400%를 넘기고 있다. 대기업 원청에 블록을 공급하는 공장들의 경우 대기업 조선소보다 하청노동자의 비율이 훨씬 높고 생산직 전체가 하청노동자인 사업장도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 단결하려고 해도 원청은 하청업체를 폐업하고 조합원들을 해고한다. 하청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 자체가 해고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조건을 잘 알고 있는 조선산업 원청은 불법적인 하청제도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고용불안까지 2중 3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넘쳐나는 원청의 곳간, 줄어드는 노동소득분배율
세계 경제위기 때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한 결과 2010년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렸다. 지난해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72개사의 사내유보율은 무려 1200%를 넘어섰다. 72개사 자기자본금 25조 원과 비교했을 때 회사에 쌓아놓은 돈이 12배인 무려 300조 원대에 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선산업 위기 때 삭감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결코 회복되지 않았고, 임금체불과 야반도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반성장, 이익공유제, 말잔치는 떠들썩하지만 사장님들은 간단히 비웃는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2만 달러대에 재진입했지만,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59.2%로 전년대비 1.7%포인트 하락해 3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장들의 몫만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원청의 곳간은 넘쳐나지만 조선업종 하청노동자들은 건설과 함께 임금체불 규모는 노동부 공식 집계에서만 수천억 원대여서, 학계에서는 실제 체불 총액이 연간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조선소 앞 식당 아주머니 "이번에는 똑똑한 사람이 있었나벼"
그나마 이런 임금 체불에 맞서 하청노동자들은 노동부에 진정도 하고 원청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원청에게 체불 임금을 받거나 노동부로부터 체당금으로 임금의 일부는 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 1억7000만 원대의 노동자 임금을 들고 하청업체 사장이 야반도주를 하자, 오리엔탈정공(창원)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원청 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였다. 원청에게 임금을 받아내긴 했지만 체불임금 100%를 받진 못했다. 노동부를 통해 받는 체당금 역시 임금 100%를 받는 것이 아니다. 또한 6개월 이내는 체당금마저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못돼 이런 제도라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오리엔탈 정공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이던 당시 회사 앞 식당 아주머니는 "하청 노동자들 임금 못 받고 떠나는 사람들 많았는데 이번에는 똑똑한 사람이 있었나벼.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구만"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조선산업 하청노동자들은 임금 체불을 받기 위해 나서는 것조차도 몰라서 못하고 또는 행동에 나서면 불이익이 발생할까봐 그것조차 포기하는 경우가 부기기수다.
조선사업장 하청노동자들이 체불임금 해결을 위해 나서는 것조차 어려운 조건인데 당장에 노조로 단결해 제조업 사내하청 제도를 없애는 행동에 나서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체불임금과 부당한 하청노동자 현실에 맞서 싸우는 하청노동자들이 있다.
전남 대불공단에서는 임금체불이 끊이지 않았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이 나서 대책을 마련할 정도로 임금체불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못지않게 체불임금이 발생하는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부 정책을 바꿔내는 모범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만약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앞장서서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해결'을 내걸고 지역별 고발센터 설립과 캠페인, 상습 체불사업주 구속투쟁을 벌인다면 하청노동자들의 자신감도 상승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단체, 진보정당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더 많은 조선사업장 하청노동자들이 체불임금 등 불이익에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