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도 변하지 않아 갑갑해서 미치겠다고 혼자 짜증도 내고, 더위 속에서 몇 시간씩 운전하다보면 엉덩이부터 무릎까지 땀띠로 엉망이 되기도 했는데, 막상 뒤돌아 비행기에 올라 타려니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더군요. 무엇보다 5월이면 대선인데, 정식으로 독립을 하는데, 그 모습만은 꼭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동티모르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해주던 한국사람들은 그 때 즈음이면 모두들 월드컵 이야기에 정신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 날 저는 편지 한 장 쓰려고요. 부대 옆에 살던 꼬마 길로에게, 맨발로 일하던 주앙 아저씨에게, 만물상 가게 딸 제니에게.
축하합니다. 어렵게 돌아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길로는 바라던 '키 큰 사람'이 되고, 아저씨는 멋진 방위군 장교가 되시고, 제니는 꼭 의사가 되어 한국에도 한 번 오세요.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여기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느낌을 모았습니다.(10월 8일자까지)
***2월 28일**
마나투토라는 필리핀 대대 담당지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말 해변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필리핀 대대는 바닷가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서인지 같은 저지대임에도 정말 덥더군요. 너무너무 더워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다가 현기증이 들어서 정신없이 옆사람이 들고 있던 마실 물을 뺏어 들고 머리에 끼얹으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제가 있는 바우카우가 해발고도가 5백 미터가 좀 넘는다던데, 그 정도만으로도 차이가 엄청나더군요. 필리핀 군인들도-적응이 되었으리라는 저희의 생각과는 달리-저희 일행만큼은 아니지만 더위로 인해 고생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돌아와 이 곳 컴퓨터 앞에 앉아 느끼는 건데, 정말 여기 바우카우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 주던 필리핀 병사 바로 옆에는 동티모르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미스떼르... 펜. 펜. 아임 스튜덴뜨."
한 명이 그렇게 얘기하자 A소령님이 가지고 있던 플러스펜을 줬습니다. 주는 입장에서야 영어로 떠듬거리며 학생이라고 공부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기특해서 주셨겠지만, 곧 주위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 십 수명이 우르르 모여 들더니 함께 있던 평화유지군들을 각각 하나씩 붙잡고, "미스떼르... 펜. 펜. 아임 스튜덴뜨."를 연발하는 겁니다.
초코렛이나 물 달라는 것보다는 더 고차원적으로 보이고, 공부하겠다고 말하는 모습도 기특해보이기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군을 따라다니며 "김미 쪼꼬레또"를 외쳤다던 부모님 세대의 모습이 자꾸 그 위에 오버래핑 됩니다.
상록수부대에서 가끔 저희 연락단으로 들르곤 하는 상록수부대 단장 전속부관 노릇을 하는 K상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양반이 좋아하는 활동이 차를 타고 길을 가다 동티모르 어린이들이 보이면 차를 세워서 함께 사진 찍는 겁니다.
그 방법이란 게... 차를 세웁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는 애들을 보고 한국말로 소리치죠. "야! 일로 와!" 외국어도 사람이 쓰는 말일진대,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억양과 표정으로 느낌을 대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외국 욕은 구별해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이 K상사라는 양반은 그런 충고를 해줘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애들이 무슨 그런 구별이냐고 되려 큰소리지요. 그러면서도 가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제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 왜 동티모르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는지 알아?"
저는 퉁명스레 대꾸합니다.
"동티모르 사람들이 특히 한국을 좋아한다고 누가 그럽니까?"
K상사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야, 임마. 한국차가 지나가면 모두들 길에 나와 손 흔들고, 로스팔로스 한국군 지역에 가면 모두다 꼬레아, 꼬레아 하면서 소리치잖아! 그거보고도 몰라?"
"걔들 태국애들 지나가면 '사와디카~압!'하면서 소리치고 필리핀애들 지나가면 '필리피노~!'하면서 소리칩니다. 유엔 자동차가 지나가면 누구에게건 그렇게 소리칩니다."
"그건... 네가 사물의 표면만 봐서 그런 거야. 사람들의 표정을 봐. 여기 태국군 지역과 한국군 지역은 판이하게 다르잖아. 뭔가 한국군 지역에선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더냐?"
이쯤 우기기 시작하면 할 말 없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있습니다. K상사, 대꾸 없는 저를 보고 자기가 이기고 있다 생각했는지 계속 의기양양해서 말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현지인들에게 건빵 한 봉지를 줘도 꼭 차를 세우고 내려서 손에 쥐어 줘. 던져 주는 일이 없다고. 우리는 여기 사람들을 위해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어."
상록수부대의 활동상을 모르는 바 아니고, 부지런한 한국인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의 헌신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고, 단지 그간 한국이 이곳에 와서 행했던 그 수많은 물적, 인적 지원의 근간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를 K상사의 말속에서 확인한 듯해서 가슴이 한구석 쓰릴 뿐입니다.
길을 놓는다는 것이 이 곳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에 제가 쓴 적이 있었죠? 길을 놓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 길을 놓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마련입니다. 6백년을 걸어 다닌 사람들에게 차를 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차를 사주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이들에게 '베푼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베푸는'것이 아닐까 싶은 겁니다. 어릴 적에 "김미 쪼꼬레또" 하면서 자라난 기억이 그대로 동티모르인들에게 투영되어 "그래. 먹을 걸 던져주지 않고 직접 손에 쥐어만 준다면 저들은 우리를 고마워할 거야"라고 무의식적으로 믿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마치 동티모르인들은 물병 몇 개와 레이션 몇 박스에 환장하는 단세포들로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마나투토에서 저희 차를 빙 둘러싸고 펜을 달라고 보채던 아이들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기어를 1단에 넣고 액셀을 밟으며 씁쓸한 기분을 계속해서 씹었습니다. 펜을 달라는 아이들, 건빵을 집어 주는 한국군, 동티모르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마치 외국인들을 위한 인터내셔널 빌리지 하나 세우고 있는 듯 여유작작한 유엔 직원들의 모습이 계속 서로 겹쳤다 흩어졌다 하는군요.
우리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사실이지만, 그게 우월감이 되기 시작하고, 그런 우월감이 집단화되면 결국 일본이 동남아를 경제식민지화 해가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네 요즘 모습밖에는 남는 게 없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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