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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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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28>

동티모르 최초 관광객은 한국인?

***6월 6일**

연기하자, 그냥 하자, 말도 많더니 어쨌건 선거를 치르기는 치를 모양입니다. 선거 이전 통합조직얼개로 갖춰놓았던 동티모르 저항의회(CNRT/CN)가 예정대로 선거가 다가오자 해산되었죠. 그리고 그 안에 속해있던 각 정치단체들이 정당으로 각자 등록하여 선거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의장인 구스마오(전에 사임했던 건 NC, 즉 국회의장직이었고 동티모르 저항의회 의장직은 계속 수행하고 있었어요.)도 울고, 컨퍼런스 홀을 가득 메운 6백여 동티모르 저항의회 소속의원들도 다 울고 서로서로 영웅적인 과거 독립투쟁을 회고하며 잘해보자고 결의를 다지는 숙연한 자리였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정치 일정만 바라보면 나라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선거 자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유엔 활동도 오래 되다보니 자꾸 주민들과 유엔간의 갈등이 다른 갈등요소들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어제는 딜리에서 조깅하던 유엔 경찰이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 칼로 피습 당했답니다. 상처는 깊지 않아 다행인데, 하여간 이제 딜리에선 백주대낮에 거리를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할 지경이라는 이야기죠. 제가 있는 바우카우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갈등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주로 여기서는 유엔 마크만 달고 있으면 누구이건 모두 공격 당하는 딜리와는 달리 대상 국가가 우선 정해진 후 그 나라 사람들을 향해 테러가 벌어진다는 것이 특색인데, 전에는 요르단 경찰대대가 그 타겟이었죠. 지금은 포르투갈인들이 그 대상입니다.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였던 데다가 언어가 통하니까 더 문제 소지가 늘어나는지, 주민들 말로는 포르투갈인들이 자기들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여기 바우카우 지역에는 포르투갈 경찰도, 군대도, 유엔기구도 없다보니 애꿎은 민간인들만 고생이에요. 포르투갈에서 온 포르투갈어 교사들과 사업자들은 그야말로 비정구기구(NGO)로서 급여도 제대로 못 받고 생활도 어렵고 안전문제도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거의 무방비상태인 거죠.

딜리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G소령님이 업무차 들렀다가 주말을 보내고 돌아가시는 덕에 지난 일요일에는 G소령님과 함께 모처럼 해변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잔뜩... 수영은 한 10분 정도나 즐겼는지, 나머지는 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며 라면 끓여먹고... 어김없이 동티모르의 꼬마들이 잔뜩 몰려들었습니다.

주위에 우루루 몰려 서서 뭔가 달라는 듯한 눈빛을 짓거나 혹은 당당히 손 내밀며 먹을 걸 달라고 입을 가리키는 꼬마들에 익숙해지다 못해 무감각해진 저와는 달리, 대개 사무실 안에서만 생활하시던 G소령님은 뭔가를 집어주는 데 상당히 기뻐하시더군요. 가져간 전투식량과 오렌지, 라면, 물에다 초콜릿까지 몽땅 다 집어주면서 아이들하고 모닥불 피우고 둘러앉아 말도 안 통하면서 몇 시간씩 이야기하느라 애쓰는 G소령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무감각해지다가도 가끔씩 깨닫고는 해요. 이 아이들이, 학교 가서 친구들 만나 뛰어 놀고 노래배우고 그림 그리기에만도 바빠야 할 꼬마들이 맨발에 군인 뒤 쫓아다니면서 먹을 것 달라고 하루를 보내야하는 게 얼마나 비정상인지. 그렇게 자란 우리 부모님 세대들 마냥 이 꼬마들도 30년 후에는 자기 자식들에게 군인대신 학교 선생님을, 전투식량 대신 막대사탕을, 다 헤진 군인들 티셔츠 대신 알록달록한 아동복을 입혀줘야 되는데.

***8월 18일**

일요일에는 함께 근무하는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해변에 갔습니다. 정말 해변에 많은 사람들이 오더군요. 야자열매 겉껍질은 단단하기만 하고 먹지도 못하는 쓸모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은근하게 타 들어가는 게 생선 구워먹기에 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야자잎 한 가운데 굵은 줄기에는 닭고기를 꽂아 빙글빙글 돌리며 바비큐 해먹기에 좋고, 야자잎 양옆 잎새들은 불쏘시개로 최고더군요. 뭐랄까, 열대 해변에서 모닥불 피워두고 고기 구워먹는 모습이 그렇게 자주 보이는 이유가 주위에 너무너무 편한 재료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냇가에 가서 넓적한 돌 달궈 가지고 삼겹살 귀먹잖아요...

해변에서 나은실씨라는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뭔가 한국사람 같은 분위기가 들어 말을 붙여본 건데, 이제껏 자기보고 한국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한 한국인은 처음이라더군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현재는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다는데, 놀랍게도, 여행차 이곳에 왔답니다. 동티모르에!

미국에서 자라서 어색한 한국말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레 "그럼, 군인이니까 거기서는 김치 넣고 '부대'찌개 끓여먹어요?"합니다. 전에 저널리스트 일을 했던 적이 있어서 새로운 나라가 생겨나는 과정이란 걸 꼭 보고 싶었기에 한 달 예정으로 여행 온 거랍니다.

처음 이 곳에 지원할 때 각종 반대에 부딪히고, 고집부리면서 가고야 말 거라고 큰소리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그렇게 두근두근 떨었던 생각을 떠올려보니 새삼 이 사람이 대단해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대단하지 않은 일을 대단하게 생각해야 할 만큼 제가, 제 주위 사람들이 많이 닫혀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보고 싶은 건 직접 보러 찾아가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은 해보면 되는 거잖아"라며 얼마 전 곧 전역을 앞둔 상록수부대 P원사님이 전역 후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하겠다고 설렌 듯 이야기하더군요. 그게 맞는 말일 텐데, 해보지 않고, 직접 보지 않고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얽어매고, 조건을 붙이는 건 나쁜 버릇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관광객 신분으로 동티모르에 들어온 건 아마도 나은실씨가 최초가 아닐까 싶군요. 며칠이 지난 뒤에 한 노르웨이 청년이 자기가 동티모르 땅을 밟은 최초의 여행자라고 자랑을 하다가 실망했거든요.

주위 사람들에게 "여행자 본 적 있느냐? 내가 최초다. 아니라면 어디 누구 다른 사람 본 경험을 말해봐라?" 하던데, 옆에서 한마디 던져줬었죠. "어 지지난 주에 한국 여자 한명이 여행이라면서 온 걸 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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