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임박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의 명분으로 국제 테러리즘 근절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저지를 꼽고 있다. 그러나 중동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보다 현실적 목표라는-배후에 감춰져 있기는 하지만-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인류가 석유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20세기초 이후 석유는 거의 모든 전쟁과 관련돼 왔다.
20세기 전반부 2차대전까지의 전쟁에서 석유가 전쟁의 승패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면 80년대 이후 최근의 전쟁에서는 석유 자체가 전쟁의 목표가 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이 벌인 아프간전쟁이나 러시아와 체첸간의 체첸 내전 등 최근 전쟁들은 거의 모두가 석유자원 확보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마이클 클레어 교수는 지난 2000년 '자원전쟁(Resource Wars)'이란 저서를 통해 앞으로의 전쟁은 석유 등 자원확보를 위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한편 자동차 등 석유가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현대인들을 가리켜 '탄수화물 인간(hyrro-carbon man)'이란 말이 사용될 정도이다. 오늘날 석유는 세계 교역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현대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인 자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석유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또 석유는 지구온난화 등 환경파괴의 주범인 동시에 국가간 무력충돌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언제까지 석유자원에 의존해 살아가야 할 것인가.
생태주의 에너지전문가인 이필렬 교수(한국방송대 교수)로부터 석유자원의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이 글은 이 교수가 <녹색평론> 등에 발표한 석유자원 관련 글 중에서 주요 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1. 석유생산량이 줄어든다**
1956년 미국의 쉘연구소에서 일하던 지질학자 하버트(King Hubbert)는 미국의 산유량이 1970년대 초에 최대값에 달한 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년간 미국내 여러 유전의 산유량과 미국 전체의 산유량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추정 매장량을 분석한 결과, 산유량이 종모양 곡선의 형태에 따라 증가하다가 정점에 도달한 후 줄어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하버트의 발표는 그 당시에도 왕성하게 번영하던 석유업계에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거의 모든 석유 전문가들과 석유회사들의 냉소적인 거부에 부딪쳤다. 이들은 하버트의 발표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공격했는데, 그의 예측은 1971년에 들어맞았음이 확인될 때까지 거의 무시되었다.
1971년 봄 하버트의 예측을 일관되게 거부하던 석유회사들은 최후의 일격을 당했다. 1970년 최대치에 도달했던 미국의 산유량이 1971년에 들어서면서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버트의 예측은 완벽하게 확인되었고, 그후 지금까지 미국의 산유량은 그가 제시한 종모양 곡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에 알래스카와 멕시코만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고 이곳에서도 석유가 생산되고 있지만, 산유량의 감소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하버트의 정확한 예측을 많은 석유산업 관련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감정적인 것이었다. 이들이 고수익을 내는 석유 산업에 대한 하버트의 회색빛 전망을 선뜻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때까지 여러 차례 석유예언자들이 나타났지만 모두 터무니없는 예측으로 결국은 망신만 당하고 사라졌기 때문인데, 이들은 하버트도 또 한명의 거짓 예언자 정도로 생각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1971년 하버트의 예측이 확인된 후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석유산업이 계속해서 고수익을 창출하며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정치인, 경제학자, 투자자, 석유산업 종사자들은 석유산업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격이 조금 올라갈 수는 있지만, 산유량이 줄어들고 석유가 품귀현상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가격이 올라가면 경제성이 없던 석유매장지로부터도 석유가 생산되기 때문에, 수요가 충족되지 않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류 산업계와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하버트의 예측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지만, 예언의 적중은 몇몇 석유지질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 지질학자는 그후 하버트의 모델을 이용해서 전세계의 석유 매장량과 산유량 추이를 분석했고, 이 분석에 따라 산유량이 언제 최대치에 도달할 것이며 그후 얼마만한 속도로 감소할 것인가에 관한 예측치를 내놓고 있다.
하버트 모델의 영향을 받은 석유자원 연구자 중에서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 사람은 콜린 캠벨(Colin J. Campbell)이다. 캠벨도 하버트와 마찬가지로 쉘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석유자원 분석가로 일했는데, 그후 그는 빈의 유명한 석유자원 분석회사인 페트로컨설턴트(Petroconsultant)로 옮겨 그곳의 매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세계 산유량 변화를 예측했다.
페트로컨설턴트의 데이터베이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그곳에는 다른 연구소나 정부기관은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유전들의 산유량과 매장량에 관한 자료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다른 분석보다 신뢰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유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도 페트로컨설턴트의 최대 고객이었다.
캠벨은 자신의 분석을 통해 세계의 산유량도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몇가지 파라미터를 가지고 분석을 하는데, 하나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앞으로 발견될 유전의 누적 석유 매장량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해마다 생산된 석유의 양이다.
석유의 누적 매장량은 지금까지 해마다 발견된 유전을 추적해서 그것을 외삽(extrapolation)한 그래프를 가지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그래프도 기복이 심하고 오른쪽으로 꼬리가 길게 늘어지기는 하지만 거의 종모양 곡선을 그리는데, 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작은 유전들이 발견되다가 점차 거대한 유전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어 발견량이 정점에 달한 후 유전의 크기와 발견량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앞으로 발견될 유전의 매장량을 모두 더한 것이 누적 석유매장량이 되고, 그 이상의 석유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지질학자들은 이 양을 채굴가능한 석유의 총량이라고 부르는데, 캠프벨은 이 양을 약 1천8백기가배럴(1기가=10억, 따라서 18조 배럴)로 잡고 있다.
이 값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액체 석유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 밖에 심해(해수면에서 약 2천미터 깊이)와 극지방에서 뽑아내는 석유, 타르석유 등을 모두 합하면 전체 매장량은 약 2천1백기가배럴로 올라간다.
주류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석유가격이 올라가면 비경제적인 석유까지 모두 경제성을 지니게 되므로 석유의 매장량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땅 속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그 양은 추정치를 결코 크게 넘지 못한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생각이다.
석유의 발견량은 이미 1960년대에 최대값에 도달했다. 그 후에도 간혹 거대 유전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것이었다. 지금도 석유탐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발견되는 유전의 크기는 1960년대에 발견된 거대 유전에 비해서 아주 작고 또한 탐사 횟수에 비해 발견 성공률도 크게 떨어졌다.
60년대에는 해마다 발견되는 석유의 양이 연간 40기가배럴이었지만, 현재는 연간 6기가배럴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해가 갈수록 발견되는 석유의 양은 크게 줄어들어 갔지만, 이에 반해서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은 급속하게 증가해왔다.
따라서 1980년 경부터는 석유의 발견량이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결국 우리는 이미 20년 전부터 석유대차의 적자 시대에 살게 되었다.
석유의 생산은 유전이 발견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에서의 정점은 발견에서의 정점에 비해 시간적으로 수십년 뒤에 나타난다. 종모양의 석유생산 곡선에서 최대값은 총 누적 매장량의 절반이 생산되었을 때 도달하는데, 캠벨의 분석에 따라 총 매장량을 1천8백기가배럴로 잡으면 9백 기가배럴이 생산된 시점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다 타르석유, 혈암석유, 극지방 석유, 심해석유 등을 합해서 매장량을 2천1백기가배럴로 잡으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은 약 1천50기가배럴이 생산된 때가 된다. 캠프벨에 의하면 2001년 말 현재 전통적 의미의 누적 석유 생산량은 8백73기가배럴로 거의 최대값에 도달했다.
전세계의 연간 석유소비량이 27기가배럴(하루 7천5백만 배럴)이므로 2002년이 지나면 9백기가배럴이 되어 총 매장량의 절반이 사라지게 된다. 심해석유나 타르 석유 등을 모두 합해서 석유 생산량의 최대값을 추적할 경우에는 이 시점이 오른쪽으로 조금 밀려나는데, 이 경우 절반이 생산되는 시점은 2008년 경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늦어도 2008년 경부터는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이 시점은 경제적·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심해나 극지방에서의 석유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당겨질 수도 있다.
석유 매장량을 따질 때 우리는 보통 앞으로 40년 또는 50년 쓸 수 있는 양이 남았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방식은 석유생산 추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일반시민이나 정치인에게 석유생산에 대해 크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40년이나 50년이라는 햇수는 보통 현재 남아 있다고 추정되는 매장량을 현재의 소비량으로 나눈 값인데, 이러한 표현은 앞으로 4,50년간은 인류가 현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풍족하게 석유소비를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한다.
말하자면 앞으로 4,50년 동안은 석유생산의 지속성이 보장되므로, 현 세대와 다음 세대 초까지는 석유와 관련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석유 생산량이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석유 사용 연한은 매장량을 소비량으로 나누는 산술적인 방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 생산량은 수십년 동안 일정한 양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장량의 절반이 퍼올려지고 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한 후에 서서히 줄어드는 것이다.
하나의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할 경우 처음에는 땅 속의 압력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유정으로부터 저절로 석유가 솟구쳐 올라온다. 그러므로 첫 유정 설치 후 후속 유정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석유 생산량은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땅속에서 점점 더 많은 석유가 땅 위로 퍼올려지면 압력이 줄어들고 땅 속 석유의 점성도 높아져서 올라오는 석유의 속도가 감소하며, 따라서 생산되는 석유의 양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석유가 땅속에 상당히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압력이 크게 떨어지고 점성이 높아져서 석유가 올라오는 일이 중단된다. 이때에는 뜨거운 물이나 이산화탄소 또는 메탄가스를 주입해서 석유를 퍼올려야 하는 시점이 되는데,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퍼올리는 속도는 자체 압력에 의해서 솟구치던 때에 비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어느 한 유전에서 퍼올릴 수 있는 석유의 양은 처음에 증가하다가 최대값에 도달한 후에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각각의 유전에서의 석유 생산량과 이들 유전 전체의 석유생산량이 종모양을 그린다는 것은 석유가 앞으로 4,50년 사용할 것이 남아 있다는 표현이 얼마나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대로 앞으로 4,50년 간 석유부족을 겪지 않고 지낼 수 있고, 그 후에도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 값이 많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어떻게든 석유가 발견되고 그것이 사용될 수 있다면, 지금부터 석유부족에 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된다.
그러나 만일 1956년 미국 산유량에 대한 허버트의 예측이 들어맞았듯이 세계 석유 생산량이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면, 수년 후부터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이는 세계 전체 그리고 일국의 경제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석유부족이 미칠 여파-전쟁과 그밖의 혼란**
석유 부족이 전세계의 정치·경제·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우리가 이미 여러차례 경험한 바 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와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는 인류문명이 석유라는 에너지자원에 얼마나 크게 종속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석유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있었다. 이들 사건은 20세기에 일어난 두차례의 대전이었는데, 두 전쟁에서 모두 석유는 후속 역사의 향방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석유를 하나의 종속변수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석유는 전함과 전투기뿐만 아니라 군인과 전쟁물자의 운송수단을 움직이는 데 필수적인 연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석유의 안정적인 확보는 전쟁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 1차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모두 제3국으로부터 석유를 조달하고 있었다. 독일-오스트리아군은 주로 루마니아 유전으로부터 석유를 얻었고, 연합군은 중동지역의 유전에서 석유를 공급받았다.
전쟁 수행에서 석유가 이렇게 중요했기 때문에 두 진영은 모두 자기에게 필요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적의 석유 공급원을 파괴하는 책략을 세우고 작전을 수행했다. 독일은 루마니아 유전뿐만 아니라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 유전을 손에 넣음으로써 필요한 석유를 확보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서양을 지나는 유조선에 잠수함 공격을 가함으로써 연합군의 석유 보급을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 말기에 루마니아 유전과 바쿠 유전은 영국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도 고갈되고 말았다. 바쿠 유전이 파괴되었을 때 독일이 확보하고 있던 석유의 양은 수개월 정도 쓸 수 있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따라서 독일의 항복 선언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도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독일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1차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히틀러 독일은 바쿠의 유전을 점령하려 했지만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이 독소 조약을 파기하고 전선을 동서 양 방향으로 수천 킬로미터 늘리는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소련을 침공한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카스피해 부근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942년 가을 독일군이 바쿠 유전을 얻기 위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히틀러는 "바쿠 유전을 얻지 못하면 전쟁은 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예언'대로 독일은 결국 2년 6개월 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1973년의 제1차오일쇼크는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가 값싸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던 미국과 유럽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OPEC 회원국들이 이스라엘 지원 철회를 요구하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 석유수출을 중단하자 석유 가격은 1970년의 배럴당 1.8달러에서 배럴당 11.65달러까지 치솟았고, 이로 인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이어졌다.
1979년의 제2차오일쇼크는 이란 혁명으로 촉발되었는데, 이번에는 제1차 오일쇼크 때와 달리 이란의 산유량만 줄어들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이 산유량을 늘렸기 때문에 석유 부족분은 전체 소비의 4-5%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1차오일쇼크를 경험한 세계는 석유확보 경쟁에 휩싸였고, 주문량이 실제 소비량보다 매일 3백만 배럴이나 더 많은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석유가격은 배럴당 13달러에서 34달러로 치솟았고, 이 상태는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고 석유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2차오일쇼크 때는 석유 부족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석유시장과 소비자들이 여기에 그런대로 적응하기만 했다면,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인 패닉 상황은 이성적인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결과 석유 가격은 세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러한 패닉 현상은 그 후로도 OPEC가 산유량을 줄이거나 줄이겠다고 위협할 때마나 되풀이되었고, 2000년 가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에 OPEC에서는 하루 산유량을 약 1백만 배럴 줄이려는 협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파로 국제 시장에서의 석유가격은 그 전에 18달러선이었던 것이 최대 35달러까지 상승했다.
하루 1백만 배럴이란 양은 전세계의 하루 산유량 7천5백만 배럴과 비교하면 1.4%밖에 안되는 것이었지만, 이는 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전세계의 석유가격을 두배 가까이 끌어올렸으며, 유럽 몇 개국에서는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까지 유발했다. 이러한 사태는 인류가 석유 종속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캠벨 등이 예측하듯이 앞으로 수년 후 세계 산유량이 정점에 도달했다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석유부족 현상은 상시적인 것이 되고 상황은 해가 갈수록 악화된다. 예측 곡선에 따르면 그때부터 산유량이 매년 약 2% 정도씩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사태는 오일쇼크 때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오일쇼크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사태만 수습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했다. 그러나 산유량이 최대값에 달한 다음부터는 계속 감소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에, 석유 부족으로 인한 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석유 가격은 급등할 것이고,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과 갈등이 고조될 것이며, 개별 국가 안에서는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서 비극적인 형태로 폭발할 것이다.
화석연료와 우라늄에 바탕을 둔 에너지 시스템, 전력생산 시스템은 인류평화,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결코 가져올 수 없다. 이 시스템은 끊임없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수탈과 파괴를 낳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화석연료와 우라늄이 특정한 지역의 지하에 묻혀 있는 한정된 연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연료는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위한 쟁탈전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생산된다는 것, 영국, 프랑스, 옛소련, 인도, 파키스탄 등이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핵무기를 만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화석연료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석유가 20세기에 일어난 많은 전쟁들, 그리고 21세기 첫 전쟁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음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석유는 20세기 말에 일어난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미국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알제리, 나이지리아, 아프가니스탄 내전, 체첸 전쟁 그리고 2001년 9.11 테러와 그후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주요 원인의 하나였다.
체첸 전쟁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와 체첸 분리주의자들간의 민족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도되고 평가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체첸이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 유전으로부터 흑해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이르는 석유 수송로의 길목에 놓여 있고, 그곳을 러시아의 석유 파이프라인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체첸이 독립하면 당연히 석유 수송로의 일부가 체첸의 지배권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는 러시아의 석유수송에 심대한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체첸의 독립은 또한 이 지역의 다른 국가나 자치구역을 자극하여 석유생산이나 수송과 관련해서 러시아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로서는 체첸을 독립시켜서는 안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체첸으로서는 독립하여 석유 파이프라인을 관할하는 것이 현재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둘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이 아니라 높은 파이프라인 통과료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서 체첸을 달래려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1997년 초에 러시아 정부는 연간 백만 달러를 통과료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하였으나, 체첸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톤당 2.2달러로 협상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러시아와 체첸간의 석유를 둘러싼 분쟁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9.11 테러는 흔히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은 미국과 거기에 대항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간의 싸움으로 비쳐지고 평가되곤 하지만, 테러가 일어나기 전의 탈레반과 미국 석유회사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서도 석유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테러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카스피해 주변의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건설하려는 미국 에너지회사 유노칼(UNOCAL)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정부에 대한 탈레반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와 그후의 배신이었다.
탈레반은 미국 정부와 유노칼 및 사우디 델타 석유 등의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고 내전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쟁취했지만 파이프라인 건설에 끝내 동의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고, 이에 대응해서 탈레반이 먼저 미국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후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수반이 된 카르자이는 미국 유노칼의 석유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많은 분석가들은 이러한 경력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으로 본다.
석유를 둘러싸고 이토록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인류사회가 석유에 너무 크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유를 확보하려는 경쟁은 국가간 갈등과 전쟁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유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파괴한다.
석유는 산유지역, 파이프라인 통과지역 그리고 석유 소비지역의 자연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유발함으로써 전지구적 규모의 환경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석유에 종속되어 있는 한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이룩될 수 없다. 오직 석유로부터 해방될 때에만 사람들 사이의 평화, 사람과 자연 사이의 평화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3. 석유에너지의 해악-기후변화**
지구의 평균 대기온도가 올라가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굳어졌고, 이미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태들도 벌어지고 있다. 남극대륙의 거대한 빙산이 떨어져 나가고, 북극의 빙산 두께가 줄어들고, 그린랜드의 빙산이 녹아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태평양의 투발루 같은 섬나라는 해마다 해수면이 높아져서 면적이 줄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후변화를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 신빙성이 없는 것, 인간의 화석연료 소비라는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비욘 롬보그(Bjorn Lomborg)가 <회의적 환경주의자>The Skeptical Environmentalist라는 책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롬보그 같이 한쪽에서 계속 '지나치게' 낙관적인 -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의 책을 출판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담당자나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한 조선일보 같이 그러한 주장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현재는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고, 추정을 통해서 예측해야만 하는 미래의 일이며, 본질적으로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타격을 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기후변화에 대비한 활동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돌리는 것은 내일과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기후변화를 위한 정부간 패널'(IPCC) 회의를 위해서 모이는 수천명의 각국 학자들이 회의 때마다 확인하는 사실이다. 이들은 가장 최근에 열린 회의에서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온실기체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21세기에는 지구평균기온이 섭씨 최저 약 1.6도, 최대 약 6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균 기온이 IPCC 학자들이 예측한 최저치인 섭씨 1.6도만 상승해도 지구생태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1.6도 상승이란 수치는 평균값이기 때문에, 기온이 그 정도만 상승해도 정상분포 곡선을 그리는 기온 분포에서 극단값에 들어가는 날은 훨씬 늘어난다.
겨울에는 추운날이 많아지고 여름에는 아주 더운날이 많아지는 것이다. 독일의 기상학자들은 현재와 같이 대기중 온실기체가 증가할 경우 2050년에 일어날 지역별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들은 평균기온이 섭씨 1도 가량 상승하지만, 여름의 경우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기온이 평균 섭씨 5도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평균기온은 1도 올라가지만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는 것이다.
***4. 재생가능 에너지와 석유로부터의 해방**
석유시대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게 되어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 석유 자동차를 타고, 석유 난방을 하고, 석유 전기를 쓰는 이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앞으로 10년이나 20년간은 그럭저럭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를 염려하지 않으면 이 기간 동안은 지금까지와 같이 편안히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의 석유와 밀착된 생활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까지도 잘 되어왔는데 그때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석유부족으로 인한 혼란이 몰아닥치는 바로 그 시점에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은 되는대로 삶을 꾸려가겠다는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석유시대의 종말로 인해 초래될 인류문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지구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고 단순하고 작은 기술로도 이용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나 풍력 등에 바탕을 둔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추어서 경제와 사회와 문화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야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단순한 화석연료의 대체물만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인류문명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가 중심이 되는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태양에너지 난방, 발전, 풍력발전, 바이오매스 생산으로 에너지를 얻는 것이 한 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긴 시간표와 장기적인 시나리오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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